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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Jan 03. 2021

텃밭은 여름을 향해간다

쌈채소 수확기


  시 찾은 텃밭은  무성해져 있었다.

  며칠 전에 수확한 잎채소가 냉장고에 남았는데, 두배는 더 부푼 상추 잎에 탄성이 나온다. 신이 난  손은 어느새  채소 잎 수확을 시작한다. 밭에 갈 때마다 수확하기 전 밭 사진이 남아있지 않은 건, 우리 부부의 급한 성미 탓이다. 든 일을 다 끝난 후에야 '아차 사진!' 하며 사진을 찍지 않은 걸 알아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늘 집에 돌아가기 전 밭 풍경을 찍었다.

내려다보면 모두가 꽃 같다

   청상추는 정말 꽃처럼 피어있어, 매잎을 뜯으며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열무종자 파종 일주일 차이인데 성장이 빠르다

  고추 모종을 사며  열무 종자 씨앗을 2,000원에 샀다. 시장에서 열무 한 단을 사려면 4,000원은 줘야 하는데 못해도 한단은 나오겠지 내심 기대하며 씨앗을 심었다. 평소  열무김치를 좋아하는 남편은 씨앗 파종을 더 정성스럽게 했다. 열무가 일주일 만에 싹이 올라오자 옆에 다시 2차 파종을 했다. 호랑이콩과 감자가 싹이 다 올라오지 않아 비어 있는 자리가  있었는데, 이제야  빈자리 없이 작물들이 심어 졌다.

 


  6월이 되자 밭에 오는 사람들 손에 가방이 점점 켜졌다. 그 많던 흙이 작물에 가려서 보이지 않을 정도 모든 밭이 푸성귀로 꽉 채워졌다. 비었던 밭들이 시간이 지나자  밭주인스타일대로  바뀌어 갔다.

  주인이 자주 다녀가지 않는 밭은 잡초들과 작물들이 덤불처럼 뒤엉키기 시작했다. 바로 옆 상추밭은 자주 오긴 하는데, 매번 상추만 싹 수거하고 갔다. 그 밭에서 넘어오는 잡초 우리 밭으로 길게 길게 줄기를 뻗었다. 여름이 되고 상추들이 꽃이 피자 발길을 뚝 끊었다. 결국 잡초들 초록 침대처럼 되었다.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지만 작물 선정과 밭 관리까지 딱 하나만 고집하는 스타일에 나도 완전히 손을 들었다.  

채소가게 펜트리 같은 밭

  마토와 당근, 쑥갓, 고추, 각종 잎채소가 종류별로 심었진 밭이 있었다. 한눈에 봐도 텃밭을 많이 해본 주인이었다. 그런데 도통 오지 않는 밭 중에 하나가 되었다. 어느 날 밭은 채소가게 펜트리처럼 먹음직스러운 채소가 빼곡 자라 있었다.

 '여태 그대로 있네, 아이고 아까워라 지금 수확해서 먹어야 하는데..." 쳐다보는 아줌마의 마음을 장마가 오기 전까지 몇 번이고 마주해야 했다. 끝내  밭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토마토가 바닥에 떨어지고 비트는 호박만 해졌고, 당근은 흙 위로 올라왔다. 장마가 지나고  밭은 음식물 쓰레기산처럼 썩어갔다. 주인 오지 않은 밭은 가을 완전히 정리되었다.

 


  봄에 심은 모종들과 씨앗은 타고난 대로 자라났다. 상추는 손바닥 만해지고, 열무잎은 점점 더 길어졌다. 모든 것이  선물처럼 느껴졌다.  땅속에 묻은 씨앗이 힘차게 솟아나는 것을 보며, 나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저절로 생겨 났던 것이다. 아이를 둘이나 키우는 엄마지만 자연을 상대하는 기분은 훨씬 더 신비로웠다.   


  여름 텃밭은 수확을 재촉하지만,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밭에서 머무는 건 신체 훈련을 방불케 했다. 비 예보가 있는지가 중요해지자, 일기예보에 더 예민해졌다. 그리고  장마가 언제 시작될지 궁금해하며, 손꼽아 감자 수확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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