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진 위로들,

by 철없는박영감

요즘은 통화를 잘 안 하니까 카톡이나 문자로 안부를 묻는 사람들이 많다. 건강이 나빠져서 회사를 관뒀다고 하면, 다음 3가지 표현으로 가장 많이 위로한다. ‘어디가 얼마나 아픈데?’, ‘병원에서는 뭐래?’. ‘언제 낫는데?’. 속뜻이야 ‘빨리 나아라, 아프지 마라’로 같겠지만, 읽어야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거나 받는 경우가 많다. 문장만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뉘앙스와 분위기에 따라 받아들여야 하는데, 카톡이나 문자가 어디 그렇던가? 상대방의 표정이나 분위기 파악은 고사하고, 하고 싶은 말이 일방적으로 글로 전송되다 보니 좋은 속뜻은 상대방의 기분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아픈 사람은 자리에 가만히 누워있는 것도 힘든데, 위로한답시고 ‘어디가 얼마나 아픈데?’라고 '까똑!’하고 울리면 그 소리가 그렇게 거슬린다. 또 현 상태를 글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 여간 짜증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픔에 측정단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얼마나 아픈지 어떻게 설명하지? 단체톡방이면 스트레스받기 전에 알림 차단을 슬며시 누른다. 병원에서 뭐라고 하더냐고 물으면, 제일 난감하다. 의사와 상담한 내용과 의학용어들은 못 알아들을 것이 뻔하다. 나도 아파서 알게 된 용어들이지 평소라면 절대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다. 검사결과는 정상범위까지 외우고 다녀야 한다. 사실 종합병원에서 상담하면 알고 있은 것만 들린다. 직접 들은 나도 다 이해를 못 하는데... 어떻게 설명을 해줘...? 그것도 문자로...? 언제 낫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진짜 나도 모르고 의사도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다 나았다 싶다가도 하룻밤 사이에 악화되기도 한다. 완치라고 판명해 주는 질병은 40년 넘게 살았지만 손에 꼽을 정도다.


위로는 문자보다는 통화, 통화보다는 직접 얼굴을 보면서 해야 한다. 얼굴 보러 가겠다고 결심하는 것만큼 신중하게 고민하고 위로해야 한다는 말이다. 카톡이나 문자로 간편하게 내 마음만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 공감이 없는 위로는 마치 취조 같다. 상처받았거나 아픈 사람은 가만히 지켜봐 주는 것이 진정한 위로 아닐까?


누군가의 아픔과 상처에 공감하고 위로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감히 누군가를 위로하겠다는 생각은 안 하려고 한다. 위로라는 행위 자체가 '좀 더 나은 사람, 높은 사람'이라는 의식이 깔려있는 것 같아서 불편하다. 누군가를 위로할 만큼 대단한 사람은 몇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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