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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Jun 22. 2023

우울이든 강박이든

단점 찾다가 정신과 권하는 이야기


정신과 이야기는 환상여행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1996년 가을부터 주말 밤마다 mbc에서 권해효가 진행하는 단막극 프로그램이 있었다. 환상여행이 아니고 테마게임의 에피소드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에피소드의 전체 내용은 기억나지 않고 마지막 장면이 기억난다. 검색으로 찾아내지 못해 기억에 의지해 써본다. 환자복을 입은 남자가 병원 잔디밭에서 쉬고 있다. 한 어린아이가 발 앞으로 굴러온 약병을 주워서 남자에게 돌려주며 묻는다.

"아저씨는 어디가 아파요? 무슨 약이에요?"

남자가 웃으며 약통에서 약을 하나 꺼내먹는다.

"이건 휴식이야. 달콤한 휴식."


당시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정신과 병원이 괴기스럽게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가족을 비롯한 인간관계에게 시달리다가 자발적으로 병원에서 쉬는 인물이라는 설정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꾸준하게 '나 뭔가 이상한가?'를 자문해 온 사람이라 언젠가는 미쳐버릴 수도 있다는 걱정, 언젠가 한 번은 정신과 진료가 필요할 거라는 예측(?)을 품고 살았었다. 그래서 10년 전, '이렇게 죽으면 어떨까'라는 발상이 점점 구체성을 품기 시작했을 때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대신 정신과 검사를 받기로 결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정신과에 가서 큰돈을 들여 검사를 하면 다른 건강 검진과 마찬가지로 두툼한 검사 결과지를 준다. 꺾은선 그래프에서 우울, 불안, 강박, 공포 항목이 삐죽삐죽 첨탑을 이루고 있었다. 꼭짓점보다는 낮지만 함께 높이 치솟은 항목에는 '대학 생활 부적응'과 '가족 관계 어쩌고' 하는 부분도 있었다. (아무리 찾아도 없는 걸 보니 몇 년 전 대청소를 할 때 결과지를 버린 모양이다. 정확한 단어가 기억나지 않는다.) 검사 결과에 대한 설명은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내가 빈칸을 채운 두꺼운 종이들에 비해 성의가 없는 느낌, 이 정도로 병적인 상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단 약을 먹어볼까요.라는 미적지근한 반응도 실망스러웠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던 약식 지능검사의 결과가 충격적이었다. 사람이 우울해지면 인지 기능이 저하된다고 하지만 두 자리 숫자의 아이큐가 얼마나 충격적이던지! 그나마 어릴 때부터 머리가 좋다는 칭찬에 목을 메왔던 인생이 전면적으로 부정당하는 그 느낌. 98이라는 숫자는 성적표에서나 보던 숫자 아니더냐!! 우울증 고치러 병원에 갔다가 더 우울해지는 마법.


물론, 그런 수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무엇이 그리 힘이 드냐는 의사의 질문에 "세상에 싫고 짜증 나는 게 너무너무 많아서 살 수가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뭐가 그렇게 싫으냐는 질문에 나는 한숨을 깊게 내쉬고 설명했다. "정말 너무 많은데 예를 들면요, 지하철을 타면 광고가 보이잖아요. 그런데 치과 광고는요, 임플란트 하는 치아 사진 같은 걸 커다랗게 붙여놔요. 그렇게 화날 일이 아닌 걸 알지만 정말 미칠 듯이 화가 나요. 가뜩이나 사람도 많고 날씨도 더운데요." 안경을 낀 의사가 미소를 띠고 말했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고 신경이 예민한 상태가 지속되면 외부 자극을 걸러내지 못하고 받아들이게 된다고, 그러면 끊임없이 신경이 과부하 상태가 되는 거라고 설명해 주었다. 세로토닌의 재흡수를 억제해 주는 약을 처방해 준다고 했다. 이 약이 효과가 있는지, 부작용이 있는지 알아보려면 2주 정도 먹으면서 지켜보자고 했다. 인지 능력이 많이 저하된 탓일까 설명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약을 먹기 싫었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먹어보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은 지하철 광고판 따위에 화가 나지 않는다는 말인가? 정말? 그리고 약을 먹으면 온갖 나쁜 생각들이 좀 가라앉는다는 거지? 다른 것보다 자꾸만 지하철에 뛰어들고 싶다는 충동은 안 들었으면 좋겠는데. 불면이나 소화불량 같은 부작용은 없었다. 나는 예전부터 '약발이 잘 받는 체질'이었는데 이 약도 마찬가지였다. 약을 먹으니 먼저 머릿속이 조용해졌다. 꼬리 잡기와 강강술래가 반복되는 나쁜 기억의 퍼레이드가 잠잠해졌다. 그렇다고 세상이 반짝반짝 예쁘게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지하철을 보고 "지금 확 뛰어들까?"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구나."라고 상황파악을 할 정도는 되었다.

나는 친한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나는 병원에서 "우울, 불안, 강박, 공포가 높은 사람"으로 공식적인 진단을 받았다고 알렸다. 아주 심하지는 않지만 치료가 필요한 수준이라 약을 받았다고 했더니, 다들 큰 흥미를 보였다. 친구들은 "나도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고 싶다"라고 했지만, 아무도 가지 않았다. 남이 보기에 큰 사고를 치지 않았는데, 제 발로 정신과에 가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10년 전엔 더 그랬다. 나도 한 달 정도 약을 먹었던가? 더 이상 병원에 가지 않았다. 상담소에도 가봤고 상담 일을 하던 친구와 이야기도 해보았는데, 잘 맞는 상담가를 찾을 여력이 없었다. 시간과 돈이 드는 일이었고, 나는 둘 다 부족했다. 결과 분석지와 짧은 상담을 바탕으로 내린 나의 결론은 이랬다. 세상에 싫은 것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내 자신이 싫기 때문이야.


다행히 상담가인 친구가 내 이야기를 길고도 깊게 들어주었다. 우리는 오랜 시간 걷고 또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내가 옳은 사람이고 싶어. 착한 사람이고 싶어. 그런데 내가 착하지 않나? 힘들어."

"너 그리 착하지 않아. 그리고 착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사람들이 다 나약한데 그걸 모두 극복하고 사는 줄 알았어. 나만 못나서 온갖 사소한 일들에 휘둘리고 좌지우지된다고 생각했어. 다 나보다 잘나 보여."

"그럴 리가 없잖아. 대부분 사람들은 그냥 생각이 없는 거야. 너는 생각이 많은 거고. 그 생각을 다른 곳에 써보자."

"그 생각들이 모두 나를 향하니까 나는 내가 너무 싫어."

지금 떠올려도 그 시절의 나를 함께 들여다보아준 친구에게 고맙다. 나는 이후에 나처럼 힘든 시절을 보내는 사람을 만났을 때 친구처럼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다. 여전히 내 코가 석자여서 그렇기도 했지만, 나누어줄 마음이 여전히 간장종지만 했기 때문이다.


짚고 넘어가지 않아 찜찜한 어떤 문제들은 엄격한 나와 합의가 되지 않은 지점에 모여있어서 내전이 일어날 때마다 격전지가 되곤 했다. 얼마나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싸움인가. 내 안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몽땅 과거형인데 말이다. "그때 그렇게 할걸!" "왜 그랬을까!" 소모적인 전쟁은 기어이 현재와 미래를 침범해 끝끝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존재로 남는다는 두려움, 부모와 환경을 원망하지 않고는 자신을 설명하지 못하는 노년을 맞이할 거라는 공포로 나를 밀어붙였다. 민달팽이 같은 내 정신력의 외피는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가능이나 한 일인가? 나 자신도 받아들이기가 이렇게 힘든데, 다른 무언가를 하나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걸까?

자신을 갉아먹는 우울과 강박의 뾰족탑은 임신, 출산, 육아기간에 당연히 다시 최고치로 차올랐고, 나는 다시 병원을 찾았다. 새로 만난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강박적인 분들은 본래 병원에 꾸준히 잘 오시지 않아요. 좀 살 것 같으면 안 오시고, 힘들면 다시 약을 받으러 오시지요. 아마 환자분도 그러실 거예요. 제가 왜 이렇게 말하냐면, 안 오다가 다시 올 때 민망해하지 마시라고요."

용한 선생님이었다. 여기도 석 달 정도 가다가 가지 않았으니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내 시간을 회복하자 약이 없어도 생활이 괜찮아졌다. 그리고 좀 잘 살아보려고 재미있는 모든 일에 시간을 쏟았더니, 요즘은 살 만해졌고 잘 살고 싶어졌다.


상담사 선생님이 나의 장단점을 물었을 때가 기억난다. 장점은 "솔직하다. 힘든 일을 잘 이겨낸다." 단점은 "말이 너무 많다. 부정적이다. 사람들 단점만 본다. 신경이 예민하다. 세상을 싫어한다. 화를 많이 낸다..."선생님이 말을 끊을 때까지 나는 내 단점을 나열했다. 지금 다시 묻는다면 한 가지만 말하고 싶다.

"저는 화를 잘 못 참아요. 그런데요. 다들 그렇더라고요. 그리고 이 상태일 때 스스로 병원에 찾아왔으니 저 정도면 괜찮은 사람 같아요. 엄청나게 화가 날 때 진정할 수 있는 상비약이 필요해요."


요즘은 이런 이야기가 다 아무렇지 않다. 정신과에 가서 나를 들여다보는 일은, 다른 어떤 일보다 나 스스로 자신을 돌보고 있다는 강한 믿음을 심어준다. 꾸준히 가든 가지 않든, 가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변한다. 사람을 만나다 보면 가끔 '아, 이 사람은 병원에 가봐야겠는데.'라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한의원 권하듯 말을 꺼내진 않는다. 하지만 누가 "병원에라도 가볼까 봐요."라고 말하면 용기를 주고 싶어 적극적으로 나선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앞에 쓴 이야기들을 주절주절 늘어놓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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