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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중한 보석

아빠로 살아간다는 것(1)

by 소방관아빠 무스

결혼 15년 차, 세 딸의 아빠, 좀 우습지만 소방관이 아닌 집에서의 나의 경력(?)이다. 첫째는 열다섯 살, 둘째는 열두 살, 그리고 셋째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 하고도 일주일 정도가 지났다. 사람들은 늦둥이 딸을 본 우리 부부가 금술(?)이 좋다느니,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느니(?) 하는 추측성 발언들을 하곤 하는데 그것도 물론 그럴 수 있지만 사실 우리 부부는 애들을 좋아한다. 늦게나마 생긴 애지만 낳자고 집사람이 말했고 난 흔쾌히 OK 했다. 경제적인 문제나 출생과 양육 과정에서의 어려움도 이미 알고 있지만 애들을 키우면서 얻는 기쁨이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것을 알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애를 낳고 키우면서 얻는 기쁨을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안 키워본 사람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기쁨이 있다. 이이가 태어나는 날은 신의 선물을 받은 듯 가슴이 벅차오른다. 애 셋을 내 손으로 탯줄을 끊어봤지만 그때마다 감격은 다 달랐다. 이번에 태어난 딸아이도 와이프가 노산이라서 걱정을 많이 했었다. 혹시라도 아이나 엄마가 힘들지 않을까 해서 기도도 많이 했었다. 그리고 산부인과 선생님이 권하는 대로 예정일보다 한 일주일 앞당겨 유도분만을 하기로 했다. 산모가 노산이고 태중의 아이도 상당히 커서 예정일까지 기다리다 낳으면 자칫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유도분만 하루 전에 병원에 입원해서 분만유도제를 투여하고 기다리는데 꼬박 하루를 기다려도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거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지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선생님도 저녁까지 기다려보다 나오지 않으면 제왕절개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와이프 나이도 많은데 제왕절개를 하면 회복도 늦어지고 아이도 돌볼 수 없어 우리에겐 안 좋은 소식이었다.

나는 와이프에게 화장실에 간다고 말하고 병원 복도에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와 엄마가 둘 다 건강하게 순산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얼마나 했을까? 주위가 어두워지나 싶었는데 어느 순간 의사와 간호사들이 복도를 뛰어오더니 나를 지나쳐서 집사람이 있는 병실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집사람의 비명소리가 몇 번 이어지더니 아빠 들어오라는 간호사의 목소리...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벌써 새 생명이 세상에 나와 있었다. 엄마의 비명소린 잦아들고 아기의 건강한 울음소리만이 병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축하합니다. 건강한 공주님이네요."

간호사님이 내게 가위를 건네주며 미소를 지었다. 난 그 가위로 아이와 엄마를 연결하고 있던 선을 잘랐다. 이제 세상에 나와서 독립된 사람이 된 우리 셋째 딸을 축하하는 의식이었다. 두 번이나 해본 일이었지만 내 눈에선 다시 눈물이 흘렀다. 새 생명을 내게 맡겨주신 절대자에 대한 감사와 감격의 눈물이었다.(아래는 갓 태어났을 때의 우리 셋째 딸 모습이다)

요새는 한 달쯤 된 아이와 씨름하는 아내를 보면 슬쩍 측은해진다. 왜 사서 고생이냐는 말도 목구멍으로 올라오지만 그때마다 꿀꺽하고 삼킨다. 우리는 요새 아기가 깰까 봐 목소리를 낮추어 대화를 나눈다.

"주은이는 자?"

"네, 이제 자요."

"안 피곤해?"

"피곤하다가도 이렇게 곤히 자는 모습 보면 피곤이 다 풀려, 어쩜 이렇게 이쁠까?"

집사람을 세상 그 어떤 보석보다도 더 귀한 보석을 바라보는 눈빛이다. 이러니 나 같은 놈한테 걸렸지 하는 생각이 슬며시 든다, 우리는 아기를 바라보며, 또 서로를 쳐다보며 웃는다. 세상 그 어떤 보석보다 찬란한 우리 아기가 세상모르고 쌔근쌔근 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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