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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Jul 05. 2023

규칙과 자유 그 사이 어딘가

삿구루 하타요가 5일 차

5일 차 과정이 끝났다. 관절 인대를 부드럽게 풀어내는 우파요가와 몸 안의 불꽃을 살리는 수리야크리야를 한 번에 연결했다.


어제와 오늘의 몸이 매우 달라서 놀랐다. 나비자세(받다코나아사나)에서 골반이 더 이상 당기지 않았다. 골반이 유연한 편임에도 2분 동안 팔랑팔랑 흔드는 나비자세를 하는 건 정말, 엉덩 근육이 터질 듯 당긴다.  


언제나 어려워했던 전사자세 3(비라바드라아사나 3)을 성공했다! 햄스트링이 유연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한 다리로 버티며 숙이지를 못했다. 엉덩이부터 연결된 등근육과 어깨 근육을 제대로 못써서겠지.


요가가 이렇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이 다르다. 어제까지만 해도 중심을 몇 번 잃었기에 아무런 기대가 없었다. 아무런 기대가 없어서일까? 내가 생각해도 너무 안정적으로 내 몸을 T 형태로 숙이고 버틸 수 있었다.


매일 요가를 하면 몸이 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변화를 느끼게 될 줄이야. 5일 차 밖에 안 됐는데...! 핵심은 '매일' '같은 동작'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배움의 기반이 반복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여태까진 머리로만 알았던 것 같다. 똑같은 동작을 하니 화가 온전히 느껴진다. 놀랍다. 


심지어 내 생각의 변화 또한 그렇다. 바로 어제만 하더라도 나는 '전통'이 주는 무게감에 대해 글을 적었다. 지켜야 하는 규칙이 많고, 그 안에서 얼마나 갑갑함을 느끼지 이야기했는데. 오늘은 아이러니하게 자유로움을 느꼈다.


나는 이 과정에 나를 온전히 내맡기지 못했다. 왜 꼭 이렇게만 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왜 또 저렇게는 하면 안 되는지 납득하지 못했다.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요가 수업은 이래야 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선생님께서는 이런 나를 이해하신다고 하셨다. 자신 또한 머리로 모든 걸 배우고자 했던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아마 내가 21일 동안 경험할 변화는 몸의 변화도 있겠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습관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처음엔 모든 게 규칙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계속 수련하다 보면 이게 삶의 방식이 되어 있어요. 이렇게 안 하기가 힘들어져요. 바로 내 몸이 좋아지니까. 빼먹으면 힘들어지니까.

쉽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는 많은 사람들의 삶과는 매우 다르게 살 수 있어요. 매우 편안해지죠. 아무런 저항 없이 삶이 흘러갈 수 있어요."


규칙이 내 삶의 기둥이 되어 단단하게 받쳐주는 시기가 올까? 어제 느꼈던 갑갑함은 내 틀을 깨고 나오기 위함이었을까? 오늘의 자유로움은 나에게 어떤 힌트를 주는 걸까?


분명한 건 이젠 내가 먼저 지키고 싶어졌다. 그게 전통이든, 규칙이든, 믿음이든.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느껴보고 싶다. 찬물 샤워를 더 자주 하고 싶다. 몸이 변화를 기억하는 최소한의 시간인 40일 동안 이 요가를 계속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90일의 만달라도 채우고 싶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역시나 함이 없는 함, 무위의 요가로 만나고 싶다. 똑 부러지는 답이 아니라 갑갑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유롭게 느끼는 것임을 기억하고 싶다. 과정을 믿고, 마음껏 뛰어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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