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10년 키웠어요 두 번째 이야기
육아 관련 브런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나름의 고해성사라고나 할까.
때는 바야흐로 2012년.
각자 2012년에 관한 여러 가지 기억들이 있겠지만
나에게 2012년은 두 가지 일로 기억된다.
우선 런던 올림픽이 있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 딸이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2012년 8월 난 영국으로 출장을 가야 했었다.
당시 맡았던 프로그램의 촬영차 열흘 가까이
올림픽이 열리는 런던에 머물러야 하는 스케줄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9월 중순 출산 예정이었던 똔똔이(태명)가
뭐가 그리 급한지 세상에 빨리 나오려고 하는 기미를 보인다는 거였다.
의사는 조산을 막기 위해 절대 안정을 권했고
아내는 절대 안정을 위해 집 근처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임신중독 증세까지 보이는 상태였다.
그런 아내를 두고 머나먼 타국으로 장기 출장을 가게 된 것이었다.
"똔똔아 아빠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
그렇게 열흘의 시간이 지나고 한국에 돌아와 보니
아내는 증상이 심각해져 대학병원으로 옮긴 상태였고
심지어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다.
임신중독 때문인지 혈압은 정상수치를 한참 넘은 고혈압 위험 상태였고
얼굴은 띵띵 부어 다른 사람 같아 보일 정도였다.
그나마 엄마도 아이도 잘 견뎌주어
아빠가 올 때까지 별일 없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내 아이를 낳기 위해 꼼짝 못 하고
보호자도 없는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아내를 보고
난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이제 괜찮아 걱정 마!
어쩐지 손도 꼭 잡았던 것 같기도 하다.
변명이 길었다.
한 가지 변명만 더 하자면
보호자는 중환자실에 머무를 수 없기에
집에 자러 가는 나를 향해 아내는
"오늘은 아무래도 아기가 나올 것 같지 않아"
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아빠가 왔으니 분만 지연제를 투약하지 않겠다"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좀 더 귀담아들었어야 했다.
핑계일 뿐이지만 장장 열흘 동안이나
외국 생활을 한 나로서는
고국에 대한 또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을 수밖에 없었을 거다.
친한 후배와 약속을 잡고 술을 마시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워서 그랬는지
딸아이가 곧 태어난다는 설렘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원래 난 술만 먹으면 그런 놈인 건지..
새벽 2시.
아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긍정적인 사람이지만 그때라도 멈췄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그때는 술이 술을 먹고 있는 상황
멈추지 않고 술자리를 계속했다.
잠시 후, 다시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다.
긴급상황이었다.
바로 병원으로 오라는 호출!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부랴부랴 옷이라도 갈아입고 가야겠다는 마음에
얼른 집으로 들어갔다.
술 냄새 음식 냄새 담배 냄새가 섞여 있는 터라
우선 샤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후딱 샤워를 마치고 나서 어쩐지 더운 날씨에
헤어드라이어를 쓰고 싶지 않아 선풍기를 켜고 그 앞에 앉았다
바닥에 앉아 있으니 다리도 저리고 허리도 뻐근한 거 같아
잠깐 허리를 펼 생각으로 등을 바닥에 대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미친 듯 울려대는 핸드폰 진동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받아보니
울부짖는듯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도대체 어디야!!"
바로 간다고 하고 전화를 끊어보니
부재중 전화만 수십 통.
심지어 장모님에게까지 몇 통의 전화가 와있었다.
시간은 벌써 아침 6시!
빛의 속도였다.
광복절 아침 올림픽 대로는 차 없이 한산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소리는 아니지만
다행히 출산 직전에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이가 나오길 기다리면서 설렘이나 흥분보다는
분주하게 내 주변을 오가는 의사나 간호사분들이
술 냄새 눈치채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것 같다.
잠시 후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효녀 아기는 응애 하고 세상에 나왔다.
2012년 8월 15일 오전 8시 44분
그렇게 우리 2.12Kg의 똔똔이는 건강하게 엄마 아빠를 만난 것이다.
이런 망나니 같은 아빠임에도
건강하게 낳아준 아내와
건강하게 나와준 딸이 너무 고맙기만 하다.
평생 아내에게 딸에게
그날의 만행을 속죄하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