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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립과 설소대

아빠로 살아간다는 것 (3)

by 소방관아빠 무스

늦은 나이에 셋째를 봐서 그런지 셋째는 일반 아이들과는 다른 것 두 가지를 달고 태어났다. 바로 왼쪽 귀에 조그맣게 붙은 주머니같이 생긴 폴립과 혀 아래쪽에 실처럼 가느다랗게 붙은 설소대다.


tongue-tie-operation.jpg (설소대 수술 설명사진-네이버 블로그 펌)


둘 다 살아가는 데 별 문제는 없지만 폴립은 보기에 좋지 않고, 설소대는 나중에 혀 짧은 발음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영유아기 때 제거해 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래서 갓난쟁이 -오늘로 태어난 지 딱 오십일 되었다.- 가 얼마나 아플까 싶기도 하고, 또 코로나가 잠잠해지길 기다리다가 며칠 전 병원에 갔었다.


세째 오른쪽 귀밑에 붙어있는 폴립

폴립은 대학병원급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설소대는 동네 소아과에서 간단한 시술만으로도 제거할 수 있다고 해서 먼저 설소대 제거 시술을 하러 집 앞에 있는 동네 소아과에 아기를 둘러업고 데려갔다.


의사 선생님은 셋째의 입을 벌려 혀 밑을 보더니 이 정도면 시술을 해 주어야 할 것 같다고 하신다. 사실 내심, 안 해도 괜찮다고, 정도면 발음에도 영향이 없을 것 같으니 안 해도 되겠다고, 그렇게 말씀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아이를 보자마자 그렇게 말씀하시니 안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선생님은 오늘 예약 잡고 다음에 와서 시술을 하겠느냐고 물으셨지만 우리 부부는 이구동성으로 온 김에 오늘 바로 하겠다고 했다. 며칠간 셋째를 보면서 또 애를 태울 생각을 하니 그것도 못할 짓이다 싶었기 때문이다.


시술은 너무도 간단히 끝이 났다. 선생님이 앉은자리에서 시술 도구로 셋째 혀밑에 붙어 있는 얇은 막을 잘라내는 데는 2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셋째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병원이 떠나가라 울기 시작한 것이다. 와이프와 나는 재빨리 수유실로 들어가 아기에게 젖병을 물렸다. 이 시술은 마취도, 지혈제도 없이 오로지 엄마젖을 빠는 것만이 유일한 진통제이자 마취제, 지혈제였기 때문이다. 셋째는 안 그래도 젖 먹을 때가 되어서 그랬는지 힘껏 젖병의 젖꼭지를 빨면서 -집사람도 노산이라 모유가 나오지 않는다.- 아픔을 잊어가는 것 같았다. 이제 태어난 지 한 달쯤 된 갓난쟁이가 눈물을 흘리면서, 입술가로 피가 스민 채, 젖병을 빠는 모습을 보노라니 맘이 짠했다.

'이제 한고비를 넘은 건가? 셋째는?...'


우리는 모두 인생에서 많은 고비를 넘어왔다. 크던, 작던간에. 그것은 인생을 좌지우지할 큰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시기만 잘 넘기면 되는 간단한 것일 수도 있다. 그 고비를 잘 넘기면 커다란 기쁨과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때도 있고, 못 넘기면 더 큰 좌절과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날마다 그런 고비와 맞닥뜨리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젖병을 빨다 잠든 셋째를 보며 얘도 그런 인생의 첫 번째 고비를 무사히 잘 넘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다음에는 폴립 제거 수술이란 고비가 있지만 그것 또한 잘 견뎌내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인생의 고비들을 하나둘씩 넘기다 보면 어떤 것들은 면역력이 생기고, 어떤 것들은 적응력이 생기고, 또 어떤 것들은 요령이란 게 생겨서 인생이란 항해의 끝자락에 도달하는 게 아니겠는가? 셋째도 그런 고비들을 무사히 넘기고 그가 바라는 어떤 목표에 가 닿길 간절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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