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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Sep 08. 2024

비밀스러운 열정

04

 - 이사는 잘했어요?


- 덕분에 잘 끝냈어요. 짐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부모님 차에 다 들어가더라고요. 근데 어디서 소문이 났는지 김 변호사님이 집들이 언제 하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너무 작아서 두 명도 못 앉는다고 말씀드렸더니 다들 서서 먹으면 된다나 어쩐다나. 그런데 저를 너무 대견한 눈빛으로 말씀하시는데 부담스러워 죽는 줄 알았어요.


- 부담 주려는 건 아니고 정말 대견해서 말씀하신 걸 거예요. 요즘 집을 산다는 게  젊은 사람이든, 늙은 사람이든 모두에게 힘든 일이니까요.


- 그래서 더 싫어요. 그 눈빛에서 다 보이거든요. 너는 젊어서 벌써 집도 사고 좋겠다는 마음이요. 이제 결혼해서 아이 낳고 행복하게 살면 되겠다고 다들 한 마디씩 할 것 같은 분위기. 저는 앞으로 대출 갚으려면 그 집에서 진짜 팍팍하게 살아야 하거든요. 최소한의 지출로 먹고 자는 게 생활이 아니라 생존인데 다들 너무 쉽게 봐요.


 샛노랑 텀블러에 얼음 믹스 커피를 타서 홀짝 마시며 푸념을 늘어놓는 직원에게서 자신에게는 없는 눈빛이 반짝였다. 입으로는 힘들다고 토로해도 행동에서는 앞으로 잘 살고 말 거란 투지가 보였다. 자리를 청소하면 가끔씩 자리 주인의 성격이나 습관이 보이기도 하는데 그 직원의 자리는 출입문을 열면 바로 모니터가 보이는 자리여서 늘 깔끔하고 단정했지만 모니터에 뭘 걸쳐 놓았는지 가까이 가서 보지 않으면 화면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건 타인의 눈을 지극히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었고 그만큼 적절한 거리로 자신의 자리를 잘 지켜내고 있는 의미이기도 했다.




 홍남이는 명절에 납골당을 찾지 않았다. 여은정이 명절이 오기 몇 달 전부터 꼬셔야 갈까 말까 한 정도였는데 올해는 시조카 석우가 납골당 주소를 묻길래 혼자서라도 찾아주는 고마운 마음에 함께 했다.


- 잘 지내셨어요. 큰어머니? 어디서 일 하신다고 들었는데. 힘드시죠?


- 아직 큰엄마 젊은데 뭘. 쉬엄쉬엄 하고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돼. 너야말로 제대하고 나더니 얼굴이 더 좋아졌네.


- 또 가라고 하면 싫긴 한데 그래도 군대 있을 때는 규칙적으로 사니까 몸도 가뿐해지고 정신도 단순해져서 그런지 얼굴에 티가 나나 봐요. 근데 이제 또 취업 전쟁이죠 뭐.


 ‘언제 이렇게 컸을까’하고 홍남이는 석우를 바라봤다. 아무리 삼촌과 조카 사이라지만 시동생 얼굴보단 남편의 얼굴과 비슷한 분위기가 있었다. 또렷한 눈매에 어울리지 않는 순한 눈동자, 코 끝이 둥글어 귀엽다가도 무표정일 땐 한없이 차가운 그림자가 섞이는 얼굴. 이렇게 잘 자란 아이를 볼 때마다 홍남이는 마음 한쪽이 소금을 뿌리듯 쓰렸다. 세 번의 유산을 겪으며 하나밖에 없는 시조카를 부러운 눈으로 볼 수밖에 없던 지난 이십 삼 년. 자식에 대한 미련을 이제야 조금씩 녹이는 중이지만 그동안 끌어오던 여러 감정으로 석우에게만은 좋은 어른으로 옆에 남고 싶었다.


- 큰어머니. 무섭진 않으세요?


 차가워도 따뜻한 바람 속에 앉아 흔들거리는 꽃을 보며 하는 아이의 말은 너무도 뜻밖의 물음이어서 홍남이가 미처 거짓말로도 에두르지 못한 말을 꺼내게 했다.


- 글쎄. 석우가 묻는 무서움이 내가 느끼는 것과 같을지 모르겠는데 그게 혹시 외로운 것과 비슷한 마음인 걸까? 큰엄마는 여태껏 외롭지 않은 적이 없었어. 큰아버지를 만나고 살 때도 종종 인생은 누군가와 함께 가거나 혼자 가는 순간이 교차로처럼 끝없이 이어진다고 여겼지. 젊을 적엔 그 교차점을 많이 만드는 게 행복인 줄 알았는데 점점 나이 들어 보니 중요한 건 길에서 만나는 사람이 누구냐가 아니라 그저 내가 걷고 있단 사실이더라. 큰엄마는 큰아버지의 아픈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교차로는 이제 영원히 없어지겠단 마음에 슬프고 외로울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야. 나는 그냥 계속 걸었어. 그냥 그게 내 삶이라고 받아들였지.


 석우는 큰어머니의 낮고 차분한 음성에 귀 기울이며 큰아버지를 떠올렸다. 늘 자신을 자랑스러워해 주던 남자. 본인의 얼굴을 닮아 더없이 큰 사랑을 주었던 남자가 어느 날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더니 말도 없이 떠났다. 또 한 명의 아버지를 잃은 것처럼 상심했던 소년의 눈에 큰어머니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던가. 슬픔에 무너졌던가. 홀로 남은 인생을 서러워했던가. 그의 마음속 깊이 남은 장면은 장례식장에서 큰어머니는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꼿꼿이 서서 큰아버지를 태우고 있는 창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빈 주먹을 꽉 쥐고 스스로 일어서 버티고 있는 모습이었다. 묘하게도 한 올 한 올 떨어진 앞머리에 가린 눈매와 굳게 다문 입술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허망함의 텅 빈 구멍을 가까스로 닫고자 하는 결심에 가까운 듯 보였고 그런 큰어머니의 모습에 석우는 안심이 되었다.


 홍남이의 남편은 자신을 바다에 넘겨주길 바랐다. 아무 흔적도 없이 세상과 안녕하고 싶다고. 처음엔 그녀도 그의 유언을 들어주려 했지만 시동생이 말려서 그러지 못했다. 언제든 보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자신보단 홍남이에게 그게 더 좋을 거라 말했던 날이 생생했다. 그때는 홍남이도 그게 맞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혼자 납골당을 찾을 때면 하루의 가장 슬픈 시간이었다. 차라리 바다나 산에 그를 보냈더라면 덜 슬펐을 것 같았다.


 그래도 굳이 기쁜 일을 찾는다면 납골당을 떠나 집으로 가는 길. 늦게 배운 운전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 줄 알았더라면 더 일찍 도로를 사랑하는 홍여사가 되었을 거란 거다. 고향에서 여은정이 같이 운전을 배우자고 그렇게 꼬드겨도 홍남이는 꿈쩍하지 않았다. 도대체 그 위험한 차를 왜 직접 몰아야 하는지 정말 몰랐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면 주변 경치를 보면서 공상에 빠질 수도 있고, 아니면 아무 때나 꾸벅꾸벅 편하게 졸 수도 있고 심지어 그토록 읽고 싶어 하던 책도 실컷 읽을 수 있는데 운전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건 어리석은 짓 같았다. 심지어 결혼을 하면 평생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운명의 수레바퀴는 홍남이가 자동차 바퀴 바람을 넣게 만들고 엔진오일의 가격을 비교해 사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했다. 언제 응급상황이 닥칠지 모르는 남편의 상태에 맞춰 병원과 집을 수백 번 오가면서 자동차는 그녀에게 또 다른 남편이 되어주고 있었다. 아니, 남편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일보다 이 차가 세상에 없어졌을 때 자신에게 닥쳐올 공허가 더 클 것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도우미가 집에 있는 날이면 기꺼이 차를 몰고 먼 시내를 돌고 오곤 했는데 그 순간만큼은 신이 주는 고독의 모든 축복을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혼자 인 듯 혼자 아닌 일상에서 막막하고 답답한 감정을 처리하지 못하는 날들이 쌓일 때마다 그 길로 나가 멀리 운전을 해서 아무 상관없는 동네의 작은 공원에 앉아 있다 오곤 했다. 그러고 나면 묘한 활력이 생겼고 다시 그녀의 건조한 팍팍한 삶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십여 년의 간병생활을 어느 때이고 스스로 그만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이제 가벼이 혼자가 된 삶에서 한강 다리 위를 달리며 노을 지는 하늘을 볼 때면 신이 축복하는 생의 기운을 가득 받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또 앞으로 힘든 날이 와도 결국 지나가고 마는 신의 공평한 위로가 마음에 들었고 운전하는 행위에서 확장되는, 내 인생을 컨트롤하고 있다는 단순하고 단단한 감각이 예순이 넘도록 더 생생해지는 것이 좋았다.



- 언니 어디야?


- 형부 보러 갔다가 막 집에 왔어. 무슨 일이야?


- 수현이 잠깐 한국 들어왔어. 밥이라도 먹을까 해서. 본 지 꽤 됐지? 이럴 때만이라도 만나야 정이 들지. 나중에 언니 죽으면 초상 얘가 치르지 누가 치른다고. 엄마다 생각하고 만날 수 있을 때 자주자주 만나. 용돈도 좀 주면서. 요즘 애들 받아먹을 것 없으면 지 애미고 애비고 만나주지도 않아요.


 그럼 그렇지. 동생의 뻔뻔한 말에 매번 속이 문드러지는 홍남이는 이번에도 괜히 전화를 받았다고 후회했다. 어쩜 말을 저렇게 얄밉게 하는지. 매번 저렇게 억지를 쓰는 동생 때문에 괜히 아무 죄도 없는 수현이에게 안 좋은 감정이 생긴다. 다음에 밥 한 번 먹자며 서둘러 전화를 끊고서도 괜히 화딱지가 났다. 처음에는 지나가는 말로 몇 번 하다 말겠지 했는데 이제는 대놓고 몇 개월에 한 번씩 조카가 한국에 올 때마다 죽을 때 장례를 치를 사람이 조카뿐이라며 살아생전 제삿밥을 위해 공을 들이는 것처럼 돈을 갖다 바치게 했다. 처음에는 유학 간다고 비행기 표값과 첫 학기 학비를 내주었고 그다음엔 집세를, 또 그다음에는 하다 못해 밥 굶지 말라고 두둑이 용돈이라도 보내야 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외로운 사람에게 돈만큼 가장 정확한 ‘정’은 없다며, 동생은 내게 맡겨 놓은 적금이라도 있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우면서도 자연스럽게 조카에 대한 정을 바리바리 싸서 돈과 미래의 책무를 함께 보냈다.

 

 막내 동생은 어릴 적부터 셈이 무척 빠른 편이었다. 홍남이의 성격이 둥글고 이래나 저래나 흥흥거리며 사람 좋은 웃음만 짓고 있을 때 동생은 매일 싸우는 가난한 부모님 밑에서 눈치껏 생존력을 길렀고 지 나름대로 오빠와 언니를 챙기며 실속 있게 삶을 꾸려갔다. 작은 지역 마트에서 생선가게를 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딸 하나를 낳고 지금껏 한 번도 쉬지 않고 일을 해오고 있지만 한 푼 두 푼 모아도 자기 이름의 번듯한 가게 하나를 차리지 못했다. 어릴 땐 약삭빠르고 똘똘했던 셈법이 지금은 많이 무뎌졌고 이제는 하나밖에 없는 고명딸에게 새로운 셈을 더하고 있는 중이다.


 형부가 병상 생활을 끝낸 후, 기력 없이 멍하니 세상을 등지고 있던 홍남이에게 보험금을 이야기하며 본인이 옆에서 다 처리해 줄 테니 나중에 가게 보증금만 따로 챙겨달라는 소리를 할 수 있었던 건 여전히 몸 안에 남아 있는 생존력이 발휘되었던 덕분이었다. 자신에겐 더 이상 꿈꿀 수 있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지만 수현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은 해주고 싶었고 자식 하나 없어 혈혈단신으로 늙어야 하는 언니의 노후 생활은 자신의 딸 몫이 될 수밖에 없단 계산을 끝내 놓고서 자신의 욕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홍남이도 동생의 이런 속셈을 모를 리 없었다. 조카가 어렸을 때는 먹고살기 바쁘단 핑계로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때도 그들을 잘 만나지 못했다. 자신은 괜찮다 쳐도 부모님은 손녀 사랑이 지극해 얼굴 한 번 보고 웃는 게 다 일뿐인데도 동생은 자주 찾지 않았다. 막상 얼굴을 보는 때는 급한 돈이 필요해서 비굴하게 웃으며 친한 행세를 할 때였고, 그게 아니면 자신의 애달픈 인생을 투정하러 올뿐이었다. 지금도 수현이가 한국에 올 때마다 굳이 자신을 만나는 건 지 엄마가 보내니 할 수 없이 안부를 묻는 정도였다. 친조카였지만 시조카보다도 어색하고 어려운 사이. 그 마음이 괴롭고 괘씸했지만 요양원에 있는 친정 부모님을 생각해 남처럼 대하기도 어려웠다.




-다음주 연재는 쉬어갑니다. 명절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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