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가려고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곳에서 한 백인남성과 눈이 마주쳤는데, 큰 눈은 아니었지만 깊고 푸른 눈동자에 내가 쑥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쏜 눈빛이 블랙홀 속으로 흡수되는 듯한, 혹은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받아들여지는 그 느낌이 매우 좋아서 기억에 남았다. 그 뒤로 기다릴 일이 생기면 주변 사람들에게 눈빛을 발사하는 나만의 놀이가 시작됐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눈빛을 발사하면 그대로 튕겨냈다. 그러면서 묘한 기싸움이 시작되곤 했다. 상대방이 먼저 시선을 회피하면 알 수 없는 승리감에 도취되었고, ‘뭘 쳐다봐!’라는 상대방 눈빛에 정신이 번쩍 들어 안 그런 척 이어폰을 만지며 딴청을 피우기도 했다.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남의 시선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시비가 붙으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눈 똑바로 떠’ 같은 말이다. 기가 약한 사람들은 바닥을 보며 걷기도 하고, 스마트폰이나 다른 대상에게 관심을 쏟는다. 무시당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어하면서, 반대로 남을 무시하기는 잘한다. 이제는 눈빛 발사 같은 놀이는 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와 시선이 마주치면 최대한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생면부지 남이지만, 그냥 길 지나가다 마주친 사이고 찰나의 시선교환이지만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는 행복한 느낌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놀이는 정말 어렵다. 등에서 식은땀이 날 때도 있다. 그동안 얼마나 주변을 포용하지 못하고 나만의 성을 짓고,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었는지 반성한다. 눈은 영혼의 창이라고 했던가. 이제 내 영혼으로 들어오려는 것들을 그만 튕겨내고 받아들이고 흘려보내서 힘들이지 않고 지혜롭게 살아가고 싶다. 영혼의 그릇을 크게 빚어서 많은 것들을 담아둬야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한국 같은 동양 문화권은 감정표현을 눈으로 한다고 한다. 그래서 ‘^^’ 같은 이모티콘이 가능하다. 반면에 미국, 유럽 같은 서양문화권은 입으로 감정표현을 한다고 한다. ‘:)’이나 스마일 그림이 대표적이다. 아마도 눈이 마주쳤던 그 백인남성은 눈빛에 대해서는 신경을 안 썼을 것이다. 내 입만 바라보고 있지 않았을까? 그들은 반대로 내 입모양을 인상 깊게 봤을지도 모른다. 내 신경이 닫지 않는 곳에서 기품이 묻어 나오는 그런 사람이 돼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