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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Jul 20. 2021

텃밭 주인은 여름 더위도 안 탄다

여름 텃밭

 텃밭은 장마가 지나갔다.  여름 텃밭은 시들시들 힘이 없다. 신나게 수확하던 사람들도 휴가들을 갔는지 텃밭은 풀밭이 되어 버렸다. 감자를 수확하고 나선 기분도 한풀 꺾인 듯 남은 작물들 돌보기에 만족해야 했다. 오전에 서두르지 못하는 날은 오후 늦게 밭에 가야 했다. 밭일을 하는 시간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작은 밭이라도 뙤약볕은 무섭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텃밭 입구에 한 줄로 선 봉선화들이 쏟아지듯 꽃을 뿌려서  달궈진 아스팔트 바닥은 꽃길이 되었다.     

 텃밭은 바짝 말라 있었다. 치커리와 상추씨앗을 받으려고 남겨둔 모종들 모조리  거미줄이 칭칭 둘러싼 모습이 오싹했다. 에서 정리해야 할 작물들과 남겨둬야 할 것을 선택해야 했다.


수확고 정리한 작물들


1. 쑥갓

 열무를 두 번 수확하고 나니 쑥갓이 돋아 났다. 감자를 수확한 자리에 쑥갓 씨를 심었는데 비를 몇 번 맞더니 씨앗이 쓸려가 버렸다. 3번 만에 겨우 싹이 돋아 그 쑥을 한번 잘라먹었는데 장맛비에 비실비실 남은 줄기가 녹아 버렸다. 고온엔 자라지 못하니 종시기를 너무 늦게 잡으면 안 된다.


2. 호랑이콩

 6월이 되태양이 뜨거워지니 꽃은 더 많이 피었다. 장마가 오기 전에 수확해야 했지만 여물지 않은 것은 두었더니 장맛비에 물러 터졌다. 작은 포트 모종 키워서 밭에 옮겼는데 밥공기 하나만큼 수확했다. 모종을 너무 적게 키워서 수확량이 작았다.   

 

3. 토마토

토마토는 완전히 실패작이다. 토마토만큼은 씨앗 파종이 아닌 모종을 심어서 키워는 편이 나았나보다. 줄기가 길어지니 지지대를 계속 신경 써서 해줘야 했다. 요리조리  가지들을  잡아주느라 애쓴 보람보다 수확이 신통치 않았다. 토마토보다는 방울토마토가 수확의 재미를 주는 듯했지만,  집 베란다 화분에 키우는 토마토가 훨씬 경제적인 듯했다. 기대가 큰게 화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4. 비트

 이렇게 생소한 채소는 텃밭을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잎이 나는 대로 뜯어 쌈으로 먹었는데 뿌리가 양파처럼 계속 부풀어졌다. 다른 밭엔 애플수박만 하게 자라는 것도 보였다. 수확해보니 양이 많아 피클을 만들었다. 무와 섞어서 만들기도 하고 비트만 넣은 피클도 만들었다.


 밭을 정리하니 텃밭은 휑해졌지만 집으로 온 수확물이 냉장고를 꽉 채웠다. 마치 장을 보고 온 듯 먹거리 정리를 해야 했다. 먹을 만한 걸 들고 왔지만 상해 버려지는 채소를 없어야 했다. 텃밭을 하고 나니 집에서도 부지런을 더 떨었다. 

텃밭이 준 선물들




텃밭에 남은 작물


1. 깻잎

 더위에 아랑곳 안 하고 깻잎은 무성하게 자랐다. 줄기가 단단해지면서 가지들이 서너 개씩 뻗어 나왔다. 손바닥만 한 이파리가 생기며  수국나무처럼 무성해졌다. 아직까진 병충해도 없어 다행이었다. 손바닥만 하게 커진 잎부터 똑똑 뜯었다. 향기가 손끝에 물들며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비바람에도 튼튼해서 지지대를 해주지 않아도 텃밭 반대편 고추와 키가 비슷해졌다. 여름 내내 본격적으로 잎 수확을 할 기분에 설레었다.


2. 고추

 고추는 무섭게 전진 중이다. 깻잎보다 더 많은 가지가 뻗어 나오더니 잎 사이로 꽃대가 바로 달렸다. 수북이 달린 초록잎 사이로 새하 꽃은 고추 모종 전체를 뒤덮은 듯 만발했다. 항상 쌀뜨물을 받아다가 갖고 가서 뿌려주었다. 내 정성을 고추도 아는지 볼품없던 줄기가 풍채 좋은 나무처럼 자라고 있었다. 처음 모종을 심을 때는 지지대를 대나무로 썼는데, 장마 동안 자꾸 쓰러져서 다른 밭처럼 쇠로 된 굵은 지지대로 바꿨다. 수확한 고추는 최고로 매운맛이었다. 얼굴이 화끈하고 눈물이 핑 돌 정도였지만 금세 사라졌다. 일반고추 모종을 샀지만 고추맛은 역시 매운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큰 고추가 작은 고추보다 매웠다. 커갈수록 고추가 점점 매워지는 것도 처음 알았다.

 깻잎과 고추가 지키는 밭은 여름 더위에도 건강했다. 어떻게 뜨거운 태양을 견디는지 궁금해서 텃밭을 가는 일은 여전히 즐겁기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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