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노트

뜨거운 커피와 따뜻한 커피

여름방학을 부탁해

by 무쌍

쓴 커피를 마다하지 않았다.

가장 반가운 말이 '커피 드실래요?'였는데, 요즘은 이 말을 누가 하면 무섭다. 머리에 새치가 많아지면서 슬그머니 그런 자리에서 도망가는 편이 여러모로 유익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 귀는 아이를 낳고 보니 더 쓸모가 많아졌다.

아이가 엄마를 얼마나 자주 부르는지, 얼마나 할 말이 많은지 둘째가 태어나자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귀는 두 개지만 두 아이가 한꺼번에 달려들면 둘 다 소용이 없었다. 순서를 정해서 누가 먼저 이야기할지 정하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아이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줄수록 아이 얼굴은 편안해졌다. 안에서 점 남편과의 대화보다는 아이들과 대화 시간이 많아졌다.


자려고 누우면 말을 거는 아이에게 졸리다고 말하고 싶은데, 실망할까 봐 잠들면 안 된다. 시골에서 자라서 엄마는 해가지면 잠을 잔다고 놀리지만, 내일 날이 밝으면 편의점 커피를 마셔야지 하면서 졸음을 참아본다. 그럼 신기하게도 아이에게 짜증이 덜났다.

커피 한잔 값은 전날 아이의 상담료인 셈이다.


여름방학이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방학을 하니 수시로 나를 불러댈 것이다.

덕분에 커피를 매일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아이들의 흥미진진한 비밀을 듣고 남편에게 몰래 털어놓느라 수다가 많아질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밖에서 나누는 수다는 점점 뒷전이 되었나 보다.


직장상사 험담을 하며 시는 커피도, 시간을 보내려고 마시던 커피도 멀어졌다. 대신 집 근처 편의점에서 커피를 마신다. 나 혼자 마시는 커피는 달콤하고 쓰다.

그래서 커피 맛에 집중을 더 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등줄기에선 땀이 느껴지는데, 편의점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전체가 냉장고다.


"뜨거운 커피 주세요."

"따뜻한 커피요?"


나는 땀을 흘리며 먹는 뜨거운 상황을 말했지만, 종일 에어컨 아래 지내는 긴소매를 입은 편의점 직원은 따뜻한 커피였나 보다.


그래서 네 따뜻한 커피 주세요. 내린 들고 편의점 문을 열고 나왔더니, 밖은 커피 온도보다 미지근하게 느껴졌다.

커피 향을 맡고 한 모금 입에 넣으니 개운해졌다.

여름은 덥지만 나는 뜨거운 커피가 좋다.


따뜻한 커피가 여름방학을 보내는 동안 나를 위로해 줄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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