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태어났던 막내가 얼마 전 벌써 오십일을 맞았다. 아기는 잘자고 잘먹고 잘논다. 가끔 밤에 잠을 안자고 보채기도 해서 엄마를 힘들게 하기도 하지만 이제 처음 세상에 나온 아기에게 그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에 별 문제는 없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와이프가 막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서 2주간 있다가 집으로 온 날은 마침 둘째의 생일이었다. 와이프는 둘째에게 엄마 없는 생일을 보내게 하고 싶지 않아 산후조리를 좀 더 하고 싶었지만 예정보다 일찍 집으로 온 것이었다. 하지만 둘째의 반응은 어쩐지 뜨끈미지근했다. 동생이 와서 신기하고 좋긴 한데, 생일날 밖에 나가서 외식도 할 수 없고 생일 선물 사러도 나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날 저녁엔 나름 고급진 음식으로 배달을 시켜 먹고 케잌도 불었다. 나가진 못하지만 둘째가 갖고 싶어하는 선물을 인터넷으로 주문도 해줬다. 이정도 했으면 둘째도 아쉬운대로 만족하리라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하루종일 둘째의 생일 챙기랴, 막내의 보금자리 꾸미랴, 눈 코 뜰 새가 없는 하루가 지나고, 계속 시끄럽게 울어대던 막내의 울음소리도 조금씩 그쳐갈 무럽이었다. 이제 조금 쉬어볼까 하고 샤워를 하고 욕실에서 나와 둘째의 방문앞을 지날 때였다.
"흑 흑~"
방문 안에서 들리는 소리는 분명 둘째의 울음소리였다. 얼른 옷을 갈아입고 방문을 열어보니 어두운 침대 머리맡에서 둘째가 베개를 껴안고 울고 있었다.
"채윤아, 왜 울어? 무슨일 있니?"
"엄마 아빠는 내 생일인데 주은이만 예뻐하고..."
아이의 입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말들이 튀어나왔다. 우린 신경을 쓴다고 썼는데 둘째의 입장에선 많이 서운했나 보다. 막내가 처음으로 집에 와서 필요한 이것 저것을 준비하고, 계속 우는 막내를 달래주다 보니 자기보다 막내를 예뻐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난 우선 둘째를 껴안아 주었다.
"아니야, 아빠는 채윤이, 주은이 둘 다 예쁜 걸~"
"그런데 왜 계속 주은이만 보고 있고 내 생일엔 아무도 관심이 없어?"
둘째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은 빰을 타고 입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둘째는 설움에 북받이는지 딸꾹질까지 해가면서 울먹였다.
"오늘은 내 생일이라구!, 내생일!, 그런데 왜 내가 아니고 주은이가 주인공이 돼야 해?, 내 생일에는 내가 주인공이어야 하는데 주은이가 주인공이 돼 버렸어!"
난 정말 깜짝 놀랐다. 둘째의 울음소리를 듣고 안방에 있던 와이프도 뛰어왔다. 와이프는 우릴 보자마자 상황을 직감한 듯 나와 둘째를 같이 껴안았다.
"엄마 아빠는 너와 주은이를 다같이 사랑해!, 오늘은 채윤이 네 생일이기도 하지만 주은이가 처음 집에 온 날이니 이것 저것 준비해 줬을 뿐이야, 그러니 누가 뭐래도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채윤이야, 알았지?"
집사람은 그렇게 둘째를 달래며 둘째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나도 둘째와 집사람을 힘껏 껴안았다. 초등학교 오학년, 열두살. 이제 다 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직 엄마 아빠의 사랑이 목마른 애기일 뿐이었다.한참을 그렇게 우리 셋은 어두운 방안에서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둘째의 울음이 잦아들자 난 거실로 나오고 집사람도 둘째를 재우고 나서 거실로 나왔다.
"초등학교 오학년이라 이제 다 큰 줄 알았는데 아직 애기네, 애기."
나는 목소릴 낮추어 집사람에게말했다. 그러자 집사람도 내 귀에 대고 귓속말로 말했다.
"동생을 낳아 데리고 오는 건 여자로 치면 남편이 바람을 피고 내연녀를 집으로 데리고 올 때의 충격이랑 맞먹는데요."
"정말?"
"그럼요, 그래서 둘째에게 신경을 더 써줘야 해요."
집사람의 말을 듣고 나자 둘째의 마음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나마 중학생인 첫째는 자기방에서 잘 자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 때 안방에선 다시 막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다시 허둥지둥 안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깊어가는 밤하늘에 저녁달만이 우리 집을 포근하게 비추어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