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집 상전

윗 집 빌런! 아랫집 상전! 앞 집 꼴통! (제3화)

by 철없는박영감

<지난 이야기 마지막>


은영은 또 한 번 상황실에 죄송하다고 사과를 해야 했다. '그래 맞아 윗 층에선 작은 소리라도 아래층에서는 큰소리라고 했어... 어쩔 수 없이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옷정리만 조금 더 하고 자야겠다.' 은영은 옷방으로 갔다. 큰 짐은 대충 이삿짐센터에서 정리해 놓고 갔지만, 비싸고 예민한 재질의 옷은 따로 캐리어에 쌌었다. 캐리어를 끌고 옷방으로 가서 지퍼를 여는 순간! 인터폰이 또 요란하게 울렸다. 이번에는 누군가 찾아왔다.


"누구세요?"


"아~ 네 상황실인데요... 층간소음민원이 하도 들어와서 제가 좀 와봤습니다. 늦은 시간이라 죄송하긴 한데... 문 좀 열어주시겠어요?"


"아~ 네~" 은영은 문을 열며 순찰 일지를 들고 서있는 경비아저씨에게 살짝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층간소음민원이 계속 들어와서요... 혹시 뛰는 아이가 있거나 반려동물 키우시나요?"


"아니오. 아이도 없고 반려동물도 안 키워요."


"아... 그러시구나... 그런데 계속 시끄러운 발소리, 끄는 소리, 청소기 소리가 들린다고 민원이 빗발치네요..."


"아... 그래요? 죄송해요... 이삿날이다 보니 짐정리 때문에 많이 시끄러웠나 보네요. 진짜 조심할게요. 죄송합니다. 지금부터 안 할게요."


"아 넵 그럼 조심 좀 부탁드립니다. 저희도 민원이 계속 들어오면 이렇게 와 볼 수밖에 없어서요. 늦은 시간이지만 이해 좀 부탁드립니다."


"아이~ 아니에요... 괜히 저희 집 때문에 고생 많으시네요. 주의하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은영은 청소기나 가구 옮긴 건 그렇다 치고 옷방정리할 때 그렇게 소음이 났었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근무자의 고압적인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사 첫날이라 경황도 없고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 같았다. 그래서 모든 정리를 내일로 미루고 침구만 얼른 정리해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아랫집 상전


은영은 낯선 환경, 살짝 어긋난 가구배치, 어질러진 짐, 마저 해야 할 일들이 신경 쓰여서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똑같은 침대, 똑같은 매트리스, 똑같은 침구인데 폭신함도, 감촉도, 게다가 냄새까지 뭔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옛날 집에서는 잠이 안 오면 글을 쓰곤 했는데 여기서는 지금 글 쓰겠다고 책상, 노트북 세팅하다가 또 상황실에서 연락이 오면 진짜 낭패였다. 그래서 억지로 잠을 청했지만, 눈 감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같았다.


은영은 하는 수 없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지만 그럴수록 잠이 더 달아나는 악순환 빠져있었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 새벽 4시를 지나고 있었다. 층간소음 민원으로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잠자리에 든 게 10시니까 꼬박 6시간을 뜬 눈으로 누워있었다. 머리도 무겁고, 어깨, 팔도 아프고, 차라리 일어날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30분이 더 흘렀다.


그때, 갑자기 천장이 요란해졌다. 쿵... 쿵... 쿠쿠쿵... 쿵쿵! 그 유명한 발망치 소리 같았다. 새벽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아파트 구조가 이상해서 그런지, 유난히 소리와 진동이 컸다. 강한 진동 때문에 천장에 붙어있던 먼지들이 흩날린 건지 코에 먼지냄새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게다가 지금이 몇 시인가? 새벽 4시 반 아닌가? 이 꼭두새벽에 이렇게 요란하다고? 본인은 저녁 9시에 시끄럽다며 경비원이 집까지 찾아왔는데... 윗 집 제정신 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쏴아 하는 물 내려가는 소리와 함께 다시 쿵... 쿵... 쿠쿠쿵... 쿵쿵! 소리가 주방으로 퍼져갔다. 일어나서 화장실 갔다가 물 마시고... 윗 집 사람이 어디에서 뭘 하는지 알고 싶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었다. 옛날 집에서도 새벽 6시면 트레드밀로 추정되는 벨트 돌아가는 진동 때문에 집 전체가 웅웅 울려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새 집도 만만치 않았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옛날 집에서는 새해가 지나고부터 새벽에 천장이 울리기 시작했다. 못 듣던 소음에 무슨 일인가 의아했지만, 며칠간 계속되는 새벽소음으로 단잠을 설치고 나니 점점 자세히 듣게 되었다. 윙하는 벨트 소리와 함께 쿵쿵거리는 발소리로 봐서는 트레드밀이 분명했다. 윗 집이 신년 목표로 운동계획을 세웠나 본데 새벽 6시의 운동기구 진동소리는 은영의 생활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아파트 층간소음은 꼭 윗 집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에 새벽에 밖으로 나와 불 켜진 집을 찾아봤는데 은영의 집 위층과 위위층까지 불이 켜져 있어서 두 집 중에 한 집이겠구나 추측만 할 뿐이었다. 결국 은영은 그냥 기상 시간을 6시로 앞당기고 본인의 생활 소음으로 새벽소음을 상쇄시키는 것에 만족했다.


덕분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좋은 점도 있었고, 다행히 윗 집의 신년계획이 작심삼일로 끝나서 한 달 뒤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울리다가 나중에는 예전의 조용한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 은영은 괜히 성급하게 이웃 간에 얼굴 붉히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냥 그대로 넘어갔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아랫집인지 어딘지 모를 층간소음 민원은 각박한 수도권 살이의 예고편 같이 느껴졌다. 그런데 은영 자신은 지금 새벽 4시 반에 층간소음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 하~ 민원을 넣어야 하는 건가? 첫날이라서 예민한 걸 수도 있으니 참아보자 싶다가도, 또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자기도 어제 처음 이사 온 건데...라는 억울한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다.


그래도 소음은 30분 정도 나더니 그 뒤로는 또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며칠을 가만히 들어 보니 소음이 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새벽 4시 반, 오전 11시 반, 오후 4시 반... 나머지 시간은 세상 조용한 집이었다. 마치 몸을 가누기 힘든 사람이 계속 누워있다가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용변을 보고, 식사를 하고, 다시 돌아와 눕는 것 같은 생활패턴이 그려졌다.


쿵쿵 소리가 혹시 장애인이나 당뇨가 심해서 다리 한쪽이 없는 사람이 깽깽이걸음으로 이동하는 소리라면...? 그렇다면 충분히 날만한 소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예정된 시간에 예상된 소음 발생은 그냥 참고 넘길만했다. 그리고 민원을 넣었는데 윗집에 진짜 몸이 불편한 사람이 살고 있다면 안 그래도 각박한 세상에 자신도 각박함 한 수저를 추가한 것 같은 자괴감이 들 것도 같았다.


은영은 부모님과 식사를 하면서 이런 상황에 대한 신세 한탄을 했다. 은영은 부모님 댁 근처에 사는 이점을 살려 본인이 애초에 세운 계획을 약간 변형해서 실천하고 있었다. 매일 저녁 식사를 같이 하며 추억을 쌓고 있었다.


"그런 건 참지 말고 그냥 관리실에 확 민원을 넣어버려!" 아버지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이 양반이 큰일 날 소리 하시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소리를 해요? 그리고 애 말대로 장애인이면 우리가 좀 참아줘야지..." 엄마가 말려줬지만 정작 은영에게는 아직 '애'로 취급되는 것이 더 신경 쓰였다.


"아 그래도 아닌 건 아니지? 그런 고얀 놈들은 신고해서 혼구녕을 내줘야 해!"


"그런 소리 하기 전에 본인이나 잘 하슈... 밖에 쌓아 놓은 저 고물들은 언제 다 치울 거예요? 그리고 베란다 밖에 시래기 널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요? 경비실에서 알면 당장 뛰어 올라와요!"


"아니, 내가 내 집에서 시래기 말린다는데 누가 뭐라고 그래? 그리고 저게 팔면 얼마인 줄 알기나 해! 고물이 아니고 보물이네, 보물! 이 사람아…"


"아휴 이 양반이 진짜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 하고 계시네... 은영아 아빠 말 듣지 말고... 그냥 참아! 어차피 2년 살고 나올 거잖아..."


은영이 대답했다. "2년 뒤에 또 이사를 해야 한다는 거죠? 아휴 그냥 집에 들어와 살면 안 될까요? 아부지?"


"아빠는 늙은 딸년 데려다 키울 생각 없다."


아버지의 급발진에 엄마가 발끈했다. "아니, 이 양반이 진짜 애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네... 그게 지금 애한테 할 소리예요? 쉰소리 그만하고 밥이나 자시세요!"


하지만 엄마의 마지막 말이 은영은 더 듣기 싫었다. "은영아, 엄마는 우리 딸 믿어..."


은영은 더 이상 얘기했다가는 추억 쌓기가 아니고 추억 무너뜨리기가 될 것 같아서 못 들은 척하고 크게 밥숟가락을 뜨며 화제를 돌렸다.


"엄마! 이번에 담근 열무 진짜 맛있네... 내일은 이거로 국수 삶아 먹을까요? 아부지 내일 우리 집에서 저녁 드실래요? 제가 열무 국수 말아놓을게요..."


"뭐... 막걸리 한 병 사다 놓으면 생각해 보고..." 아버지가 귀여운 거래를 제안하며 엄마의 눈치를 살핀다.


"아이고! 내 눈치 보지 말고 마음대로 하세요. 이제는 먹고 싶은 거 실컷 자시고 아프지나 마세요..." 항상 대화는 아버지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엄마의 가시 돋친 말로 끝났다.


더하기 윗 집 빌런


은영은 저녁도 먹고, 과일도 먹고, TV 보면서 얘기도 하다가 밤 9시가 되어 집을 나서려고 했다. 엄마가 그런 은영을 붙잡고 다시 당부했다.


"주변에서 좀 괴로운 일이 있어도 그냥 참고 넘겨... 내가 여태껏 살아보니 부딪히고 덤벼봐야 나만 아프더라... 너무 시끄럽고 괴로우면 그냥 밖으로 나와... 갈데없으면 엄마한테 오고... 알았지 우리 딸."


별 다른 내용 없는 늘 똑같은 말인데, 그날따라 은영은 가슴에 맺힌 게 스르륵 녹는 것 같았다. '이래서 엄마손이 약손이구나.' 은영은 가슴이 따뜻해져서 집을 나섰다. '그래... 엄마 말이 맞지 어차피 2년 살고 나올 건데... 시끄러운 것 좀 참지 머... 나머지 시간에는 정말 조용하잖아...' 은영은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을 고쳐먹기로 결심했다.


은영은 집에 돌아와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았다. 3층은 창가에 책상을 놓고 노트북을 켜면 시원한 바람도 불어오고, 아파트 단지에 오가는 사람들도 볼 수 있어서… 은영은 여기에서 글을 쓰는 것이 사람 냄새도 나고, 안심도 돼서 좋았다. 식사시간 때 어디선가 풍기는 된장찌개, 동태찌개 냄새는 영감의 원천이었다. 은영은 한참 글쓰기에 빠져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창가에서 글을 쓸 때, 유일한 단점이 있었는데... 바로 담배 냄새였다. 많은 이들이 아파트 밖으로 나와서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저층이다 보니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에는 은영의 집까지 연기가 올라왔다. 좀 참기 힘든 날은 창문을 닫고, 안 그런 날은 잠깐 나다가 사라지곤 해서 창문을 열어뒀다.


그날도 은영은 담배냄새가 나는 듯했지만 금세 사라지겠거니 생각하고 글 쓰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지금 생각해도 너무 소름 끼치고 끔찍한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드르르르륵....) '커억....' 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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