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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May 16. 2024

나가기 전에는 청소

아무튼 다 내 몫이거든



 집안일 중에서 그나마 덜 싫은 일을 하나 고르라면 청소다. 밥이나 설거지처럼 하루에 2번(이상)씩 하지 않아도 되고, 한 번 하고 나면 이틀은 편하고, 쓰레기를 내다 버리면 큰일 해낸 듯 뿌듯하다. 사실 나는 집안이 어질러져 있어도 크게 개의치 않고 밖에 나가곤 하지만, 그래도 나가기 전에 집 안을 깔끔히 정리해야 외출 후에 돌아와서 '게을렀던 오전의 나'를 욕하지 않을 수 있다. 주 3회 플라잉 요가 수업 시간은 9시 30분.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50분 여유가 있다. 빵 한 조각 급히 먹고 커피를 후루룩 마시고 양치질한다. 빵 먹을 때 여유가 있으면 핸드폰이나 책을 잠시 들여다보고, 9시가 넘으면 청소기를 돌리거나 밀대로 먼지를 훑어낸다. 정신 없이 바쁠 때 하지 않으면 손에 잡히지 않는 청소기니까. ‘피곤할 오후의 나’를 위해 부리나케 해치우는 아침 청소! 신발을 신고 나서면 저녁밥 시간 전까지는 어떤 집안일도 하지 않기로 한다.


 본격적인 청소는 나 혼자 있을 때 하지 않는다. 집안일을 대하는 단 하나의 철칙이다. 가급적 남편과 아이가 함께 있을 때 청소를 시작한다. 일은 나 혼자 할 지라도 혼자만의 시간에 청소를 하고 싶지 않다. 아이가 자잘한 장난감 정리를 담당하게 하고, 나는 책장과 서랍장 먼지를 털고 얼마 전에 산 침구청소기로 침대를 탈탈 털어낸다. 체력이 남아 있다면 바닥을 닦아내고, 지친다 싶으면 청소기만 한 바퀴 돌린다. 쓰레기봉투와 분리수거 봉지를 현관 앞에 내놓고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서 정리한다. 빨래 정리는 몹시 귀찮고 번거롭다. 요즘도 간혹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는데 뭐가 귀찮으냐."는 헛소리를 들을 때가 있는데, 빨래를 꺼내서 널고 털고 개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나 하는 쉰 소리다. 건조기가 있어서 한결 편해지긴 했지만, 건조대에 널어야 하는 옷이 있고, 건조기에서 꺼내서 털고 개는 일은 여전히 나의 몫이다.

 찜찜한 마음 없이 산뜻하고 경쾌하게 착착 집안일 순서대로 해치우고 홀가분하게 집을 나설 때도 있고, '아, 설거지는 이따 하지 뭐. 머리카락은 돌돌이로 대충 치우고 말지.' 하고 청소 거리를 외면할 때도 있지만, 집안일 이야기는 쓰면 쓸수록 좀스러운 기분이 든다. 고작 세 식구 살림에 하는 일도 별로 없으면서 불만이 가득해 구시렁구시렁하는 못난 자신을 향해 자책하는 마음이 치고 올라온다. 그러나 학생들은 공부가 불만이고, 회사원은 휴일만 기다리니까, 주부인 내가 집안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주부들이 모이면 집에 머무를 때 집안일을 외면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는 항상 나오는 화제이다.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다른 일에 집중하다가도 무심코 바닥에 눈길을 주는 순간 발견되는 머리카락에 결국은 청소를 시작한다는 말에 모두 공감한다. "나는 그래서 집에서 안경을 쓰지 않잖아. 영화 볼 때는 안경을 끼고 있다가, 화장실 갈 때 안경 벗어두고 가야 해. 밝은 눈에 물때가 보이면 괜히 세제를 칙칙 뿌리고 물청소하게 되거든." 내 말에 손사래를 치는 깔끔한 친구도 있지만, 그런 말에 꿈쩍할 나도 아니다. 집에 가만히 있을 때 청소 거리 발견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안경을 쓰지 않는다. (사실 밖에 나갈 때도 운전하거나 일할 때가 아니면 안경을 가져가지 않는 편이다. 좋은 시력으로는 아름다운 세상을 선명하게 볼 수 있지만, 보고 싶지 않은 무수한 얼룩도 그만큼 잘 보이니까)


 가장 힘겨운 화장실 청소는 저녁 식사와 설거지를 마치고 한다. 평소에 씻을 때마다 세면대나 변기를 틈틈이 닦다가, 어느 날 흐린 눈으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정도의 물때를 보게 되면 겉옷을 벗어 던지고, 세제를 집어 든다. “나 화장실 청소한다!” 크게 거실을 향해 외치고 욕실 문을 닫는다. 샤워기로 골고루 물을 뿌리고 구석구석 세제를 뿌린다. 고무장갑을 끼고 알록달록한 아크릴 수세미로 선반과 세면대, 바닥으로 이어지는 벽과 변기를 구석구석 문지른다. 화장실 청소를 편하게 해준다는 전동식 도구를 사보았지만, 결국에는 손으로 다 닦아내야 하는 법이었다. 세월이 흘러 변기 바깥쪽 굳은 때가 깔끔히 벗겨지지 않으니, 변기를 바꾸고 싶고, 샤워부스도 바꾸고 싶고, 아니 욕실을 리모델링 하고 싶지만, 그런 욕심도 수세미와 솔로 벅벅 문질러 씻어낸다. 벽면 타일 전체를 박박 닦아내고 싶지만 팔이 아프고 세제 냄새도 독하니까 적당히 지나친다. 지우개만 한 조각이 된 비누를 으깨서 샤워부스 안팎을 문지르고 역경과 고난의 배수구 거름망 청소도 한다. 구역질을 참으며 일회용 젓가락으로 청결의 대가와도 같은 흔적을 건져낸다. 거름망과 배수구에 세제를 칙칙, 수세미 질 빡빡하고 키 큰 솔로 바닥 전체를 쏵쏵 밀어내면 청소는 막바지.

 세찬 물줄기로 변기부터 바닥까지 싹 씻어내고 나면 이제 내가 씻을 차례. 머리도 벅벅, 몸도 삭삭, 깔끔하게 씻는다. 다 씻을 때쯤이면 “엄마! 엄마! 언제 나와?”하는 아이를 불러 목욕시킨다. ‘아직 보던 만화가 덜 끝났어. 벌써 씻어야 해?’하는 볼멘소리에 ‘다 씻고 보던 거 마저 보게 해주겠다.’라고 약속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빠른 속도로 씻긴다. “아빠한테 드라이해달라고 해.” 아이를 내보내고 몸에 묻은 거품을 다시 헹군다. 구석구석 청소를 점검하고, 스퀴지로 샤워부스 안쪽에 고인 물을 밀어내면 진짜 청소 끝. “어휴!” 큰 소리로 한숨을 쉬며 아주 힘겨운 청소를 마쳤음을 남편에게 어필하고(물론 남편은 신경도 안 쓰지만) 축축한 수건으로 화장대를 훔쳐낸다. 빨래통에는 그새 옷과 수건이 쌓였고, 제크와 롯샌을 담아 먹은 접시가 개수대에 들어있다. 접시를 씻고 물티슈로 소파 앞 매트 바닥에 있는 과자 부스러기를 닦아내면, 정말 오늘의 집안일 끝! (끝나지 않지만 끝낸다.)


 이렇게 청소하고 자면 다음 날 아침 집을 나설 때 마음이 한결 편하다. 정리 정돈과 청소에 시간을 쓰지 않고 좀 더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있고, 북클럽 채팅방에, 마음에 드는 문장을 남길 여유가 있다. 역시 어제 치우기를 잘했어. 화장실 청소하길 참 잘했다. 오늘은 운동하고 와서 밥 먹고 그림 그려야지. 다짐하면서 어제 부지런했던 나에게 고마워하기도 하는 것이다. 가방 메고 신발 신으면서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현관 바닥을 보고 말았지만, 이건 저녁의 나에게 맡기자. 청소는 어차피 또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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