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쌍 Jun 03. 2021

우리는 매일 일기예보를 본다

농부의 마음

  오후 늦게부터 내리는 빗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텃밭을 푹  적실만한 비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가족은 2평 남짓 밭을 빌려 쓰는 초보 꾼이다. 서울이 고향인 남편은 농사 경험이 전혀 없고, 나는 제주 밀감 밭에서 나고 자랐지만, 아버지가 가꾸시던 우영팟은 접근 금지였다. 이들은 밭엔 관심도 없고 흙 파는 것과 곤충 찾는 일에만 열광했다.

 그래도 텃밭은 마음이 넓다. 농부가 서툴지만 찾을 때마다 주기만 하는 수확물 앞에선 감격의 미소를 짓게 했기 때문이다.

  4월부터 시작된 농사는 시작이 좋았다. 옮겨심기 전 작은 포트에 있던 모종들은 첫 모습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훌쩍 자랐다.  두 달 넘게 먹은 잎채소들은 아삭거리며 생으로 먹는 즐거움을 주었다. 씹을 때마다 입안을 맴돌며 전혀 질기지 않고 알맞게 아삭거렸다.


  밭을 다닌 후부터 가족들의 컨디션을 매일 살피듯 신경 써야 할 일이 생겼다. 바로 날씨다. 그리고 간절하게 '단비'를 기다리게 되었다. 밭에 물을 주려고 한참을 물조리개로 오가지만 시원하게 내리는 비만큼은 못했다.

비온 다음날 찾은 텃밭의 풍경

 항상 일기예보를 살피지 않으면  헛수고를 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며칠째 쨍쨍 해가 내리쬐서 밭이 바짝 말라 물을 주고 왔는데 저녁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 연 이틀을  온 것이다. 비가 그치고 밭에 가보니 여기저기 물고랑이 생겨있었다. 뿌리가 드러난 모종에 흙을 덮어주고, 고추 지지대는 단단한지 살펴야 다.

 해가 없이 흐린 날만 이어지면 물을 준 게 마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럼 물을 주기가 참 애매모호 해진다.


고추와 깻잎은 6월부터 시작이다

  고추와 깻잎은 남편이 기대가 컸다. 하지만 성장 속도는 잎채소들과 차이가 났다. 게다가 물을 많이 먹는 편이었다. 고추는 충분히 물을 주어도 다음 텃밭에 가면 잎사귀가 시들해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가서 물을 주기엔 미안하기만 했다.

   매일 비가 간절했다. 하루 종일 충분히 비가 내린 날은 2-3일 후에 가도 초록 이파리들 반질 반질거렸고 땅도 적당한 수분을 머금고 있었다. 반대로  2-3일 동안 비만 내린 날은 할 일이 많아졌다. 비가 그치면  밭으로 달려갔다. 모종들이 쓰러져버리거나 물이 안 빠져서 논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히 키가 커진 상추와 치커리는 지지대를 세워주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로 자주 쓰러졌다. 잡뽑기는 젖은 땅이라 쉽게 뽑아졌다. 농부가 비 온 뒤엔 꼭 밭을 나가 봐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열무를 뽑고 나서 두 번째 파종을 했는데, 다음날부터 비가 여러 날 왔다. 씨앗을 심고 흙을 단단히 덮었지만 싹이 난 열무는 뿌린 씨앗에 반도 안되었다. 이럴 땐 내린 비가 좀 얄미워진다.

 비가 며칠 내리고 화창한 날이 이어지면 '고추꽃도 떨어지지 않겠지?' 뜨거운 태양의 기운을 받은 '호랑이콩은 알이 얼마나 커졌을까?' 내심 기대하게 된다. 그런데  막상 밭에  떨어진 고추꽃과 시들해진 콩잎을 보면 '아차' 싶어 진다. 쉬운 게 정말 없는 듯하다.

 더군다나 농부의 마음을 이해하기엔 우리 부부는 배워야 할 것이 많았다. 농법은 공부를 하면 도움이 되었지만, 자연이 내려주는 날씨에 대해선 배울 수 있는 교과서가 없었다. 단순하게 수확시기만 보며 따라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이들의 마음을 살피는 일처럼 날씨를 살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텃밭이 주는 선물

 우리 부부는 일기예보를 미리 챙겨 보며 텃밭을 갈 날을 정했다. 그리고 틈이 나면 혼자 밭으로 갔다. 착한 텃밭은 늘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게 선물을 주었다.

 펜데믹으로 오가는 사람들과 조심해야 했지만, 텃밭은 집 다음으로 편안함을 주었다. 밭에서 난 채소를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아두며, 종류 별로 꺼내 먹는 재미가 매일매일 쏠쏠했다. 씁쓸한 치커리만 남았는데 다시 밭에 가는 날은 그마저 동이 났다. 

  6월 한 달 일기예보를 보며 비 오는 날이 며칠이나 되는지 세어보았다.  그나저나 또 고민이다. 장마가 오기 전에 감자 수확을 해야 하기 때문이. 농부의 근심은 날마다 그치지 않았. 그래서 우리는 매일 일기예보를 본다.

수확을 기다리는 감자



 

이전 08화 텃밭에서 자란 열무는 죄가 없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