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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한 장뿐이지만 사진 가득

기운이 없는 이번 주

by 원효서
지난 일요일 산딸기(나무딸기) 따는 여름

드라이브 (어느 날의 10분 글쓰기)


요즘이라면 한문철 티브이에 나올만한 일이지만, 아빠의 오토바이에 삼 남매가 앞뒤로 다닥다닥 앉아 비포장길을 달리던 시절 우리 동네에는 자동차를 가진 사람이 없었다. 분교에 다니던 시절, 심한 중이염에 걸렸을 때에도 나는 아빠의 오토바이를 타고 한 시간이 넘는 도로와 고갯길을 달려 도시에 있는 이비인후과에 갔었다. 몇 해 전 아빠가 그때를 회상하며 '미친 거 아니었나?' 했는데, 나에게는 어쩐지 즐거운 나들이로 각인된 경험이기도 했다.


우리 집에 자동차가 생긴 건 5학년 여름방학, 아빠가 하얀 중고 트럭을 타고 웃는 얼굴로 집에 돌아올 때, 나는 당나무 아래 개울에서 놀고 있었다. 그날 이후 우리 남매는 화물칸에서 바람을 맞으며 밭과 옆동네를 오갔고, 좌석 뒤 좁은 칸에 두 명씩 앉아 대구까지 다녔다. 길에서 경찰을 만나면 짐칸에 아무도 없는 척하느라 낄낄대기도 했다. 브레이크가 듣지 않아 과속단속하던 경찰을 칠 뻔하기도 했던 하얀 트럭. 그다음 차는 중고가 아닌 파란 트럭이었다. 막내가 고등학생일 때에도 온 가족이 그 차를 타고 다녔다. 힘들었지만 차를 타고 다니는 동안 재미있는 순간이 많았다. 불법복제 카세트테이프에서 나오는 '칵테일 사랑'을 목청 높여 따라 부르고, 가로수와 가로등 개수를 세기도 했다. 불편했지만 즐거운 시절이었다.


하지만 가족의 가난이 정점을 찍을 무렵 성인이 된 나에게 '드라이브'는 환상의 단어가 되어갔다. 좌석 뒷자리에 끼어 앉는 일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진 우리는 시외버스를 선택했다. 시골에 가서 밭이나 개울에 갈 때 잠깐씩 짐칸에 올라타도 예전처럼 즐겁지 않았다. 20대 내내 친구들이 면허를 딸 때에도 나는 '어차피 차도 못 살 텐데.'하고 말았다. 차가 있는 남자친구를 사귈 때에는 '드라이브'가 아주 대단한 데이트처럼 느껴졌다.

그림 테이블


덜 그린 그림 사진이 좋다

더위 (이것도 5분 글쓰기)


최고 기온에 자부심을 느끼는 대구 사람이었던 나는 대구를 떠난 지 십여 년이 흐른 지금도 더위에는 강한 편이다. 어릴 적에는 추위도 더위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마흔이 넘어가니 한파에는 몸이 쉬이 약해지는 걸 느끼고 있다. 감기에 걸리지 않더라도 추위에 몸을 옹송그리고 다니다 보면 종일 어깨가 뻐근해지기도 했다.


더위도 장마도 못 견딜 정도는 아니지만 에어컨에 의지해야 하는 한여름에는 자주 죄스럽다. 수업을 하는 방에는 창문형 에어컨까지 설치했다. 다른 방법이 없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다.


한낮의 햇볕이 벌써 어마어마하지만 아침저녁 불어오는 바람은 힘이 세고 상쾌하다. 여기저기 창문을 열어두고 맞바람을 맞는 밤이 좋다. 머리맡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잠드는 순간도. 쨍쨍한 태양과 무성한 초록, 길고 긴 낮은 여름의 매력.



책이 나오고 동생이 찍어준 예쁜 사진


불효꾼들의 경쾌한 발걸음

한 꼭지 글을 실었을 뿐인데, 여기저기서 책을 사주는 친구들의 축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몸 둘 바를 모르는 순간들이 이어지고 있다. 기쁜 만큼 부끄러움에 움츠러든다. 자랑스럽고 뿌듯하다가도 흠칫 놀란다. 에세이 작가들이 새삼 존경스럽다.


현실 도피하느라 영화를 많이 봤다.

룸 넥스트 도어, 페인 앤 글로리(세 번째 봄), 나쁜 교육을 연달아 보며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를 더 보리라 다짐했다. 뒤늦게 '리틀드러머 걸'도 보기 시작, 하루 만에 다섯 편을 보고 이제 마지막 한 편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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