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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Mar 08. 2021

텃밭에서 자란 열무는 죄가 없다

열무김치

   텃밭에 심으려고 열무 종자를 샀다.  여름이 오기 전에 열무김치를 담가먹을 수 있을까? 기대 반 호기심 반이었다. 6월 날이 더워질 때 열무를 사다가 김치를 담그면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줬다. 텃밭에서 직접 키운 열무로 김치를 담글 생각에 자신감은 고공행진을 했다. 봉투가 이천 원이니 키우면 몇 배는 더 먹을 수 있을 거란 계산이었다.

 

  열무는 모종이 아니라 종자를 뿌려야 해서 씨앗들이 다 발아가 될지 걱정이 되었다. 씨앗을 뿌리고 며칠 후  비가 내다. 그 덕분인지 일주일 만에 총총 나비 모양을 한 싹이 올라왔다.


 발아율은 거의 99% 가까이 되었는데, 열무 밭은 콩나 시루 되었다. 아뿔싸! 오히려 씨앗들을 간격을 두지 않고 심어서 문제였다. 아가 안될까 싶어서 씨앗을 너무 많이 넣었기 때문이다. 

촘촘히 자란 열무 새싹

  싹이 올라오자 일주일 만에 빽빽한 숲이 되었다. 이때 속아 주긴 했지만 뿌리들이 서로 붙어버려서 대책이 서지 않았다.     

  남편이 용기를 냈지만, 결국 얼마 속내지 못하고 이대로 수확하기로 했다.


  4월 말에 심은 열무 씨앗은 6월이 되자 더 자라지 않았다. 노지 열무라 키가 작은 가 보다 싶었다. 하지만 다른 밭에 열무는 마트에서 파는 열무와 많이 닮아 보였다.

재때 속아주기를 하지 않아 숲이 되었다

 이미 간격 없이 자란 열무는 줄기가 가늘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열무 꽃이 피기 전에 열무 수확을 면 되겠지 싶었다.


  초보 농부는 또 하나의 실수를 한다.

 열무 꽃이 피어 버렸다. 꽃을 그대로 두면 종자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열무가 질겨진다. 줄기 하나를 뜯어 입에 물었다. 시장에서 사던 맛이랑 좀 다른 것 같다. 질기고 씁쓸했다. 


  열무김치를 담그니 김치통 하나가 꽉 찼다. 6월 중순 열무김치 한통을 얻었고, 밥상 위에 텃밭에서 나온 쌈채소가 아닌 것이 처음 올라갔다. 김치를 입에 넣고 물거리며 남편의 눈치를 봤다. 실망한 남편의 표정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첫 열무 수확도 엉망이었고, 아슬아슬하던 김치 담도 망쳐버렸다.

  

  위에 장식된 열무 꽃은 곱기만 했지만, 열무김치는 턱이 아프게 씹어 먹어야 했다. 아이도 텃밭에서 수확 열무인걸 알고 맛본다며 입에 넣었다.

 열무 줄기가 앞니로 잘라지지 않자 "엄마 이거 열무 맞아? 이상한데? 이거 안 잘려! 난 못 먹겠어. "면 내려놓는다.

 김치 한통의 열무는 6개월 뒤 배추김치를 새로 담고 나서, 추운  어느 날 조용히 처리되었다.(ㅜㅜ) 김치는 절대 쓰레기통으로 보내지 않는 것이 철칙인데 질기고 쓴 열무김치는 먹을 수 없었다.


다음번 열무를 심을 때는 다음의 것들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1. 씨앗 종자를 하나씩 1cm 간격으로 심을 것.  

  걸려도 줄 간격을 맞추며 정성을 다할 생각이다.


2. 싹이 올라와서 나물 크기가 되면 과감히 3cm 간격으로 속줄 것. 

 속아낸 열무는 비빔밥 해 먹어야지.^^; 정말 과감히 뽑을 것이다.


3. 열무는 한 번만 직접 파종하고 나서 두 번은 심지 않을 것.

 열무는 장마가 겹쳐지면 병충해가 심해진다. 온갖 벌레들이 몰려든다. 그중에서도 달팽이들이 너무너무 좋아했다.


4. 열무는 빨리 자라나기 때문에 40일 안에 수확할 것.

너무 기다리다간 꽃대가 올라와 버리니, 달력에 심은 날을 표시해두고 하루 전에 수확할 것이다. 

 ※ 마트에 파는 열무는 전문가의 솜씨로 자란 것이다. 나는 따라 할 수 없다.


5. 무김치 대가의 조언을 따를 것.

 사다 먹는 열무는 연해서 살짝 소금만 뿌려도 괜찮았다.  하지만 노지에서 자란 열무는 잘 절여야 질긴 열무를 김치로 담가 먹을 수 있다. 게다가 씁쓸한 맛도 줄일 수 있다. 치는 역시 절임이 생명이다.

  물론 내 손맛은 그다지 자랑할 만한 솜씨가 아니다. 재료에 맞게 잘 담갔다면 좋았겠지만, 너무 쉽게 생각했다. 열심히 자란 열무가 무슨 잘 못이 있겠는가?  텃밭에서 자란 열무는 죄가 없다. 주인을 잘 못 만나 고생하며 자랐고, 능숙한 요리사가 아닌 나를 만나 결국 억이 되었다.

 열무야,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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