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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Nov 10. 2023

남들 앞에서 울면 큰일 나

<아리에트와 그림자들>을 읽고 받은 질문 : 나의 낯선 모습


일렁이는 그림체



교실에는 언제나 '잘 우는 아이'가 하나씩 있었다. 속상한 일이 생기면 자리에 엎드려서 흑흑 흐느끼는 아이. 절친이나 짝꿍이 옆에서 토닥이며 우는 아이를 달래고, '누구누구 울어? 왜 운대? '하며 궁금해하는 아이들이 주위를 둘러싸곤 했다. 나는 그런 상황이 싫었다. 친하게 지내던 아이가 울면 어쩔 줄을 몰라 힘들었다. 사춘기 또래 친구를 아기들처럼 달랠 수도 없고, 나 몰라라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말 많은 반 친구가 나에게 "쟤 왜 울어?"라고 묻기라도 하면 잘못 대답할까 걱정스러웠는데, 그렇다고 어깨를 으쓱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우는 아이'를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다치거나 아파서 우는 게 아니라 '속상해서 우는 아이' 말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속상한 마음도 숨기지 않고, 눈물도 감추지 않는 아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더 어릴 때는 나도 무진장 삐치고 우는 아이였지만 교복을 입고 나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남들 앞에서 콧물을 훌쩍대고 눈이 벌게지는 내 모습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런 체면치레(?)가 속상하고 두려운 감정보다 중요했으니까, 학교에서 눈물을 흘리는 일 따위는 있을 수 없었다.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훌쩍훌쩍 우는 아이를 보면 속으로 '아기 같기는...'하고 한심히 여겼다.


'혼자서만 우는 아이'로 지내던 나는 어른이 되어 '잘 못 우는 사람'이 되었다. 다 커서도 나쁜 집안일이 벌어지면 잘 울었고, 연애를 하면 남자 친구와 싸울 때마다 울었다. 그래도 친구들 앞에서는 울지 못했다. 나에게 벌어지는 나쁜 일을 위로해 주는 친구들 앞에서 나는 우울이나 냉소, 해학과 풍자(?)로 내 감정과 거리를 두었다. 내가 느끼는 슬픔과 불안을 한껏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렸다.


아무도 없을 때는 시도 때도 없이 잘 울었다. 영화를 보다가 안 슬픈 장면에서 울고, 드라마 대사 하나에도 울고, 광고를 보다가 한 장면이 꽂혀 펑펑 울었다. 현실에서 나에게 일어나는 사건은 건조하게 날리는 대신 허구의 세계를 향해 마음껏 눈물을 퍼부었다. 어느 시점이 되자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났다. 퇴근길 버스에서 눈물이 터져 나오면 인적이 드문 길에 내려서 천천히 걸었다. 같이 사는 여동생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눈물이었다. 그때는 내가 우는 이유를 자신에게도 설명할 수 없었지만, 아무튼 우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결혼 후에는 남편과 싸울 때마다 울었다. 같이 사는 사람과 싸우면 눈물을 숨길 수 없었다. 지금은 싸움과 눈물이 별개의 문제가 되었다. 잘 싸우지도 않지만 화가 나도 여간해서는 울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허구의 세계에는 눈물을 아끼지 않는다. '방가방가 햄토리'를 보고 감격해서 울던 나는 변함이 없다. 아기 동요를 듣다가 감격해서 울고('예쁜 아기곰'을 좋아한다) 빅뱅이론을 보다가 감동해서 운다. 혼자 책을 읽다가도 울지만 드디어, 마침내 사람들 앞에서도 울게 되었다.

글쓰기 모임날이면 책방에 둥그렇게 둘러앉은 사람 중 적어도 세 명은 운다. 공식적인 울보인 책방지기가 '어떡해. 눈물 나'하며 울면 너도나도 '어머, 나 왜 이래'하며 눈물을 훔친다. 말을 하다가 울고 듣다가 울고 책장을 넘기다 울고 그림을 보다가 울고... 웃다가도 우는 사람들과 함께하다 보니 나도 이제 '남들 앞에서 울 수도 있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하다 울었던 날, 당혹스럽고 부끄러웠다. 그런 나를 보는 사람들도 조금은 놀랐던 날. 마음이 후련했다. 남들 앞에서 절대 울지 못하는 사람은, 실은 남들 앞에서 실컷 웃지 못하는 사람과 같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눈물을 참기 위해 애쓰느라 누르는 힘 따위가 세져서 무엇에 쓴단 말인가.


사람들 앞에서 슬퍼할 줄도 아는 사람이 되어 다행이다. 좀 낯설고 부끄럽지만 괜찮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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