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쌍 Jan 18. 2021

채소 꽃이 알려준 것들

여름을 앞둔 텃밭

  잡초와 씨름을 하다 보니 어느새 공기가 뜨거워졌다. 그동안  싱싱한 쌈 잎을 주던 채소들 모양새가 달라졌다.  수확을 미루고 아무리 기다려도 아기 손바닥만 적상추 잎이 커지지 않았다.  오크 상추는 줄기가 뚱뚱해지고, 꽃처럼 피었던  잎들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줄기가 길어지고, 꽃을 피우느라 잎은 더 이상 크지 않는다. 아무래도 쌈채소 수확 끝난 듯했다.  가장 많은 수확을 한 상추들이 먼저 백기를 들었다.


   년생 치커리는 이파리 사이로 줄기가 나오기 시작하자 덩굴처럼 여러 갈래로 자랐다. 꽃은 수레국화같이 청색에 섬세한 꽃잎 기만 했. 밭에 갈 때마다 꽃줄기를 잘라 집 꽃병에 꽂아 두었다. 꽃은 하루면 시들어 버렸지, 그렇게 라도 꽃의 시간을 붙들고 싶었다. 원한 것은 없지만 떠나기 전까지 늘 아쉽기 때문이다.

치커리꽃 @songyiflower 인스타그램
치커리꽃은 예쁘지만 꽃은 오래 가지 않는다.

   1. 잎채소 수확 종료(상추류, 치커리)

  이 더워지자 자연의 섭리대로 씨앗을 만들려는 작물들은 꽃을 피운다. 그럼 농부는 씨앗을 받아서 다음 농사에 쓸 건지, 아니면 뽑아내서  다른 작물로 바꿀지를 결정해야 한다.  고민 없이 모두 꽃이 필 때까지 두었다.


  2. 열매채소 성장기(고추, 토마토)

  열매채소는 꽃이 피어야 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 꽃이 피기 전까지는 수확이 가능한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발견은 고추농사였다. 세상에 고추꽃이 그렇게 청초하고 아름다운 줄 몰랐다. 완벽한 대칭과 짙은 꽃술은 흰꽃을 돋보이게 했다. 새하얀 꽃이 지면서 작은 고추들이 자랐다.

고추꽃 @songyiflower 인스타그램

  나비와 벌이 가장 많이 찾아왔다. 그만큼 고추의 수확량은 기대 이상이었다. 가끔 진딧물이 생기면 잡아주었을 뿐 큰 병충해도 없었다.


  토마토는 모종으로 심지 않아서 성장이 늦어졌다. 장마가 겹치면서 수확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장마로 열매가 터지거나 썩어 버렸기 때문이다. 다음 토마토를 심을 때는 모종으로 심어 여름 전에 수확을 제대로 해야겠다.


  3. 다른 밭의 채소 꽃

쑥갓꽃은 세련미가 넘친다 @songyiflower 인스타그램

    향긋한 쑥갓 꽃은 정원에 가꾸는 데이지 꽃처럼 단정하고 귀엽다. 짙은 노란색의 꽃술과 연결되는 꽃잎과 연한 테두리의  꽃 모양은 세련미를 뽐낸다.

가지꽃 @songyiflower 인스타그램

   가지 모종을 심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가지 색보다 연한 꽃이 피는데 완전히 내 스타일이다. 주름이 잡힌 꽃잎은 우아하고 꽃술의 볼 수록 신기했다. 유난히 가지 꽃이 탐스럽고 커다랗게 핀 밭은 모든 작물이 거대했다. 밭주인을 만나야 비법을 엿들을 텐데,   때마다 기웃거렸지만, 아쉽게도 들을 기회는 없었다.


  채소 꽃은 꽃이지만 화단을 꾸미기 위한 꽃과는 다르다. 꽃으로 보기에도 아름답지만, 피워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피는 장소가 ' 밭'이라는 것이 답일 것이다. 다음 농사를 위한 씨앗을 물게 하는  마무리의 꽃이기도 하고, 열매를 기 위한 기회를 잡으려는 시작의 꽃이기도 했다. 꽃이 씨앗이고, 꽃이 열매가 되는 말 그대로의 채소 꽃이었다.


  찾아갈 때마다 른 모습으로 나를 반하게 했다. 매일 가지 않으니 오히려 작물이 크는 것이 더 잘 보였다. 집안 베란다에서 키우는 작물과는 전혀 다른 기쁨이었다.

  잊을 만하면 찾아가는 친구 같았다. 안 본 사이 안부를 묻고, 쌓아두었던 하소연을 했다. 수다가 길어져도 나를 귀찮아하지도 않고, 심술을 부려도 괜찮다고 해주는  애인(^^)처럼 말이다.  애인은 나를 위해 향기로운 선물도 잊지 않았다.  쏟는 것을 알아주는 듯, 밭은 채소 꽃을 내게 안겨 주었다.  


이전 05화 텃밭에 야생화는 없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