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말과 단어에 갇히는 순간이 수없이 많았다
들리고 보이는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서
있긴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럴수록 점점 그 단어에 갇히게 되는 줄도 모르면서
나를 가두었던 말과 단어들은 인식했던 인식하지 못했던 계속해서 늘어갔지만
그 중에서 두 가지를 뽑자면 "좋아함"과 "행복"이 대표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특히 "좋아한다"는 건 나에게 너무 어려운 말이었다
물론 취미적으로나 일상적으로의 좋아하는 일은 그래도 좀 있었다
운동을 한다던가, 음악을 듣는다던가
그렇지만 매 순간 마주하는 질문인 진로에 있어서의 좋아함은 없었다
어떤 분야의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능력을 키워가고 싶은지
진로로 삼을 정도로 좋아하는 일이 내게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진로를 정하는 것이 더 어려웠고 아직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당장 눈 앞에서 진로를 정해야하는 순간이 왔을 때 나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던건
"좋아함"이라는 단어의 틀 안에서 반복되는 생각들의 연속이었다
애초에 질문부터 잘못되었다는 걸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질문도 의식적으로 해야만 했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기 전에 좋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물어야했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면
"사과가 무슨 색이야?"라는 질문을 위해서는 우선 사과가 무엇인지 알아야한다
사과가 무엇인지 알고 나서야 사과의 색이 무엇인지 답을 할 수 있다
이 질문이 비교적 쉽다고 느껴지는건 사과라는 특정한 대상이 명확하다는 것에서 온다
반면 "뭘 좋아해?"라는 질문을 위해 알아야하는 "좋아함"이라는 건
대상이 특정되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이기에 답하는 대상에 따라 다른 의미가 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뭘 좋아하냐는 질문에 대한 좋아함은 "무척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좋아한다는건 그 일이 아니면 안되고 마음도 확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좋아함이라는 단어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의미로 물어보는 것이었다
답을 내리려고 하기 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좋아함이 무엇인지부터 고민해야했다
나는 좋아하는 일이 없는 것이 아니라 좋아한다는 의미가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에게 있어서의 좋아함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선택들을 돌이켜보자 답이 나왔다
나에게 있어 "좋아함"은 "관심"이었다
과제의 주제를 정하는데 있어서 관심이 가는 주제를 선택했고
동아리를 택하는 데 있어서도 관심이 가면 일단 해보았다
좋아하는지까지는 모르더라도 조금이라도 관심이 간다면 해보았다
관심있는 일들을 선택했을 때마다 즐겁게 해왔고 계속 그렇게 선택해왔다
지금까지 "관심"을 기준으로 해오던 선택이 진로 앞에서 무너져버렸다
단지 관심으로 진로를 정해도 되는 건지 두려움이 앞섰던 것 같다
그래서 관심과 좋아함을 연결짓지 못했다
통용되는 좋아함의 의미에서 벗어나 나의 의미를 찾는 것이
답을 찾는 시작이 될 것이다
"행복"에 대해서는 이제 막 시작된 생각을 말해보자면
행복은 단지 감정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알지 못하게 갑자기 오는 슬픔과 비슷한 그런 감정의 하나라고
그 외에는 행복이라는 정의를 도저히 내리지 못하겠어서
행복에 다른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던 중 행복은 단지 행복 하나의 단어가 아니라
행복을 이루는 여러 단어들의 집합체면서 동시에 하나의 의미로 수렴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행복을 의미가 각자 다른 것일 뿐
행복이 뭘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던 중 행복은 추구하는 삶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불확실한 것보다는 확실한 것과 그것에서 오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나에게
행복이란 평온함이었다
크게 부정적인 감정이 들지도 않으면서 심란하지도 않고 불안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특별히 기쁘지도 들뜨지도 않는 평온한 상태 그 안정감 그 자체
행복을 정의하는 건 다 다르겠지만 행복의 의미가 바라보는 방향은 같을 것이다
단어는 특정한 의미가 정해져있는 것 같아도
누가 사용하고 어떤 상황에서 사용하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이 되어버린다
나를 기준으로 나의 입장에서 질문하고 답하는 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을 찾아가는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