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의 개나리를 보려다 얼어 죽을 뻔한 이야기의 시작
스페인에서의 섭씨 50도 혹서기 훈련은 끝났다...
이제 동유럽에서의 혹한기 훈련이 시작된다...
실제 온도 영하 19도, 체감온도 영하 25도...
속된 말로 싸대기를 강타하는, 강한 눈보라로 인해 앞으로 전진하기조차 힘든 날씨에 우리 가족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걷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반인류적이며, 극단적인 인간성의 말살을 볼 수 있다는 이 곳 아우슈비츠에
우리 3명의 가족...그렇다, 사십이 다 돼가는 우리 부부와 바로 만 한 살의 우리 첫 째 딸 다후가 있다.
정확히 만 1살, 딱 365일을 푸른 지구에서 지낸 다후는, 지난여름 스페인 세비야에서 지옥의 더위 (당시, 폭염이 지나간 유럽, 특히 스페인 남부 세비야 온도는 45도를 기록했고, 열 폭풍이 진행된 시내 도로 위의 온도계는 52도를 가리키고 있었다)를 겪었던 우리 첫 째 딸 다후는...
오늘 바로 이 자리, 아우슈비츠에서
체감온도 77도 차이의 벽을 이겨내고, 인간과 세상이 얼마나 차갑게 변할 수 있는 지를 경험하고 있다.
1. 슬픈 이야기의 시작
이 슬프고도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의 시작은, 때마침 방학이라 심심해 죽겠던 나에게 폴란드에서 일하는 후배가 새해맞이 전화를 하면서부터이다. 그동안 체코와 헝가리 등 동유럽에 대해 좋은 추억들만을 차곡차곡 쌓아왔던 내게, 나만큼이나 심심했던 그 후배가 전화를 했고, 우리는 예상대로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정말이지 할 말이 다 떨어지자, 그놈이 대뜸 무리수를 두었다. “형, 너무한 거 아냐? 그렇게 여행 많이 다니면서 바로 옆 동네 폴란드는 정말 안 올 거야?”라는, 누가 봐도 영혼 없는 초대 요청을 했다. 몇 년 만에 만난 친구에게 “조만간 한번 보고, 소주 한잔하자” 정도의 인사치레였으리라...
웬만하면 대꾸조차 안 했을 이 쓸데없는 소리에, 심심함이 극에 달했던 나는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하게 된다. “너...정말...우리 가족 가면 잘해 줄 거야?”라는...
그러나, 내가 간과한 것은, 척박한 동구권 생활에 지친 그 후배에게, 기다림이란 단어가 이미 뇌에서 삭제된 지 오래되었다는 것이었다. 백 명에 한 명 꼴로 걸릴법한 자신의 허술한 거미줄에 걸린 내가, 자신마저도 의심스럽다는 말투로..."오케이, 그럼 약속했어"라는 화답을 0.1초도 걸리지 않고 던져왔다.
내가 언제 간다고 했는가? 난 그저 “가족들이 가면 잘 해 줄 거지”라는...그 누구도 “아니, 잘 해 줄 수는 없을 거 같은데”라는 대답을 할 수 없는 의문문을 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한번 물면 놓지 않는 사냥개와 같이, 자신의 허술한 보이스피싱에 걸린 나를 그냥 놔둘 리 없었다. 이렇게 나는, 지금도 그리운 1월의 겨울비가 내리던 런던에서의 어느 날, 폴란드행을 결심하도록 강요된다.
그로부터 불과 하루 후, 철저하기로 소문난 나는 비행기표를 끊기 전에 다시금 전화로 마지막 확인을 시도한다. 아참, 원래 본 책에서는 실명을 쓰지 않기로 결심했으나, 이 바보 후배만은 실명을 쓰려한다.
“근호야, (니가 정말 안 바쁘다는) 3월의 폴란드는 안 춥냐? 그래도, 동유럽이고, 내륙 쪽인데 춥지 않아?” 라는...굳이 물어보지 않고도 내가 인터넷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보이스피싱에 이미 한 차례 성공한 미친개 근호는 “아, 형...유럽 하루 이틀 산 사람도 아니고, 촌스럽게 왜 그래? 나 좀 창피해지려고 하네...”라는 남자의 자존심에 무한 난도질을 하는 듯한 발언과 함께, “형, 여기도 3월이면 개나리 펴. 형, 알지 개나리? 그 왜 노란 거 있잖아”라는 말로써 나의 천부적인 구글링 날씨 검색 능력마저 사전 차단하고야 말았다. 결국 나는, 그날 바로 나의 전용기나 다름없는 Ryanair를 이용하여, London-Budapest, Budapest- Warsaw, Krakow-London으로 이어지는 다구간 비행기 표를 불과 200 파운드에 예약하고야 만다. 즉, 우리 세 가족 모두 하여, 2개국 3개 도시 경유 비행기표를 한화 약 34만 원, 인당 11만 원에 예약 성공한다. 이렇게 하여, 폴란드 여행의 막이 오른다.
[ 참조 : https://brunch.co.kr/@mussmuss/1 - 저가항공의 끝판왕 라이언에어 Ryanair 이야기 ]
참고로, 여행 직전에 내 와이프 역시 “오빠, 폴란드 추운 나라 아냐?”라는 매우 무식한 질문, 어려운 말로 우문을 던졌고, 나는 근엄한 목소리로
"너 유럽에 2년째 살면서 정말...폴란드에도 3월이면 개나리 피거덩...
그 왜 돌려서 던지면 헬리콥터처럼 떨어지는 그 꽃...
나 지금 너한테 좀 실망하려고 해..."
라는 매우 세련된 현답으로 아내를 무안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시작된 지옥의 폴란드 여행은...2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