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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Aug 25. 2022

서른두 살 전학생

구미에 온 지도 벌써 8년

서른두 살 전학생

 14년 가을 결혼을 하면서 대구에서 구미로 이사하게 되었을 때, 친구들은 내가 희생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했다. 광역시에서 살다가 촌구석이나 마찬가지인 소도시로 가면 잃는 것이 많으니, 남편이 그걸 잘 인지하고 더 잘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응응하면서도 이주의 의미를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힘들었던 시절과 미련 없는 인연들이 포장지처럼 둘둘 말려있는 대구를 떠나는 게 후련했기 때문이다. 결혼식을 청송에서 하기로 정한 것에도 아무런 아쉬움이 없었다. 별로 내키지 않지만, 예의상 잔치에 와야 하는(내가 그랬으니까) 지인들이 거리를 핑계로 오지 못하는 점이 오히려 홀가분했다. 어차피 청송에서 평생 살아온 양가 부모님의 손님이 한가득 올 테고, 내 결혼 나나 기쁘지, 싶어 친한 친구가 못 온다고 했을 때 서운하지 않았다. 결혼과 함께 그저 다 털어내고 싶었다.

 아는 사람, 아는 장소가 없다는 점에 끌려 도착한 구미에서 아는 사람과 아는 장소가 없어서 괴로워질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같은 동네의 원룸으로 나를 따라오겠다던 여동생은 구미에 한 번 와보더니 대구에서 계속 살겠다고 했다. “여기는 너무 아무것도 없어서 안 되겠어. 버스도 잘 안 다니는데 어떻게 살겠어. 내가 자주 놀러 올게.”
카페들이 생기고, 동생이 그림 수업을 하게 되고, 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구미에서도 즐겁게 놀게 되었지만, 그건 시간이 좀 흐른 후의 일이다. 처음에는 동네에는 뭐가 너무 없어서 때때로 여동생과 구미역 앞 시내에서 놀곤 했는데, 대구 동성로의 미니미 버전 같은 좁은 거리에서 별로 할 것도 없었다.

 나는 고독한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혼자 집을 보며 깨달았다. 평생 집순이인 여동생과 한방을 쓰며 간절히 나만의 시공간을 원했는데 정작 혼자 있게, 되자 안절부절못하는 존재가 나였다. 내가 아는 구미는 구미역과 역에서 멀리 떨어진 우리 동네뿐이었다. 코앞에 있는 회사까지 남편이 매일 차를 가지고 다녔기 때문에, 나는 늘 걸어 다녔다. 산동면과 옥계동의 경계인 집을 나서서 양포동 행정복지센터를 지나 상가가 모인 동네까지 걸어가면 40분이 걸렸다. 아는 사람이 없으니 시간이 있어도 할 일이 없었다. 전학 간 교실에서 누군가 말 걸어주길 간절하게 기다리던 중1 겨울처럼 외롭고 쓸쓸했다.

  어정쩡한 친분의 지인들은 확실히 더 멀어졌고, 멀어진 거리에도 찾아와 준 사람과는 더 돈독해져 구미에서 보내는 첫겨울에 인간관계의 온도가 분명해졌다. 새 삶에 적응하기 위해 살림을 열심히 했다. 문화센터에서 꽃꽂이와 필라테스를 배우기도 하고 과외 아르바이트도 시작했다. 집안일은 요리가 제일 싫다는 점, 꽃을 좋아한다고 꽃꽂이를 배울 필요는 없다는 점, 심심하다고 아무하고 놀면 피곤해진다는 점, 학원보다 과외가 더 잘 맞는다는 점을 배웠다. 문화센터를 그만두고 유유자적 산책을 즐겨보기로 했다. 그러나 차를 타고 지나다니며 봐 둔 풍경이 아름다운 길들에는 하나같이 인도가 없었다. 집 근처라고 느낀 곳들도 하나같이 먼 거리, 걸으라고 만들어 둔 강변 산책로는 인적이 드물어 낮에 걷기도 무서웠다. 그래서 계속 옥계동을 빙글빙글 걸었다.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있는 지름길과 샛길을 찾고, 나무와 꽃이 많은 인도를 따라 걸어 다녔다. 길눈이 어두운 편이지만 이 동네 아파트 근처 길들은 제법 잘 알게 되었다.

 서른둘이면 혼자서도 잘 놀아야 할 나이니까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기로 했다. 동생에게 물어가며 색연필과 물감을 장만하고, 팟캐스트를 들으며 책을 따라 읽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뭐라고 혼자 못하나 싶지만, 그때는 혼자 카페에 가서 그림을 그리는 행동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일평생 남의 눈치를 보고 나 또한 남들의 행동을 예의 주시해온 버릇 때문이겠지. 그런 버릇들과 싸우며 15년 봄부터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피아노 학원에서 6학년 때의 한을 풀고 절친도 만나게 되었으니 이사를 오고 제일 잘한 일이 피아노를 배운 것일지도 모른다.

 구미에서 10년 넘게 산 친구는 나를 데리고 금오산 벚꽃 구경, 장천 코스모스 축제에 가주었고, 맛있는 순두붓집과 닭갈빗집도 가르쳐주었다. 인동에 있던 마카롱 맛집과 천생산 아래 미나리 삼겹살집에도 데려가 주었다. 함께 마음에 드는 꽃집에서 원데이 클래스를 듣고 대구에 있는 도자기 공방에 가서 접시를 만들었다. 카페에서 친구는 수를 놓고 나는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지금은 함께 아이를 키운다. 아이를 등원시키고는 같이 요가 학원에 갔다가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는 사이, 주말에는 아이들과 함께 여기저기 다니는 사이가 되었다.

 멀리 가지 않고 괜찮은 우리의 주말 코스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이렇다. 학서지 놀이터에 갔다가 롤링핀에 가서 빵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아이들은 방방을 탄다. 순두부나 불고기를 늦은 점심으로 먹고 동네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논다. 날이 궂거나 아이가 조를 때에는 키즈카페에 가기도 한다. 두 번째는 살짝 더 체력이 필요하다. 오전에 에코랜드와 산동 참 생태숲에 가서 논다. 놀이터에서 모래놀이를 하거나 모노레일을 타고, 점심으로 고등어 정식을 먹는다. 그 후에는 야외 뜰이 넓은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한숨 돌리는데, 이후에는 또 놀이터나 키즈카페에 가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종일 밖에서 놀고 나서 집에 들어오면 녹초가 되지만, 이른 육퇴 후에 자유로운 밤이 기다리기도 하는 법이다.

 아이와 노는 시간은 피할 수 없지만, 기꺼이 나서는 외출은 등원 버스를 보내자마자 떠나는 나들이이다. 여동생과 친구와 함께(우리 자매는 영원한 단짝으로 친구도 공유한다) 브런치를 먹으러 가는 날이면 전날 밤부터 설렌다. 오후 4시까지는 돌아와야 하니 카페는 오픈 런! 메뉴도 할 일도 다 계획해서 나선다. 산호대교를 건널 때는 두근두근, 놀러 가는 기분이 된다. 부지런히 브런치를 먹고 수다를 떤다. 여동생은 열심히 사진을 찍고 나는 그림을 그리며 하루 이틀 사이에 벌어진 오만가지 사건과 감정의 흐름을 대화로 나눈다. 1시가 넘으면 칼국수나 묵밥 같은 걸 먹으러 갔다가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돌아오면 3시 30분, 잠이 쏟아지지만 이제 곧 아이가 온다.

 벌써 구미에 온 지 8년째, 아직 머릿속에서 구미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 여전히 옥계와 구미역 외에는 지도를 켜지 않고 운전할 수 없고, 어느 동네에 대해 들어도 어디인지 잘 모른다. 처음으로 구미 지도를 펼쳐 들고 아는 장소를 찾아 표시해 보았다. 우리 동네, 좋아하는 카페들, 자주 가는 공원들, 그림책 산책, 금오산. 제법 많은 곳에 이름표가 있었다. 아는 곳 하나 없던 서른두 살 전학생의 시절이 제법 까마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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