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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Nov 12. 2024

어른이 되지 못한 피터팬과 대화

피터팬

도망치듯 집 밖으로 나갔다.

어떤 일이든 감사하게 주어지면 해볼 마음이었다. 그러다가도 작은 내 키는 더 작게 느껴졌다.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기분을 너무도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었다.

나는 타인의 감정이 쉽게 전이되는 스펀지 같은 구석이 있다.

슬픈 장면에 금방 빠져서 눈물이 맺히는 나를 부모님은 늘 놀리셨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사람들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은 누구나 자라기 마련이다. 딱 한 아이만 빼고 말이다.


 피터팬의 첫 문장에 끌리듯  마을을 털어놓았다.


성숙하지 못하고 자라지 못하는 내면 아이를 갖고 있구나.

피터팬 책 속에만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내 안에 자라고 싶지 않은 아이를 늘 숨다. 사랑받고 싶어서 두리번거리고 눈치를 보는 아이를 말이다. 큰 우물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흔들릴 때마다 눈물이 쏟아지는 걸 막을 도리가 없었다. 우물은 넘치긴 했지만 금세 슬픔으로 꽉 차 올랐다. 투명해서 속이 들여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먹물을 풀어놓은 듯 컴컴한 한밤중 같았다. 보이는 건 수면 위에 비친 내 얼굴이었다. 내 안에 피터팬의 모습을 한 자라지 않는 아이가 있다.


내 얼굴을 닮은 누군가가 다른 시간에 살고 있을 것 같았다. 피터팬이 사는 네버랜드처럼 모험을 즐기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집을 떠나고 싶다는 기분을 억누르며, 독립할 때가 오기를 수없이 수없이 기다렸다. 디처럼 엄마노릇을 해볼 기회를 얻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결국 나도 웬디처럼 세월이 데려다 준대로 엄마가 되었다.


 아이였던 웬디가 할머니가 되고 그의 딸이 피터팬을 만나 네버랜드로 떠난다. 마가레트가 딸을 낳고 또 피터의 엄마가 된다는 작가의 바람은 실현되었는지 모르겠다. 나도 엄마가 되었다.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내 안에 피터팬은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달링 부인처럼 나도 엄마이기 때문이다.


피터, 나도 좋은 엄마는 아닌 것 같아. 그렇지만 피터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냥 좋은 엄마 같은 사람이면 돼.


웬디가 갑자기 엄마 역할을 하게 된 장면에서 나온 대사다. 달링 부인처럼 다정하고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할지 모른다는 기분은 내가 가져 보지 못한 모정에 결핍 때문이었다. 하지만 좋은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있었다.


아이들은 침대에서 미끄러져 나와 엄마의 품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이 있을까.
하지만 이 장면을 지켜본 사람은 딱 한 사람, 창문으로 방 안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이상한 소년뿐이었다. 그 소년은 다른 아이들이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수많은 기쁨을 맛보았다.
하지만 그에게 영원히 금지된 단 하나의 즐거움, 그 즐거움을 그는 창 너머로 지켜보고 있었다.


 피터팬이 창문너머 본 풍경을 나는 오래 겪었다. 그래서 네버랜드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피터팬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내가 가방을 들고 집을 떠나올 때처럼 말이다. 다 자란 성인이었지만 나는 모험을 떠나는 피터팬처럼 마냥 즐거웠다. 날아오르는 재주는 없었지만 서울행 비행기 안에서 충분히 즐거웠다. 붕 뜬 기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네버랜드를 찾아 나선 건 나의 의지였기 때문이다.


때때로 과거는 나를 고개 숙이게 한다.

태생을 숨기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완전히 버릴 수 없었다. 피터팬의 작가 제임스도 그러했던 것 같다.




 제임스 매튜 배리는 작가로 유명세와 명예를 얻은 성공한 작가 중에 하나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그는 상처받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형제를 잃은 어머니가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고,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서 그가 한  행동은 충격적이었다.


죽은 형의 옷을 입고 형의 흉내를 내고 살았기 때문이다. 자라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 것인지 그는 키도 형이 세상을 떠나던 해 150센티 그대로였다고 한다.


 작가는 스스로 경험을 작품으로 옮겨 걸작을 만들었지만, 그는 평범한 행복을 길게 갖지했다. 자신의 작품에 출연했던 여배우와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갖지 못했고 순탄치 못한 결혼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를 창조했지만 정말 그가 원하는 것이었을까?


피터팬은 엄마가 행복해시길 원해 스스로 했던 연극의 역할이었다면, 제임스는 웬디처럼 나이가 들고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는 있는 그대로의 삶을 꿈꿨을 것 같았다.


 작가의 상상력에 탄성이 나오기도 하지만,  커다란 상처 속에서 만들어진 형벌 같은 것이라면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고 즐거운 작품을 남긴 작가이기에 그의 삶은 칭송받아 마땅하다.


나는 언제쯤 상처를 벗어던질 수 있을까.

공기 속으로  사라진 인어공주가 되면 어떨까 싶은 날도 많았다. 숨고  싶던 건지 도망치고 싶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냥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늘 기다렸다. 물거품처럼 사라지길 말이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고 나조차 잊어버리게 말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내 안에 피터팬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나의 네버랜드는 글쓰기다.


글로 쓰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없었다. 글을 쓰면서 느끼는 효용감은 대단한 작품을 완성하지 않았어도 가질 수 있었다. 문장들이 나를 데리고 가는 네버랜드에서는 처음 만나는 문장도 있고, 비슷하지만 다른 얼굴을 한 내가 있다. 언제든 모험을 나설 준비만 되어 있다면 피터팬은 나를 데리고 갈 것이다. 머리가 하얗게  할머니가 되어도 말이다.

  

 네버랜드를 오가는 나는 계속 나이가 들어가겠지만, 모든 것이 순탄하게 흘러가길 바란다.

피터팬이 나를 데리러 올 테니, 나의 글쓰기는 끝이 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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