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uum Mar 25. 2017

기내에서의 색다른 경험

델타항공 기내에서 놀란 이유

델타 항공 DL 836 기내에서는 놀라운 일이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탑승하기 전부터 사람을 놀라게 하더니, 내리는 순간에는 다리를 휘청이게 만들었다. 색다르고, 개운치 않은 경험이었다. 


맨 처음 놀란 건, 나이 든 스튜어디스가 승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다. 내 눈을 의심했다. 그 스튜어디스의 머리가 은발이었는지, 백발이었는지, 정확히 분간되지는 않았다. 다만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던 것은, 스튜어디스의 나이가 중년은 넘어 보였다는 것이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할머니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스튜어디스는 젊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적잖은 충격이었다. 나는 왜 스튜어디스가 젊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분이 오랫동안 스튜어디스를 해 온 것인지, 늦은 나이에 스튜어디스가 된 것인지 말이다. 늦은 나이까지 스튜어디스로 일할 수 있다고 해도 부러웠고, 늦은 나이에 채용되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능력만 된다면 일을 할 수 있는 문화에 살짝 질투가 났다. 나이와 상관없이 채용되는 고용정책이 부러웠다. 나이 든 스튜어디스가 일하는 모습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두 번째로 놀라웠던 것은, 기내의 더 많은 스튜어디스들을 마주하고 나서부터다. 나는 왜 스튜어디스는 당연히 날씬하고 예뻐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스튜어디스에 대해 지니고 있던 모든 고정관념이 새롭게 정의되기 시작했다. 

델타 항공 기내의 스튜어디스들은 덩치도 크고, 신체도 튼튼해 보였으며, 심지어 예쁜 외모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 남성 치고는 꽤 큰 체격이었던 나도 위축될 정도였다. 더군다나, 여성스러움, 부드러움, 상냥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스튜어디스들을 줄곧 지켜보기만 하던 아내가 말했다. "비행기 안의 일은 대부분 고되고 힘든 일이니까, 스튜어디스들도 건강해야 하지 않을까?" 들어보니, 일리가 있었다.

스튜어디스들은 사무적이고, 차가웠다. 비행 내내 웃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일이 고돼서 그런가? 혹시, 일부러 웃지 않는 훈련이라도 하는 걸까? 아니면, 오늘 집 안에 우환이 있는 걸까? 그런 엉뚱한 생각이 들 정도로 내내 표정이 굳어 있었다.


세 번째로 놀라웠던 일은, 비행기가 이륙한 지 한 시간이 갓 넘었을 무렵에 일어났다. 살짝 시장끼를 느낄 즈음, 옆 좌석의 여성이 크래커를 뜯기 시작했다. 다이제스티브와 아주 흡사한 모양의 크래커였다. 그녀가 크래커를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크래커 먹는 소리가 내 왼쪽 귀에서 계속 증폭되었다. 그 소리가 그렇게 큰 지 처음 알았다. 그녀가 입을 오물거릴 때마다, 나도 모르게 내 입도 같이 오물거렸다.


나도, 아내도 과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아내는 다이제스티브 같은 크래커를 유독 싫어했다. 그런 아내도 나처럼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저 과자 너무 맛있어 보이지 않아?"라고 내 귀에 속삭였다. 하마터면, 나도 모르게 그 여자의 과자를 뺏어 들 뻔했다. 급격한 허기가 때문에 순간 이성을 잃을 뻔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미리 상상해 보았다. 아마도 크래커를 먹는 여성은 이제 곧 나를 의식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과자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사람을 계속 모른 척 하기는 힘들 테니까. 미안한 마음에 크래커 한 개를 나에게 건넬지도 모른다. 하나 드셔 보실래요? 아! 네. 감사합니다. 못 이기는 척하며 나는 크래커를 받아 들 것이다. 하지만 그 크래커를 바로 먹지 않을 것이다. 옆에 있던 아내에게 건네줄 것이다. 크래커를 먹던 여성은 어머나! 일행이 있으시군요? 아! 네. 제 아내예요.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나에게 다시 크래커 하나를 더 건넬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가볍게 묵례를 하고,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크래커를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된다. 


크래커가 눈 앞에서 모두 사라질 동안, 그런 일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크래커는 애초부터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완벽하게 눈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어차피 내 것도 아니었지만, 괜스레 부아가 치민다. '이제 곧 기내식이 나올 텐데, 왜 하필 지금 과자 같은 걸 먹고 난리야?' 속으로 한바탕 원망을 해본다. 배고파서 크래커를 먹은 죄 밖에 없는 여성은, 순식간에 매너 없는 승객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제 곧 기내식 나올 테니까, 조금만 참아." 그렇게 아내를 다독이고, 내 마음도 진정시켰다. 


신기하게도, 기내식은 나오지 않고, 간식이 먼저 나왔다. 그것도 여러 번. 배가 고플만하면, 승객들에게 먹을 것을 찔끔찔끔 나눠주었다. 딱 죽지 않을 만큼의 양이었다. 


Would you like some peanuts? 

Would you like a cookie? 

Would you like some chocolate? 


덕분에 우리는 Would you like소리만 들리면, 졸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았다. 이번에는 분명히 기내식일 거야! 기대했다가 또 실망하곤 했다. 먹어도, 먹어도 배는 고팠다. Just one more라는 말이 입 밖으로 차마 나오지 않아, 그냥 주는 대로만 먹었다.


기다리던 기내식이 제공되기 시작한 것은, 비행 3시간이 지난 후부터였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메뉴도 묻지 않았고, 카트도 등장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몇몇 승객에게만 드문드문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그제야 모든 상황이 파악되었다. 옆자리 여성이 크래커를 먹었던 이유도, 승객들에게 식사메뉴를 묻지 않은 이유도, 간식이 자주 제공된 이유도 짐작할 수 있었다. 기내식이 무료로 제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돈을 내야 기내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정확한 이유를 알게 된 건, 토론토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모든 것은 델타항공의 정책 때문이었다. 미국 국내선의 델타항공은 기내식이 무료로 제공되지 않는 게 원칙이었다. 자그마치 14년이 넘은 규칙이란다. 블로그에서 우연히 보았던 델타항공 기내식은 국제선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것이었다. 덕분에 나는 당연하게도 기내식이 제공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것이다.


배가 고프다고 칭얼거리던 아내는 결국 지쳐서 잠이 들었다. 나는 잠들어 있는 아내를 깨우지 않았다. 대신, 애틀랜타 공항에 내리면 정말 정말 맛있는 것을 배 터지게 먹을 작정이었다. 애틀랜타 공항에서 어떤 음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상상만으로도 서서히 배가 부르기 시작했다.


이 글을 쓰다가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을 덧붙입니다. 

미주 한국일보의 뉴스에 의하면, 델타항공이 2017년 3월부터 미국 국내선 무료 기내식 서비스를 부활한다고 합니다. 이 서비스는 2001년 폐지되었다가, 16년 만에 다시 부활시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