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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함으로 숨길 수 있다면
아이가 알려준 어버이날
by
무쌍
May 7. 2023
마트 진열대에 과일보다 꽃이 떡하니 명당을 차지했다. 어버이날 카네이션 화분이 단돈 만원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
었
다.
화분에 담긴 카네이션꽃이 생기 있고 향긋해 보였다. 꽃을 사려는 손은 벌써 요리조리 포장된 손잡이를 잡고 어떤 것을 살지 고르고 있다.
꽃구경하듯 꽃을 고르는 얼굴들을 보았다. 진지한 얼굴로 꽃송이가 예쁘게 자란 화분을 고르
며
, 나와는 거리가 먼 그들이 부러워졌다.
선명하지는 않지만 카네이션 꽃을 몇 번 사간적이 있다.
한 번도 반겨주지 않았지만, 나는 항상 같은 말을 기대를 했
던
것 같다. 듣지 못한 말은 메아리처럼 나를 부를 것 같아서 해마다 어버이날을 놓을 수 없었다.
일 년에 한 번 오는 어버이날
이
오면, 내가 어디서 왔는지 찾아 나서고 싶었다. 진짜는 비밀로 부쳐진 과거 속에 있고 지금 내 역할은 가짜라는 기분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내가 가질 수 있던 것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뿐이었다. 여태껏 문제가 많은 낙오자였지만 앞으론 나아질 거란 기대들이었다.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동심의 명랑함이 나를 감춰 주었다.
아이를 얼굴을 닮은 금낭화 (2023.05.07)
산책로에 금낭화가 차란차란 넘치게 피었었는데, 어느새 한 송이만 남았다. 연한 분홍색을 좋아하는 막내의 얼굴을 닮은 꽃 한 송이를 보니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뭔가 줄 것이 있는 얼굴이었다.
5월이 시작하자마자 학교는 연일 행사가 많았다. 매일 공부 대신 할 일이 많았던 아이였는데, 비밀 선물을 내놓듯이 카드와 나무 액자를 꺼냈다.
학교에서 만들었다며 어버이날 선물을 주었다.
아이가 만든 카네이션 액자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엄마인 내가 좋아하는 붉은 칸나꽃과 보라색 라벤더 그리고 파랗고 빨간 장미꽃이 그려져 있다.
전날 학교에서 만들었는데, 집으로 가져올 때까지 비밀로 하려고 꾹 참았다는 아이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스스로 해냈다는 감정을 배운 아이를 보니 그 감정이 달콤하게 전해졌다.
엄
마가 일부러 만들어 주지 않아도 아이는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그림을 설명하는 아이를 보며 예전에 내가 꿈꾸던 진짜를 이뤘다는 기분이 들었다.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오지 않았던 미래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어버이날 나는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선물을 준비했다.
매년 똑같은 통장번호에 하던 입금을 하지 않았고, 대답을 듣고 싶어 전화를 걸었던 안부전화도 아니었다. 그 선물은 아이와 나를 위한 것이었다.
오래 걸리기도 했지만 대가도 상당히 치러야 했던 정신적인 치유였다.
그래도 난 믿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무 날도 아닌 듯 보내는 고요한 어버이날이다.
나의 비밀을 감출 수 있다면, 한없이 사랑스러운 아이의 모습에 반한 명랑함 뒤에 계속 숨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준비한 어버이날 선물에 아주 놀란 표정으로 크게 환호를 하며 감동했다.
내가 꽤 괜찮은 엄마인 듯 아이에게 인정받았다. 그 감정을 한동안 기억해 둘 참이다.
어둡고 공허한 나를 감추고 쓸모없는 자식이란 꼬리표를 떼려고 했던 나와 작별인사를 했다.
금방 헤어지지 못했지만, 자식이 남들 보는 자랑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죄책감은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내년에도 어버이날 아이가 만들어준 선물이 나를 지켜줄 것이다. 아이에게 받은 선물에 기뻐하는 명랑함 뒤에 숨어서 아주 많이 웃으며 편안하게 말이다.
감춘 것이 관습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명랑함을 앞세워 나를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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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무쌍한 감정번역가/ 사연은 버리고 감정을 쓰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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