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드는 것이 무서워지던 날들,

by 철없는박영감

한동안 잠을 못 자던 때가 있었다. 정확히 잠드는 것이 무서웠다. 꿈 때문이었다. 여기저기서 마구 욕먹는 꿈인데, 대꾸를 하고 싶어도 입은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 억울해서 안간힘을 써 겨우 입을 열면, 짐승같이 울부짖으며 육두문자만 쏟아냈다. 실제로 욕을 하며 잠에서 깬 적도 많다. 맞는 꿈을 꿀 때도 있었는데 계속 맞다가 도저히 안 돼서 반격을 하면, 실제로 주먹질을 하면서 깨어났다. 침대 매트리스를 때리면 그나마 나은데, 벽이나 가구를 잘못 치면 손을 다치기도 했다. 실생활에서는 주먹질은커녕 욕도 못 한다.


회사에서 억울하고 열받는 일이 많던 때이다. 다들 비슷하겠지만, 낀 세대라는 피해의식이 생기면서 나이 많은 사람들의 꼰대 짓에 억울했고, 나이 어린 사람들의 하극상에 열받았다. 그래도 참고 그냥 다른 일에 집중하다 보면 잊혔는데... 아니 잊혔다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덮어둔 꼴이었는지 무의식에 남아 쌓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 어렸을 때 나랑은 무관한 동생 잘못에 형이라는 이유로 엄마한테 매 맞았던 일, 학교에서 자율학습시간 반 분위기가 어수선하다며 반장이라는 이유로 선생님에게 따귀를 맞았던 일, 취준생 시절 도서관에서 열람실 자리 텃새로 서러웠던 일들이 다시 떠오르며 꿈에 나타났다. 악몽을 꾸는 횟수가 잦아지며 나중에는 잘 때마다 시달렸다. 그리고 잠드는 것이 무서워졌다. 그래서 술에 많이 의존했다. 술에 의존하게 되면서 건강은 점점 나빠지고 악순환에 빠지면서 자존감도 낮아지고 '행복'은 나와 관계없는 국어사전 속에 있는 단어일 뿐이라는 생각에 우울감도 커졌다.


지금은 퇴사를 함으로써 원인을 제거해 버리니 숨통이 트인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지만, 막상 저질러 버리니 불안감보다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려서 젊어진 것 같고 훨씬 더 희망적이다. 그리고 인생이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에 들어온 것 같아서 더 안정감이 든다. 남의 눈치 안 봐도 되고, 품위유지 한다고 가식 떨 필요도 없다. 퇴사를 권하지는 않지만, 막막하고 어찌할 바를 모를 때, 과감하게 던져버리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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