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에 피는 야생화들은 게으른 내게 야박하기만 했다. 먼저 알아차리려는 나의 도전은 번번이 실패한다. 꽃은 언제나 타이밍을 헷갈리게 하기 때문이다.
소설을 제때 읽고 반납하러 왔다면 첫꽃을 보았을 텐데, 절반은 시들었지만 또 그 절반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을까? 봄 그리고 꽃에게 사과해야 할까? 너를 닦달할게 아니라 제대로 해야 하는 건 바로 나였다.
너무 닦달을 했나 보다. 계속 불안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봄이 오지 않는다고 투덜대고 꽃이 제때 피지 않는다고 혀를 찼다. 봄비도 오는 듯 말 듯 시늉만 하는 것처럼 알아채지 못하게 내린다. 어제 읽던 책이 계속 나를 쳐다보는 듯했다.
주황색 포스트잇을 여러 군데 붙여놓고 수선을 떨며 읽은 책인데 언제부터 붙들고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책을 너무 오래 들고 있었다. 상처를 오래 보고 있으니 매끈한 피부가 더 이상해 보인다.
늦장 부리며 끝까지 읽지 않은 소설책을 다 읽고 나니 산뜻한 공기가 쐬고 싶었다. 반납할 책을 들고 도서관을 향했다. 마스크가 가린 얼굴이 익숙해버린 거리는 대부분 코와 입이 없다. 꽃이 피면 향기가 저절로 풍길 텐데 아쉬웠다. 그래서 일까. 여기저기 주변 시선을 살피던 내 예민한 감성도 사라져 버렸나 보다. 서서히 흐릿해진 경계심도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듯 자신감이 느껴졌다. 앙상한 가로수와는 대조적으로 생기 넘치는 과일 가게에 한눈을 팔았지만 후각이 너무 무뎌져서 잘 익은 딸기 향기도 맡아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