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계절이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by 철없는박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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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앞 앙상한 나무의 정체가 벚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작년 6월에 이사 오고 나름 집안이 안 보이도록 나뭇잎 커튼 역할도 해주고, 땡볕이 내리쬐지 않게 차광도 해주던 고마운 나무다. 가을에는 불그스레 한 낙엽도 볼만했다. 하지만 겨울이 되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는 차광도, 좋은 경치도 될 수 없었다. 봄에는 꽃 속에, 여름에는 이파리 속에 숨어서 그렇지 벚꽃나무의 앙상하고 거무튀튀한 색깔의 가지는 실물로 보면 훨씬 초라하다.


봄이다. 그 어느 때보다 아파트 단지가 휘황찬란하다. 단지를 가득 메운 벚꽃을 보고 있으면 황홀하다 못해 몽롱해지기까지 하다. 그런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벚꽃은 꽃을 피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듯하다. 본가의 중량천변으로 산책로가 조성되고 벚꽃 나무가 식재되었는데, 한동안 꽃이 피지 않았다. 봄이 되어도 꽃이 피지 않는 벚꽃 나무라니... '말라죽은 거 아니야'라고 의심이 들 즈음, 짚 앞의 벚꽃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벚꽃 명소가 되었다. 이들에게도 적응의 기간이라는 게 필요했을 테지. 그게 무려 10년이다. 이 단지도 이제 막 10차가 되었으니 아마 이런 저세상 텐션이 시작된 지는 얼마 안 됐을 것이다. 진가는 시간이 지나야 드러나는 걸까? 세상에는 이렇게 진가를 드러내지 못하고 때를 기다리는 것들이 많겠지? 혹독한 겨울이 지나야 따뜻한 봄을 기대할 수 있듯이 말이다.


저 연분홍의 향연 속에 나도 같이 끼워달라고 미세먼지를 뚫고 오늘도 밖으로 나선다. 얼마 전에 다이소에서 득템 한 모자다. 가격은 2천 원밖에 안 한다. 쓰고 있으면 분홍의 축제 속에서 나도 같이 동화되어 간다. 흐흐흐. 나이가 들면 꽃이 좋아진다더니. 오늘은 분홍색 옷을 사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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