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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뜰 Sep 01. 2024

비밀스러운 열정

03

 육 개월 정도 청소하는 일이 몸에 익으니 주변 풍경과 사람들이 눈에 익숙해졌다. 같은 일을 해도 사람들의 습관과 특성은 제각각이었고 청소를 하고 있는 홍남이에게 건네는 인사도 온도와 결이 현저히 달랐다. 어떤 사람은 무심하게 한마디를 해도 예의 바르고 정중했지만 어떤 사람은 친절한 단어를 써도 무시하는 말투로 뱉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나쁘다고도, 또 착하다고도 할 수 없는 건 집단의 속성이 결국 여러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기에 ‘그러려니’하고 넘어가야 하는 순간이 당연했다. 처음 홍남이는 껄끄러운 말투와 시선에 상처받는 일이 곧잘 있었지만 점점 내성이 생겼다. 적어도 자신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아니고 잘 드러나면서 보이지 않는 공간을 청소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혼자여서 편안하고 혼자여서 책임지는 일이 나쁘지 않았다.


 새벽에 제일 일찍 출근해 사무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면 지난밤 뜨거웠던 여름의 열기가 훅 덮쳐 왔다. 비라도 온 날이면 습한 기운까지 머물렀던 탓에 진한 비 냄새가 한꺼번에 몰아치곤 했는데 홍남이는 그 모든 아침의 시작이 좋아서 새벽이 점점 기다려졌다. 어떤 날은 전날 밤 직원들 간의 논쟁과 각자의 고민을 나눈 음식의 흔적들이 그대로 발견되기도 했고, 미처 다 마시지 못한 커피와 컵라면 국물이 차갑게 식은 날의 책상 위의 모습은 그녀에게 뜻밖의 행운을 가져다준 것처럼 감격스러울 때가 있었다. 평생 무엇을 위해 저토록 치열하게 살아본 적이 없는 그녀는 타인의 불행을 변호하는 사람들의 직업이 대단했고 그 일로 돈을 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가끔 쓰레기통을 비우러 사무실에 있으면 의뢰하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는데 그들은 한없이 무거운 표정으로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 그들의 억울한 사건을 한껏 토로하고 연신 잘 좀 부탁드린다며 고개를 숙이고 다시 나갔다. 그 일을 변호하게 된 변호사는 그 뒤부터 계속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하고 몇 시간 동안 미간을 찡그린 채 돌처럼 일만 하는데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불편한 일을 해결한다는 건 얼마나 중압감이 클지 홍남이는 짐작도 어려웠다. 그러면서 이곳을 청소할 때마다 일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을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뭔가를 하고 있는 동안 무엇이 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기운인지, 에너지인지 뭔지 모르지만 모두들 잘 해내 보려고 자신이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그 자극은 오랫동안 무력하게 살아왔던 홍남이에게 몸으로 전해오는 힘이 됐다. 사별 후 친구들이 매번 말하는 ‘힘내’로 결코 느끼지 못했던 강력한 위로를 이곳 사람들의 표정과 일하는 모습에서 비로소 받을 수 있었다.


  아침 해가 점점 늘어지면 책상 위의 펜과 연필, 종이, 골무, 시계, 먹다 먹다 만 빵 부스러기, 컵라면의 그림자가 그려내는 고민과 한숨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또다시 내일의 해가 뜨면 다시 그 일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깨끗하고 완벽하게 사무실을 청소했다. 하면 할수록 청소는 마법이란 확신이 들었다. 깨끗한 공간은 사람의 사기를 가뿐하고 활기차게 만들었다.


 가정주부였을 때도 요리보다는 청소와 정리정돈을 더 좋아하고 잘했던 그녀는 어떤 흔적이든 깔끔하게 치우고 어질러진 물건을 제자리에 둠으로써 물건을 찾는 사람이 생각하지 않고 바로 손을 뻗어 쓸 수 있게 시간을 버리지 않도록 루틴을 만드는 게 좋았다. 그녀는 가끔 바닥에 떨어져 있는 가위, 스테이플러, 지우개, 쓰레기통 위치를 반드시 확인하고 본래의 자리에 둠으로써 그들이 일하는 동작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신경 쓰며 책상 주변의 세계를 조정했다. 바닥을 쓸고 닦는 일에 비할 바가 안 될 정도로 이 작업은 꽤 품이 들었다. 무질서 속에 질서를 매기는 일은 정리정돈에 감각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동시에 쓸모와 무쓸모의 기준을 찾아 과감히 물건의 존재를 결정할 줄 알아야 했다. 홍남이에겐 선천적으로 정리와 정돈의 분별력이 갖춰져 있었고 사무실 사람들도 묘하게 혼돈 속의 간결함을 느끼고 있었다.



 - 여사님, 여름이라 그런지 걸레 냄새 심해지는 것 같지 않아요? 신경 좀 써주세요.


- 죄송합니다. 냄새가 심한가요?

 

 - 바닥 닦고 지나가면 쿰쿰해서 창문 열고 환기 좀 시켜야 할 것 같은데요? 여름이면 미리미리 준비 좀 하고 잘 관리하셨어야죠.


 - 죄송해요. 내일부터 더 신경 쓰겠습니다.



 걸레 냄새를 지적받았으니 내일부터는 더 신경 써야겠다고 수첩에 적었다. 막대 걸레로 청소하는 만큼 더 꼼꼼하게 확인했어야 했는데 허리 아프다는 핑계로 좀 소홀했더니 바로 좋지 않은 소리를 들었다. 다들 자기 일에 바빠서 관심이 없는 듯 보여도 청소는 열 번 잘해도 한 번 못 하면 제대로 티가 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불만 이야기를 들으면 바로 휘청거리는 홍남이었다. 비교적 평화롭고 안전한 세계에서 남편과 가정만 챙기며 살아왔기 때문에 남들에게 싫은 소리 한번 못하고 또 잘 듣지도 않으며 살아온 탓이었다. 모든 일에 좋으면 좋은 거라고 무던하게 넘겨왔던 습관이 이 바깥에서는 큰 단점이 되고 말았다. 예순의 나이어도 잘못한 일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건 감정적으로 버거웠다. 별 뜻 없이 지나가는 말을 사회적 언어로 변환해 듣고 넘기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어디에 물어볼 수도 없는 나이 많은 아줌마가 되었기에 혼자 삭힐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집에 오면 얼음을 가득 담아 차가운 소주를 한 컵 따라 마셨고, 감정적으로 더 치달으면 블로그에 일기를 썼다. 임신이 안 되고 남편과 싸우고 속상할 때 여은정에게 전화를 하곤 했지만 워낙 시시콜콜 떠드는 성격이 아니었던 홍남이는 자연스럽게 속엣 말을 아무 종이 위에 끄적거리기 시작했고 혼자 남편의 간병을 할 때 블로그를 만들어 자신만의 대나무 숲을 세웠다. 비록 비밀글로 남겨 아무도 읽진 못했지만 그 행위 자체만으로 이 세상에 대해 불평불만을 말하고 있는 해방감이 좋았다.

 

요즘의 일기는 주로 지적받은 사항을 나열하고 누가 그 말을 했고, 그 사람의 특징을 나름대로 생각해 써보는 건데 가열하게 쓰고 있으면 그 사무실이 이루어낸 세상의 쓸모와 그곳을 채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욱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그건 매일 허리와 무릎이 나가도록 청소하고 돌아와 자신이 머물렀던 세상을 다시 한번 복기하는 일이 되었는데 매번 인생이 무겁고 피곤했던 삶에 든든한 구석이 생긴 것 같아 좋았다.

 

 십 년 동안 남편을 돌봐 오면서 내일을 오늘과 똑같이 보내야 하는 걸 알아서 두려웠던 홍남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일이 있어 든든하고 안심이 됐다. 청소해야 할 장소, 그 속에 자리 잡은 일들이 내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의 등을 돌리고 허리를 세우고 침대에 눕히던 힘을 타인의 불행한 삶을 끝내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청소하는 일이어서 좋았다. 예전에는 미래도 없이 막연히 하던 일이 이제는 그녀에게 계속 살아가도 되는 확신을 주는 일로 바뀌었다.



막 탕비실 수면대 청소를 마치고 행주를 빨고 있는 찰나, 젊은 여자 직원이 말을 걸어왔다.


- 저기 여사님? 혹시 저 쓰레기 비닐봉지 큰 것 좀 주실 수 있어요? 이사 앞두고 옷 정리를 하고 있는데 비닐봉지 마땅한 게 없어서요.


 큰 비닐봉지는 따로 경비처리 하는데 눈치가 보여 개인 돈으로 산 봉투였다. 아무리 한 장에 몇 십원 짜리라지만 선뜻 그러고마 하기 어려워 일단 찾아본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다섯 장 정도를 잘 포개어 점심시간에 직원 책상 위에 두었더니 감사의 표시로 박카스 한 병을 갖고 찾아왔다.


- 감사해요. 여사님. 덕분에 옷 좀 싹 버릴 수 있겠어요. 인터넷으로 사려고 보니까 낱장으로는 안 파는 데다 배송비까지 하면 몇 천 원이 훌쩍 들어서 돈이 아깝더라고요..


- 이사 앞두고 정리하는 거 쉽지 않은데.. 고생 좀 하겠어요. 좋은 곳으로 가요?


- 그동안 원룸에서 진짜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게 살았는데 저 이번에 청약 당첨돼서 13평 아파트로 가요. 90프로가 대출이긴 하지만 온전히 제 돈으로 작은 집을 구했다는 게 너무 기뻐요. 아, 이건 여사님께만 말씀드리는 비밀이에요. 다른 변호사님들께는 말씀 안 드렸어요. 다들 집 샀다고 하면 기특하게 보시는데 전 그냥 평범하고 조용한 사람이고 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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