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1일 입사. 14년 전. 20대. 제약회사 영업사원 경력 2년. 나름 SKY 대 출신." 입사 당시 스펙을 요약해 봤다. 지금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할 때, 첫 직장 때도 그랬지만,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실력도 키워서 연봉 많이 받는 성공한 사람이 돼야지'라고 생각하며 꿈과 희망을 가슴에 품고 열정적으로 30대를 살았다. 어느덧 40대 중반이 되고, 또 한 번 '새로운 환경'으로 움직이려고 한다. 퇴사 사유는 무섭게도 첫 이직 때와 같다.
- 행복한 미래가 기대되지 않는다.
- 여기서 아무리 월급을 많이 받아도 행복할 것 같지 않다.
- 나를 갉아먹으며 살다가 결국 아무것도 남을 것 같지 않다.
공식적으로는 퇴사사유를 건강 문제라고 했다. 그러는 편이 쓸데없는 인터뷰 많이 하지 않아도 되고, 무난하게 퇴사 업무를 진행할 수 있다. 사실 코로나19 백신 접종 이후 건강이 많이 나빠진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없다. 진짜 퇴사사유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조직 내 구조적 모순이 많아지면서 나는 점점 무기력해졌고, 그 불공정함에 의욕을 잃었다.
첫 번째 퇴사는 ‘사회 초년생이고, 더 늦기 전에 삶의 궤도를 정상화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영업을 하다 보니 남에게, 특히 상사에게 내 생활이 휘둘리는 것이 너무 싫었다. 젊었고 경력이 짧았기 때문에 실행하는데 부담도 적었다. 그런데 두 번째 퇴사는 14년 가까이 근무했고, 30대를 관통한 회사였으며, 뭐니 뭐니 해도 40대 중반에 백수가 된다는 것이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미혼이라는 점이 조금 덜어줬지만,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덜어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과감히 결심했고, 이번에는 월급쟁이를 벗어나 보려고 한다. 마음속에 두려움과 설렘. 걱정과 기대가 공존하는 이상한 상태이지만, 행복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몸이 망가지고, 몸이 망가져서 정신이 피폐해지며 더 불행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꼭 끊어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앞으로 뭘 할지 계획을 세우고 나가라’, ‘안은 전쟁터지만, 밖은 지옥이다’라는 주변의 만류도 있었지만, 전부 퇴사 안 해본 사람들이 하는 핑계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또 실제 퇴사자들이 유튜O에 나와서 하는 이런저런 이야기도 ‘퇴사해서 지금보다 더 잘 나가야지’라는 외적인 성공만 바라는 것들뿐이었고, 그마저도 ‘뷰’를 올리기 위한 쇼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아주 작은 울림도 주지 못했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바람이 매우 컸고, 부끄럽지만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아직 몰랐다. 그래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죽는 것보다는 낫지’라는 심정으로 저질러버렸다. 무엇이든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니까 그렇게 행복을 찾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