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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에 생긴 일

아빠로 살아간다는 것 (2)

by 소방관아빠 무스

내일이 어린이 날이니 십 년 전 어린이날에 일어난 일이 기억난다. 첫째 딸이 대여섯 살 즈음이었고 둘째는 그보다 세 살 어리니 두세 살쯤 되었을 게다. 어린이날을 그냥 못 지나치는 나이가 된 두 딸을 데리고 우리 부부가 찾은 곳은 경마공원이었다. 난 그 전날 야간근무를 마치고 아침 9시에 퇴근했기 때문에 멀리 갈 수는 없었고 어린이 대공원이나 놀이동산은 사람이 너무 많을 것 같았기에, 그래도 사람이 너무 많지는 않으면서 어린이날 하루를 때울(?) 곳으로 우리 부부가 생각해낸 궁여지책이었다. 애들은 어차피 경마장이 뭔지도 모를 테고, 그날 경마 경주는 없는 데다 거기서 어린이날 행사도 한다니까 궁여지책치곤 안성맞춤이었다.


우리는 차로 빼곡한 경마공원 주차장에서 운 좋게 한자리를 찾아냈고 그날은 마침 입장료까지 공짜라 정문으로 기분 좋게 들어섰다. 벌써 나무 밑 좋은 자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우리는 가까스로 어린이 놀이터 옆 데크에 돗자리를 펼칠만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점심으로 싸 간 김밥을 꺼내 먹고 신이 난 첫째의 땐쑤(?)를 볼 때만 해도 난 올해 어린이날도 이렇게 순조롭게 지나가나 보다 하고 김칫국을 마셨더랬다.


김밥을 먹고 기분이 좋아진 첫째의 땐쑤(좌) 아직 어떤일이 우리 가족에게 닥칠지 감도 못잡은 나(우)


첫째의 땐쑤가 조금 지쳐갈 무렵이었다. 와이프는 둘째를 화장실에 데려가야겠다고 나에게 첫째를 맡기고 사라졌다. 엊저녁에 근무하느라 좀 피곤했던 나는 돗자리에 팔을 베고 슬쩍 누웠고 첫째는 바로 옆에 있는 놀이터에서 좀 놀다 오겠다고 했다.


"그래라~"


난 손으로 머리를 받친 채 모로 누우며 말했다. 저 정도 거리면 누워서도 첫째를 다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는 정글짐을 지나 그네를 타고 미끄럼을 타고 신나게 놀았다. 아이라서 그런지 벌써 뜨거워진 햇볕은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다. 얼굴이 붉어지도록 놀았다. 그러다 난 나도 모르게 깜박 졸았나 싶었는데...


아이가 없어졌다, 아니, 내 눈에서 사라졌다. 분명히 저 어디쯤 있었는데 다른 아이들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난 슬쩍 일어섰다. 모래장난을 하느라 모래사장에 있는 게 분명해.


하지만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놀이터를 한 바퀴 다 돌았는데도 안보였다. 처음엔 아이들 틈 어디엔가 있을 줄 알았다. 아이들이 너무 많아 안 보이는 걸 테지... 그 때 마침 와이프가 둘째를 데리고 왔다.


"수진이는?"


여자만의 직감이란 게 발동한 것일까? 와이프는 나를 보자마자 첫째부터 찾았다.


"저기 놀고 있어."


난 그 애를 마지막으로 본 미끄럼틀 어디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어디?"


와이프는 둘째 손을 내 손에다 넘기더니 놀이터 곳곳을 찾아다녔다. 그리곤


"없어!, 없다고!"


하며 내게 와서 말했다. 난 그녀의 눈에 비친 눈물을 그제야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경마장 곳곳을 말처럼 뛰어다녔다. 난 둘째까지 잃어버릴까 봐, 놀래서 우는 둘째를 안고 뛰어다니느라 오월의 햇살 아래 금방 얼굴이 벌게졌다. 여기도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 애 같이 예쁜 애를 보면 자기 집으로 데려가려는 사람이 한 둘 있을 것만 같았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첫째처럼 생긴 애만 보면 얼굴을 돌려 쳐다보았다. 경마장 직원 같아 보이는 사람을 보면 우리 애 인상착의를 설명하며 혹시 보지 않았냐고 물었다. 대답은 하나같이 '못 봤다'였다. 갑자기 TV나 전단지에 나온 애들 얼굴이 내 눈에 오버랩됐다. 직장을 그만두고 자식을 찾아다니던 부모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나도 그래야 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때였다. 커다란 앰프에서 방송이 흘러나온 것은...


"알려드립니다. 부산에서 온 여섯 살 이수진 양을 보호하고 있사오니 보호자께서는..."


그제야 내 눈에서도 와이프와 것과 같은 뜨거운 것이 솟아나고 있음을 느꼈다. 한달음에 미아보호소로 뛰어가 문을 열어젖히니 얼굴이 벌겋게 된 첫째가 누가 줬는지 모를 우유와 카스텔라를 먹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울면서 뛰어와 안겼다. 내 눈에서도 다시 뜨거운 것이 솟아올랐다. 언제 왔는지 와이프도 합세해 우리는 셋이 하나가 되어 엉엉 울었다. 내 팔에 안겨있던 둘째도 영문도 모르고 울기 시작해 미아보호소는 눈물바다(?)가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민망하기도 한데, 거기서 근무하던 직원도 우릴 놀란 눈으로 쳐다봤을 정도니 우리가 거기서 조금 오버하긴 했나 보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인적사항을 적고 애를 데리고 나오면서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물렸더니 첫째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제 엄마에게 재잘거렸다. 둘째는 내 등에서 잠이 들었다. 어린이날의 종말을 고하듯 하루 종일 애들을 본다고 수고했던 그날의 태양도 서녘으로 뉘엿뉘엿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는 그 하루를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더 이상은 부모와 아이들의 눈에 눈물이 마를 날 없는 아동 실종사건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했다.


KakaoTalk_20211203_141729178.jpg 언제나 부모라는 태양이 비치고 있기를...


그리고 오늘 밤도 기도해본다. 내일도 신나는 어린이 날이 되기를, 그리고 자라나는 아이들의 머리 위에는 부모라는 태양이 언제나 밝게 비치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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