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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재형 Sep 18. 2019

'병' - 「위장도 늙는다」

그날 회사원의 위장은 처참히 무너졌다

  회사원도 가끔은 아프다. 아니, 종종 아프다. 아니 아니, 사실은 꽤 자주 그리고 많이 아프다. 그저 참을 뿐이다. 우리의 병은 체력 관리를 소홀히 했다거나 오랜만에 친구들과 모인 자리가 너무 신이 나서 지나치게 퍼마신 그 밤에 오기도 하지만 사실 많은 부분 회사에서 비롯된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마음의 병은 학교와 회사를 그만두면 낫는다는데,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이야기다. 나도 아파서 회사를 관둔 적이 있고 회사를 그만 두자 급속히 회복된 경험이 있으니까. 급속한 회복은 무려 사직서 양식을 회사 서버에서 내려받는 순간부터 시작됐는데 사직서를 부장 앞에 내려놓을 때쯤엔 혈색까지 좋았다고 전해진다.

  

  회사를 다니면 없던 병이 생기지만 나이를 먹으면 얻는 병이 다양화된다. 노화는 우리 몸에 온갖 질병으로 좌판을 까는데 그 면면이 현란하다. 변비, 치질, 만성장염과 같은 배설계(옳은 구분이 아니다) 질환은 물론, 심혈관계 질환(담배와 술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과 호흡계(나이 들수록 계단을 오르기가 힘든 이유다), 관절의 가동 범위와 근육의 운동 능력 감소 등등...... 노화는 왜 하필 우리 몸에서 다양성을 추구하는가!

  

  회사원으로서 꿋꿋하게 살아오는 동안 얼굴과 신체 곳곳에 꽃피웠던 '노화'는 결국 장기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밥 빨리 먹기가 장기였던 어리석은 회사원은 어느 날 갑자기 위장에 핀 노화를 즈려 밟았다.




  위장도 늙는다

  

  요즘 밥에 대한 나의 자신감은 완전히 망가져가고 있다. 홍수가 쓸고 간 거리처럼 회생불능의 모습으로 무너졌다. 밥 앞에서 나는 전례 없이 무기력하고 의기소침하다. 일말의 자신감도 없는 눈빛으로 힐끗거릴 뿐이다. 무슨 거식증에 걸린 것은 아니다. 그저 소화 능력의 현저한 저하, 아니 퇴화를 경험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밥을 정말 빨리 먹는다. 변변찮은 군 생활 속에서 하나 사랑받았던 나의 장기는 밥 빨리 먹기였다. 꼭 밥을 흡입하는 것 같다고 선임 중 하나가 경탄과 조소를 반씩 담아 이야기해 준 적도 있다. 그때마다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다음엔 1초를 더 단축하겠다고 결심하곤 했다. 어리석기 그지없었던 안 일병.

  

  그렇다고 나의 밥 먹는 모습이 게걸스럽거나 한 것은 아니다. 나는 밥을 깨끗하게 먹고 깔끔하게 비운다. 먹고 난 흔적은 좀처럼 남기지 않는다. 밥을 보는 나의 눈은 100일 휴가를 나온 이병이 여자 친구를 볼 때처럼 탐욕이 가득하지만 그렇다고 걸신들린 것처럼 먹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밥 먹기는 조용하지만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밥에 대한 자신감이 느껴지시는지.


  

  속도만 빠른 것이 아니었다. 소화도 잘 시켰다. 이력서에 적었어야 할 나의 특기는 기획 및 PT 능력 따위가 아니고 뛰어난 소화력이다. 나의 위(胃)는 쉴 새 없이 들어오는 음식물을 별다른 수고스러움 없이 쉽게 소화해왔다. 비록 장(腸)은 일찍이부터 우유 한 모금에도 금방 탈이 나는 유약한 녀석이지만 위는 백전무패의 베테랑, 음식과의 전투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나는 까맣게 탄 구릿빛 피부와 성흔처럼 상처가 새겨진 위압적인 전사를 떠올리며 위에 음식을 밀어 넣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몇 번 씹지도 않고 넘기는 육해공의 육류와 씹기는커녕 끊어만 놓는 면발도 척척 소화를 시키는 자랑스러운 위(胃)였으므로.

    

  그런 나와 나의 위가 위기에 봉착한 것은 올 초 겨울이었다.

  


  그날 나는 사랑하는 그녀와 초밥집에 있었다. 회전 초밥집이었다. 물 위에 뜬 조잡하게 만든 나무 보트 위에는 주황색, 하늘색, 검은색의 사기그릇이 올려져 있었다. 초밥이 그릇에 담겨 속절없이 돌아갔다. 둘러앉은 사람들은 컨베이어 벨트에 실린 제품을 검수하는 생산직 직원들처럼 초밥 그릇을 하나씩 집고 조심스럽게 먹었다. 생선 살과 밥알이 제대로 뭉쳐져 있는지 살펴보기라도 하는 듯 꼼꼼하고 신중한 모습이었다. 허겁지겁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조급하게 먹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맞은편에는 사랑하는 그녀가 앉아 있고 가게 안을 도는 초밥 버전 포석정은 지구가 멸망하거나 마감 시간이 될 때까지 멈추지 않을 텐데도 나는 급했다. 밥 앞에서 항상 그래 왔듯 맛을 음미할 생각보다 빨리 먹어치우자는 생각이 앞섰다. 초와 소금을 쳐 새콤한 맛이 나는 밥과 회 뜬 생선 살 앞에서 나는 교만했다. 그리고 그날 태어나서 가장 심하게 체했다.

  


  시작은 복통이었다. 아랫배에서 둔중하게 울려 퍼지는 배탈의 예감. 아무래도 오늘 하루는 화장실에서 마감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로부터 한 시간 동안 비데가 과열될 정도로 화장실을 들락날락해야 했다. 이것으로 끝났다면 단순한 배탈로 끝났을 테지만 사실 사태는 그때부터 벼랑 끝 낭떠러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배탈이 시작되고 한 시간 뒤, 잠시 잠잠해진 배 속에 이제는 변기가 아니라 침대로 올라갈 수 있으려나 싶을 때쯤 구토를 시작했다. 구토는 계속해서 까이는 기획안처럼 최종에 최종을 바꿔달아 가며 계속됐는데 4차부터는 구토에 위액이 섞이기 시작했다. 이 날 목이 타는 듯한 시큼한 음료는 마신 적이 없으니 위액이 맞을 것이다.

  

  위로도 아래로도 나올 것이 없을 때부터 오한이 시작됐다. 1년 치의 몸살이 한 번에 몰아서 온 것처럼 온몸이 뜨거워졌고 아주 추웠다. 발연기 배우가 추위를 연기하는 것처럼 이가 딱딱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온몸에 드는 오한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서 몸을 둥글게 만 채로 끙끙거렸다. 결국 한숨도 자지 못한 채 날이 밝았고 회사에 나가지 못했다. 회사에 가지 않게 됐는데도 계속해서 아픈 것을 보면 정말 아픈 것이 맞는 모양이었다. 나의 위장은 이 날 처참히 패배했다.

  

  

  이후 세상이 바뀌었다. 비둘기는 더 이상 하늘을 날지 않고 가수는 음악을 시디로 내지 않으며 나는 밥을 빨리 먹지 않는다. 면도를 할 때 닿는 피부가 늙어가는 것을 보며 한숨 지었지만 정작 노화를 걱정해야 했던 것은 위장이었다. 나의 위는 더 이상 백전무패의 용맹한 전사도 고장률 제로의 전자동 소화 머신도 아니다. 많이 먹을 땐 더부룩하고 급하게 먹을 땐 체하는 소화 기관에 불과하다.

  

  면을 앞니로 끊어 넘기기 바빴던 나는 이제 면 가락을 어금니로 밀어 넣고 죽이 되도록 씹어 먹는다. 간혹 여전히 마음이 앞설 때면 그날 등이 굽도록 추워하던 밤을 기억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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