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Tatoo, 문신)에 대한 생각

칸트에 대한 향수 : 인간은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by 철없는박영감
몸이 스케치북이냐는 어른들의 일침이 생각나다.


침대에서 떨어졌다. 자면서 뒤척이는데 갑자기 허공에 붕 뜬 기분이 들더니 이내 정신이 번쩍 듦과 동시에 쿵 소리가 났다. 순간적으로 팔과 다리로 버텼으나 또다시 허리에 충격이 가해졌다. 며칠간을 복대를 차고 고생하다가 아직 사용하기 이른 감이 있는 온수매트를 켜서 뜨끈하게 허리를 지졌다. 그렇게 며칠을 자고 일어났더니 조금 괜찮아졌다. 그래서 일요일 새벽부터 부모님께 전화해서 허리가 아파서 뜨거운 온천물에 몸을 좀 담거야겠다고 전격 온천행을 결정했다.


따뜻한 온수에 목까지 잠기게 몸을 누이고 있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통증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병이 낫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오래간만에 찾은 온천은 시설이 좀 낡았을 뿐, 물과 효과는 그대로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좀 낯설었다. 특히 '문신'. 크냐 작냐 정도의 차이일 뿐 젊은 사람 대부분이 문신을 새겼다. 상체 반이상을 덮은 사람도 다섯 손가락을 넘었다. 하체에 수영복을 입은 것처럼 전체를 문신으로 도배한 사람도 보였다. 처음에는 조폭이 단체로 온천욕을 하러 왔나 하고 무서워서 피해 다녔다. 하지만 한정된 공간 안에서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린 문신남들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들렸다. 그들은 어린 자녀의 아빠였고, 자전거 마니아였으며, 온천 주변 동네 주민이었다.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


요즘은 '타투(Tatoo)'라고 외래어로 지칭한다. 문신하면 앞에서도 말했듯이 조폭이 연상되고 거부감이 들기 때문인지 시술해 주는 사람도 '타투이스트(Tattooist)'라고 부른다. 외국에서는 이미 예술의 한 분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시술은 의사만 할 수 있기 때문에 불법이다. 그리고 요즘 그들이 합법화해 달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고 있으니 '타투이스트'를 합법화해 달라는 논리이다. 기본권 보장이라는 논리는 맞는 것 같은데 '표현의 자유'? 뭔가 찜찜한 기분이다.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라.

『"인간은, 그리고 일반적으로 모든 이성적 존재는, 이런저런 의지에 따라 임의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으로 존재한다." 칸트는 바로 이것이 인간과 사물의 근본적인 차이임을 상기시킨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다. 인간에게는 상대적 가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이고 본질적인 가치가 존재한다. 즉 이성적 존재로서 존엄성을 가진다.』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185~186P


철학자 칸트의 정언 명령 두 번째 공식이다. 한동안 이 부분에서 생각이 막혀 진도를 못 나가고 있었다. 문장자체로는 이해가 되지만 매우 추상적이고 머릿속에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다. 침대에서 떨어져 허리가 나간 것처럼 책을 읽다가 정신이 나갔다. 읽고 또 읽어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데 문신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마치 온천욕처럼 칸트가 무엇을 우려했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그의 '도덕법'이 이해됐다.


행위가 아니라 동기가 중요하다.


'동기를 중시하는 칸트의 철학'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면서 막혔던 생각이 뚫렸다. 사건은 기본권 보장을 위한 '사설 문신 시술'의 합법화라는 겉모습을 갖고 있지만 핵심은 인간이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의식' 그 자체이다.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인간이 수단으로 사용되면 안 된다. 이런 행위는 의료목적으로만 예외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 이런 것들이 비슷한 논리로 하나 둘 합법화되어 허용되기 시작하면 결국 힘없는 약자들이 어떤 세상을 맞이하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하다. '안전하지 않은 미래'는 가장 큰 사회불안 요소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철학들을 흔들면 안 된다. 낡고 오래됐다고 주춧돌을 뽑아내는 일은 없어야 한다.


발산과 표출이 표현의 전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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