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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주 엄마 Aug 09. 2021

백일의 기적? 아니 백일의 기절

삼신상 차리기

저번 편에 이어서...


백일을 앞둔 아기가 첫 뒤집기 시도를 하다가 침대에서 떨어졌던 충격적인 그날, 귀한 손주의 사고 소식을 듣고 역시 충격을 받으신 친정 부모님이 헐레벌떡 쫓아오셨다.


50cm 높이에서 추락해서 후두부를 부딪혔지만 다행히 아기가 전과 다름 없이 미소도 짓고 잘 놀고 있어서 아기를 보고 부모님은 한 숨 돌리셨고, 아기의 머리를 만져 본 엄마는 "이 정도 혹은 괜찮아. 곧 나아질 거야."라고 하셨다.


'아기 낙상'이라고 검색해보니 블로그와 맘 카페 여러 곳에서 아기 낙상으로 응급실을 찾은 엄마들의 후기가 많았는데, 대부분의 경우에는 엑스레이나 CT를 촬영해도 별 문제가 없게 끝나고는 한 것 같았다. (아기 낙상 사고에서 임상적으로 중요한 뇌손상은 0.9%, 수술적 치료를 받은 아이들은 0.1%에 불과하다고 함.)


어떤 소아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육아블로그에서도 90cm 이하의 높이에서 떨어진 아기는 '저위험군'에 속해서 CT촬영을 권하지 않는다고 써 있었다.


참고로 낙상사에서 저위험군 아기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정상 의식(의식 소실 5초 미만)

2. 골절 없음

3. 90cm 이하에서 낙상

4. 평소와 행동이 비슷함.

5. 전두부(앞통수) 두개혈종(밖으로 튀어나온 말랑말랑한 혹)일 때


아기가 떨어진 높이도 그리 높지 않고, 아기가 떨어진 직후 의식을 잃는 일 없이 바로 울었고, 또 그 이후에도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아서 일단 병원에 가는 것을 보류하기로 했다. 부모님께서 방사능이 걱정되고 아이가 괜찮아 보이니 가지 말라고 말리신 것도 한 몫 했다.


어떤 블로그에서 아기를 데리고 응급실에 갔다가 코로나 시국에 오래 기다려서 정말 힘들게 CT 촬영을 했는데 아무런 이상이 없어서 아기만 고생을 너무 많이 시켜서 병원에 온 것을 후회한다고 쓴 글을 본 것도 작용했다.


병원에 가서 CT를 찍게 되었을 때 방사능에 노출되는 것도 걱정이 되고(CT 촬영의 경우 일반 엑스레이 촬영보다 100배 이상, 일상생활에서 노출되는 방사선량의 250배 정도의 방사능에 노출된다고 하고 이것은 방사능에 오염된 우유 1L를 마셨을 때의 8배, 오염된 시금치 1kg을 먹었을 때의 3배에 이른다고 한다. 어린 아기일수록 CT촬영은 더 좋지 않다.), 코로나가 심한 와중에 환자들 많은 병원에 가는 것도 걱정이었고, CT를 찍을 때 아기가 움직이지 않도록 잠자는 약인 진정제를 투여해야 한다고 하는데 아기들이 그걸 먹기 힘들어하고 토하기도 하고 몸에도 별로 좋지 않다고 해서 여러 가지 이유로 병원에 가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하지만 아기가 낙상한 그날 밤..


아기는 다른 날보다 짧게 짧게 자면서 금세 일어나서 울고 칭얼거렸고, 나와 남편은 그런 아기가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다음 날..


모유를 먹은 지 얼마 안 되어서 아기가 왈칵 모유를 토해냈다.


토하는 증상은 바로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해서 나와 남편은 허겁지겁 짐을 챙겨 집 근처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 한 명밖에 같이 가지 못한다고 해서 처음에는 남편이, 나중에는 내가 들어갔다.


코로나 때문에 병원 대기실에도 못 있고 혼자 차 안에서 남편을 기다리면서 나는 수없이 나 자신을 자책하고 원망했다.


'낙상', '아기 안전사고'와 관련된 인터넷의 글들을 읽고 또 읽으면서....


여기서 잠깐! 다시는 아기를 안 다치게 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 본 아기 안전사고 예방법.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사고로 죽는 아기들의 경우 원인 1위가 교통사고, 2위가 익사(5세 미만의 경우 대부분이 욕조에서 익사), 3위가 추락사라고 한다.




<두루두루 알고 있으면 좋은 안전사고 예방법(출처 : 보건복지부 발행 어린이 안전사고 예방 가이드)>


1. 길을 건너기 전에는 신호와 상관없이 무조건 일단 멈춰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아이에게 인식시키기

2. 비 오는 날에는 밝은 색의 옷을 입히고, 투명 우산을 쓰도록 하기

3. 차 탈 때 무조건 안전띠 매게 하기

4. 더운 여름철에 아주 잠깐이라도 아기를 절대 혼자 차 안에 두지 않기

5. 집 안 높은 곳에 깨지기 쉽거나 무거운 물건 두지 않기

6. 승하차 시 아기가 문에 끼이지 않도록 잘 살펴보기

7. 침대나 높은 곳에 아이 혼자 절대로 두지 않기. 침대를 사용할 경우 안전가드 설치는 필수. ★혹시 모를 충격에 대비해서 침대 밑에 충격완화 용 매트리스 깔기(이것만 내가 했더라도ㅠㅠㅠㅠ)

8. 모서리가 둥근 가구를 사용하거나 가구 모서리에 완충재 부착해 두기

9. 아기가 자주 노는 방과 욕실 바닥에 미끄럼 방지 매트 깔기

10. 만 1세가 되기 전까지는 천장을 바라보게 눕혀 재우고 혹시 엎어지지 않았는지 수시로 확인하기

11. 질식하지 않도록 너무 푹신하지 않은 침대를 사용하고 연령에 맞는 유아용 침대 사용하기

12. 아기가 서랍장을 열지 못하도록 서랍에 잠금장치 설치하기

13. 무거운 물건은 서랍의 낮은 칸에 둬서 서랍장이 쓰러지지 않게 하기

14. 쓰러지기 쉬운 가구, 책장, TV 등을 벽이나 다른 구조물에 고정시켜 아이가 매달려도 쓰러지지 않게 하기

15. 방문에 손 끼임 방지 보호대나 경첩 끼임 방지 장치 설치하기

16. 베란다에 아이가 딛고 올라갈 수 있는 물건 놓지 말기

17. 베란다를 놀이 장소로 삼지 않도록 평소에 주의를 단단히 주기

18. 크기가 작은 물건을 아기 주변에 두지 않기 (삼킴사고 방지)

19. 장난감 구매 시 KC마크 및 권장 연령대를 확인하기

20. 의약품과 생활화학제품 등은 아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별도로 보관하기

21. 칼, 가위 등 날카로운 물건은 덮개를 활용하여 아이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하기

22. 전기밥솥, 다리미, 난방 기구 등도 손 닿지 않는 곳에 두기

23. 고온 제품의 위험에 대해 지속적으로 말해주기

24. 목욕 후에는 욕조의 물을 빼고 욕조 주변에 아기가 딛고 들어갈 수 있는 발판을 제거하기

25. 욕실에 아이 혼자 절대 두지 않기

26. 줄이 없는 블라인드 사용하기(블라인드 끈 질식사고 방지) . 사용할 경우에는 줄이 어린이 손에 닿지 않게 높이 묶어두기

27. 자전거, 킥보드 등 스포츠 장비 이용 시 보호장구 필수로 착용하게 하기

28. 엘리베이터, 자동문, 에스칼레이터를 이용할 때 긴장하고 주의해서 아이가 완전히 탑승했는지 확인하고 문에 끼지 않도록 조심하기


써놓고 보니 많기도 많다....


아이를 기르는 일은 늘 긴장 속에서, 무사하기를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겸허하고 겸손하게 키워야 하는 것 같다 ㅠㅠ  


한참 후에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방금 엑스레이 찍었는데.... 생각보다 아기 머리뼈에 금이 많이 갔대."


순간 억장이 와르르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얼마나?"


"머리 전체를 1로 보면 1/3 정도 크기가 될 만큼 크게 금이 갔대. 그래서 의사가 이 정도로 두개골 골절이 되었으면 뇌출혈이 생겼을 가능성도 높으니 CT를 꼭 찍어야 한다네?"


남편의 말을 들으면서 이 믿고 싶지 않은 사실에 몸서리를 쳤다.


"내가 의사선생님께 CT 방사능 걱정되어서 안 찍으면 안 되냐고 했더니, 뇌출혈이 있을 때 수술해야 하는 케이스인데 놓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고 해서..(사망이요..?? 예..?? 남편 입에서 그 말을 듣자마자 또 한번 머리가 정지되는 느낌이었다) CT는 꼭 찍어야 할 것 같아."


"알았어.. CT 찍자고 해.:"


아기가 CT를 찍으러 들어간 동안 나는 CT 결과가 좋지 않을까봐 너무 걱정이 되었다.


검색해 보니 낙상으로 아기가 뇌출혈이 생겼을 경우에는 문제가 더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 뇌출혈을 멈추기 위해 그 작은 아기에게 수술을 해야만하는 경우도 있었고, 심한 경우 아주 낮은 확률이지만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고 했다.


CT를 찍고 나온 아기는 잠들어 있었다.


"아기가 안 움직이게 옆에서 머리를 잡는데, 얼마나 울고불고 하는지.. 불쌍해서 못봐주겠더라. 지금은 울다가 지쳐서 잠들었어."


남편의 말에 나 역시 복주가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남편과 보호자 교대를 하고 CT 찍고 나온 복주를 안고 CT 결과를 기다리면서 병원 복도의 긴 의자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CT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


뇌출혈이 있다고 하면 어떡하지..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하면 어떡하지...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면 어떡하지... 수술해도 결과가 안 좋으면 어떡하지...


안 좋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나는 최악의 상황에 대한 상상을 멈출 수 없어서 정신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삼신할머니, 도와주세요... 제발 CT결과 아무 이상 없게 해주세요..'



불현듯 어제 있었던 시어머니와의 대화가 생각났다.


"이제 100일 다가오는데, 삼신상 차릴거지?"


"(떨떠름..) 네..."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동 트기 전에 차려야 한다. 내가 도라지, 고사리 같은 나물 재료 좀 사다줄까?"


"아녜요, 어머님. 제가 반찬가게에서 알아서 사올게요."


"반찬가게라니!! 삼신상은 엄마가 다 직접 만들어야 해. 그게 다 정성인 거지."


"네..."


"잔소리라고 생각마라. 다 우리 아기 위한 건데."


시어머니와의 대화 후 스트레스를 받아 하며 남편한테 "으아 ㅜㅜ 난 안 믿는다고 ㅠㅠ 안 믿는다고 ㅠㅠ 근데 자꾸 왜 차리라고 하신대.."라면서 투덜댔고, 남편은 "내가 알아서 반찬가게에서 사와서 세팅할 테니까 걱정마."라고 했는데,


그 대화가 있자마자 바로 아기가 크게 다치고나니 '그런 거 안 믿는다'라고 말한 나의 오만함에 삼신할머니께서 노하신 건 아닌지 갑자기 두려움에 벌벌 떨게 된 나였다.


'삼신 할머니, 안 믿는다고 했던 거 죄송해요 ㅠㅠ 제가 삼신상도 정성껏 차려 드릴게요. 제발 우리 복주 좀 살려주세요 ㅠㅠㅠㅠ'


속으로 삼신 할머니를 여러 번 부르면서 잠든 아기를 내려다 보았다.


아직도 혹이 가라 앉지 않은 우리 아기..


이 작은 아기의 몸에 그런 큰 상처를 내다니, 정말이지 엄마 자격 실격이다.


이 여리고 작고 부서지기 쉬운 몸으로 바닥에 떨어졌으니, 그래서 뼈까지 부러졌으니.. 우리 아기가 얼마나 아팠을꼬.



나의 가슴은 천갈래 만갈래 갈기갈기 찢어졌다.



얼마 후 담당 의사가 나왔다.


레지던트로 보이는 젊은 의사는 한참을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어쩌다 아기가 떨어진 거예요? 개월수로 봐서 아직 뒤집기 할 때는 아닌데.."


"그저께 뒤집기를 처음 시작했고, 어저께 아기 침대에 눕히자마자 갑자기 몸을 뒤집더니 그대로 떨어져 버렸어요."


"첫 뒤집기에 바로 떨어져 버렸군요. 일단 아기는 지금 두개골에 금은 많이 가 있는 상태인데(사실 더 전문적인 용어로 어디부터 어디까지 금이 갔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을 못하겠다) CT 소견 상 뇌출혈은 없어 보여요. 그래도 지연 출혈이 되는 경우도 있어서 뇌출혈이 없다고 확정지을 수는 없어요. 이틀 후에 다시 오셔서 경과를 보셔야 돼요. 그래도 사고 직후가 아닌 24시간 이후에 오셨는데 여태까지 뇌출혈이 없었던 거니까 사고 직후에 오셨던 것보다는 뇌출혈의 지연출혈 가능성이 적어요."


"그럼 저는 아기에게 이제 뭘 어떻게 해줘야 하나요?"


"딱히 해줄 수 있는 건 없고요, 그냥 머리에 더 이상 충격이 가해지지 않게 조심해 주세요. 지금 이 정도로 입원을 하라고 말씀드리긴 어렵고요, 이틀 후에 다시 오세요."


 

확실히 괜찮은 것도, 그렇다고 괜찮지 않은 것도 아닌 어중간한 결과를 듣고 헛헛한 마음으로 나와 남편은 돌아서야 했다.


그렇게 다친 아기를 보고 있자니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아기의 이상행동  하나하나가 아주 신경 쓰이고 걱정되기 짝이 없었다.


아기는 품에 안겨 잘 자다가도 뒷통수가 베개에 닿기만 하면 서럽게 울어댔는데 평소에도 가끔 그랬지만 이날은 더욱 심했다.


아무래도 뒷통수를 다쳤기 때문에 무언가가 살짝 닿기만 해도 아픈 게 아닐까 싶었다.


뒷통수가 베개에 닿으면 참을 수가 없는지 바로 뒤집기를 시도했다. 마치 자기 머리에 아무것도 안 닿게 만드려는 것 같았다.


그렇게 뒤집어지고서는 또 엎드린 자세가 불편해서 바로 "으앙~!"



이날 아기를 재우는 것은  평소의 몇 배의 노력이 들어갔다.


우는 아기를 안고 어르고 달래면서 이 모든 것은 내가 원죄인 것을 누구를 탓하랴 생각했다.


엄마가 몸이 가루가 되더라도 안아 줄게.. 엄마가 아무리 팔이 아프고 어깨가 아파도 너만큼 아프겠니.. 미안해 아가야, 미안해 아가야.. 정말 미안해..  미안해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아기를 안고 재웠다.



아기가 잠들고나서 나도 기절하듯이 잠이 들었다.


그리고 네 시간 후..  AM 1시 30분.


아기가 배고파서 일어났고 나는 수유를 했다.      


아기가 드디어 백일이 되는 날이었다.



나는 병원에서 삼신할머니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우리 복주 다시는 안 다치고 안 아프게 해달라고 빌기 위해 그냥 대충 흉내만 내고 넘어가려고 했던 삼신상을 진심을 다해 차리기 시작했다.


아기에게 밤수를 끝내고 새벽 두 시부터 삼신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삼신상 차리는 방법- 시간을 줄이기 위한 최단시간 요리를 위한 순서를 정리해 보았다>


준비한 나물은 콩나물, 고사리, 시금치

1. 미역과 고사리를 씻어서 물에 불린다. (미역은 물에 닿기 전에 잘게 부숴 뜨린다. 가위나 칼 사용 X. 가위나 칼 사용은 명줄을 자른다는 의미가 있어서 부정을 탄다고 한다.)


2. 하얀 쌀 3인분 정도를 씻어서 밥솥에 올린다. (삼신상에 올리는 음식은 직계가족이 그날 안에 다 먹어야 하기 때문에 너무 많지 않게 준비한다. 밥을 3인분 하라는 이유는 환인, 환웅, 단군 세 사람 '삼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 '삼신 할머니'인 줄 알았는데, 이 설명 보고 어? 했다..)


3. 나물 데칠 소량의 물 하나와 미역국 끓일 물(남편과 먹을 2인분 정도의 물로 준비) 하나, 두 개의 냄비를 끓인다.


4. 시금치와 콩나물(또는 도라지)을  깨끗이 씻는다.


5. 시금치를 10초 데치고 난 후 건지고, 그 물에 다시 콩나물을 4분 동안 데친다.


6. 데친 나물들은 체에 받아서 물기를 빼고 그릇에 넣어 참기름과 국간장을 넣어서 조물조물 해준다. (이때 간을 보면 안 되고 후추나 소금을 사용해도 안 된다. 오직 참기름과 간장만 사용해야 한다.)

7.  물에 10분 정도 불려 놓은 고사리를 건져서 후라이팬에 들기름 또는 참기름을 두르고 달달 볶는다. 국간장도 넣으면서 볶는다. (역시 간은 보지 않는다.)

8. 그동안 불려 놓은 미역을 건져서 후라이팬에 들기름 또는 참기름을 두르고 달달 볶는다.


9. 볶은 미역을 끓는 물에 넣고, 국간장을 넣어 간을 맞춘다.  


10. 정화수를 만들기 위해 물을 끓인 후 식힌다.


11. 밥 세 공기, 미역국 세 공기를 퍼서 첫째 줄에 놓고 둘째 줄에는 정화수 세 그릇, 맨 윗줄에는 나물 세 개를 놓는다.


12. 동이 트기 전에(밤 열 두시 이후~동 트기 전이면 언제든지 괜찮다고 함) 이 모든 것을 세팅하고 제삿상을 동쪽을 향해 둔다.


13. 동쪽 창문 또는 현관문을 연다.


삼신상 아래 역방쿠에 누워있는 복주

14. 아기를 데려와서 제사상 아래쪽에 둔다.


15. 남편과 함께 축문을 읽는다. (축문 내용 : 젖 잘먹고 흥하게 점지해서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 긴 명은 서리 담고 짧은 명은 이어대서 수명 장수하게 점지하고 장마 때 물 붇듯이 초생달에 달 붇듯이 아무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게 해주십시오. (아기 발을 잡으며) 우리 OO 이 발 크게 해주세요.)


16. 남편과 절 두 번을 올린다.


17. 아기를 10분 동안 혼자 둔다.(이때 삼신이 제삿상을 먹으면서 아기를 돌보아 준다고 한다.)




뭔 지켜야 할 거는 이리도 많고 복잡한지...


그래도 이왕 하기로 했으니 정말 표준 매뉴얼대로 열심히 준비했다.




그리고 드디어 삼신상 완성!!



그런데 띠로리...


삼신상 차리기를 설명하는 블로그에서 맨 마지막 줄에 써 있던 말..


"이 삼신상은 한 번 차리기 시작했으면 아기가 열 살이 되기 전까지 매년 생일날 차려줘야 합니다."


아니.... 장난하냐고 ㅠㅠㅠ 열 살..? 이 짓을 열 살 때까지 하라고...?


근데 무슨 영국에서 온 편지도 아니고, 일단 알고 나니까 또 찝찝해서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운 이 느낌...끄응....



그동안 한 번도 나물 요리를 해 본 적이 없었고 친정 어머니가 해주시는 나물요리만 받아서 먹었기 때문에 이렇게 원재료를 사서 요리를 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커다란 도전이었다. (뭐든지 처음 마음 먹고 하는 게 어렵다.)


막상 해보니 어렵지는 않았지만, 요리의 순서가 효율적이지 못했고 하나하나 블로그와 유튜브를 찾아 보면서 하다보니 시간이 오래 걸려서 모든 상을 다 차리고 나니 새벽 네 시가 되어 있었다.


삼신상을 차리면서 앞으로는 아기를 안전하게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수만번 다짐했다.


다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초였지만 다치고 난 후 내가 마음고생하고 아기가 아파서 고생한 시간은 이루말할 수 없이 길었다.


아마도 아이가 열 살이 될 때까지 매년 삼신상을 차리라는 것은 아이가 열 살 정도가 되기 전까지는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기의 안전을 위해 각별히 주의하면서 살라는 거겠지...


어찌 보면 이 삼신상을 차리는 시간은 내게 있어서 '아기의 안전과 건강의 중요성'에 대해서 되새기고 되새기면서 각성해 나가는 시간과도 같았다.


그리고 삼신상을 차리면서 그러한 '각성의 시간'을 가지라는 의미에서 이러한 미신이 계속해서 전래되어 왔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러한 각성을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아이의 사고 유발율에도 어떤 유의미한 차이를 가지고 오게 되었고, 그래서 더욱 미신에 대한 믿음을 강화했던 것이 아닐까..)


 

아직 자고 있는 남편을 조금 더 자게 두기 위해 기다리면서 집안일을 시작했다. (자기가 차릴테니 걱정 말라던 남편은, 병원 갔다오고 하루종일 아픈 아기 때문에 긴장했는지 완전히 뻗어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기가 다치면서 정신이 없어서 정리하지 못했던 집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빨래를 개고, 범퍼 침대에 커버를 씌우고 범퍼끼리 서로 연결해서 침대를 완성했다. (진작에 좀 이렇게 만들어서 침대를 옮겨줬어야 했는데...ㅜㅜ)



(완성한 범퍼 침대..)


새벽 다섯 시..


동이 트기 전에 부랴부랴 아기를 데리고 나와 아기를 삼신상 앞 역방쿠에 앉히고 남편과 함께 축문을 읽고 절을 올렸다. 아기는 잠이 깨서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우리가 제사를 올리는 것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절을 올린 후 아기를 거실에 혼자 두고 안방에 들어가 10분을 기다렸다.


블로그에서 10분 동안 조용하던 아기가 딱 10분이 되던 시간에 갑자기 칭얼대기 시작해서 신기했다는 글을 읽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우리 아기 역시 잠이 깨어 있는 상태였는데도 10분 내내 칭얼대지 않고 조용하게 있다가 스톱와치가 10분을 가리키는 딱 그시점에서부터 칭얼대기 시작했다.


거실에 나와 아기를 껴 안으며 말했다.


"우리 복주, 삼신 할머니가 잘 놀아주셨어요? 할머니가 뭐래요? 우리 복주 지켜준다지요? 다시는 우리 복주 안 아프게 해주신다지요?"


말하는데 왜 이렇게 눈물은 나는지...


그렇게 남편과 함께 눈물에 젖은 삼신상을 먹는데, 동이 터오고 있었다.


삼신상을 차리고 난 후 , 나는 힘들어서 완전히 기절하듯 뻗어버렸고 그렇게 '백일의 기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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