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방관아빠 무스 Jan 18. 2024

막둥이의 편지

아빠로 살아간다는 것(46)

며칠 전, 와이프의 생일이었다. 그래서 와이프의 퇴근시간에 맞춰 막둥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왔다. 그리고 학원에 있는 언니들을 픽업해서 우리 막둥이가 제일 좋아하는(엄마 생일인데 왜 막둥이가 좋아하는?) 중국집 S에 갔다. 막둥이는 자장면을 시키고 우리는 탕수육과 요리를 시켜서 조잘대며 먹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낮게 코 고는 소리... 놀랍게도 막둥이의 코 고는 소리였다.


(먹다가 잠들게 하소서~ㅋ^^;;)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았던 걸까? 엄마 생일이란 것도 잊고, 그 좋아하는 자장면도 남기고 이렇게 코를 골면서 자다니... 먹다가 잠드는 애기가 신기했는지 중국집 여사장님께서도 오셨다.


"어머, 귀여워라, 먹다가 자는 애기는 정말 오랜만이네..."


"사장님, 우리가 저기 맞은편 아파트 사는데요, 얘가 워낙 여기 자장면을 좋아해서 밤에 이 집 간판에 불이 켜진 것을 보며 오늘 여기 영업하네, 문 닫았네 하며 논답니다..."


와이프가 막둥이의 이 집 자장면 사랑을 말해 주었더니 그 여사장님은


"어머 그래요?, 다음에 오면 선물 하나 줘야겠네요~^^"


하며 대답하셨다.


하지만 집에 오는 길에 제과점에 들러 와이프의 생일 케이크를 살 때는 어느새 깨어나 자기가 생일 케이크를 고르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우리 막둥이~^^;;


생일 케이크를 골라 집으로 와서 생일 축하를 하는데 또 자기가 동영상을 찍을 거라며 내 휴대폰을 가져가 동영상을 찍은 우리 막둥이의 솜씨다.


(엄마 생일 동영상을 찍으려다, 또 칼로 케이크를 자르려다 정작 휴대폰을 바닥에 놔버려 찍히지 않은 동영상~ㅋ)


이렇게 좌충우돌, 천방지축인 막둥이가 기가 차고 코가 차게도 지 엄니 생일이라고 편지를 썼단다. 그것도 중학생인 언니의 도움을 받아 한글도 모르는 막둥이가 삐뚤빼뚤(?) 그리듯이 쓴 편지를 보니 편지 받은 당사자가 아닌 나도 울컥할 정도였다.


(막둥이가 엄마의 생일을 맞아 엄마에게 쓴(?) 편지)


둘째의 말에 따르면 막둥이와 둘이서 같이 펜을 잡고 막둥이가 말하는 대로 썼단다. 그러니 글씨는 알아볼 수 없이 삐뚤빼뚤하지만 대충 무슨 내용인지는 알겠다. 평소에 장난감을 잘 치우지 않아서 엄마에게 청소 안 한다고 혼나는 막둥이가 앞으로는 잘하겠다고 반성(?)하는 내용과 엄마의 생일을 축하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자기가 엄마 생일날 동영상과 사진을 찍어주겠노라는 기특한 다짐(?)도 담겨 있었다. 이 편지를 보니 중국집에서 자장면과 탕수육으로 배를 불린 후에도 쏟아지는 잠을 참고 케이크를 고르고 내 핸드폰을 뺏아간 이유를 알겠다. 나름 엄마의 생일에 자기가 동영상과 사진을 찍어주고 케이크도 잘라주려는 심산이었던 것이다.(이런 하고집이 4살짜리라니~ㅋ^^;;)


난 이런 막둥이의 편지와 일련의 고집들을 보면서 마눌에게


"누군 좋겠네~, 이런 이쁜 딸 놔놔서~"


하고 놀렸다. 반쯤 시샘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이다.


막둥이는 날마다 무럭무럭 크고 있다. 우리가 알든 모르던 말이다. 말도 늘고, 글(?)도 늘고 숫자도 늘고 눈치(?)도 늘었다. 우리는 무심결에 말하지만 막둥이의 잠재의식 속엔 뚜렷이 각인되어 지금 듣는 말들이 평생을 갈 것이다. 물론 본인도 잘 모르는 사이에 말이다. 그러기에 이런 유아기 때의 경험과 기억은 얼마나 자신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평화롭고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란 아이와 그렇지 못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이런 잠재의식에서 많은 차이가 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잠재의식은 인생의 큰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자신도 모르게 되살아나 그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말 한마디라도 막둥이 앞에선 조심하려 한다. 그 말이 긍정적이고 행복한 언어라면 그런 인생을 살겠지만 그와 반대로 부정적이고 불행한 언어라면 백지 같은 아이의 인생이 그렇게 펼지지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아이 앞에서 부모와 어른은 백지 같은 아이의 인생에 처음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과 같다. 그들의 그림에 따라 아이도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살아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언젠가 아이의 인생이 마무리되는 날, 아빠 엄마의 행복한 밑그림을 따라 행복한 인생을 그려왔다고 고백하는 내 아이가 될 수 있기를 부모는 맘속으로 기도해 본다.

이전 07화 막둥이의 스토리텔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