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이라는 이름의 불편함
삿구루 하타요가 4일차
수리야크리야의 21시퀀스를 연결해서 했다. 기존에 알고 있던 전통하타와 비슷하면서도 매우 다르다. 일단 양발을 나란히 붙이는 것이 아니라 발레하듯 발을 45도로 만들어서 시작한다. 한 동작에서 머무는 호흡은 3,5,7로 유지한다. 미니코브라 부장가에서 코로 아주 빠른 호흡을 한다. 복부가 바닥에 닿아 있는 상황에서 빠르게 숨을 쉬는 건 그렇게 쉽지 않다.
크리야 명상을 할 때 6번 차크라에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집중할 수록 그 부분에 무게감 있는 무언가, 기류같은 흐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거나 원의 형태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21일 동안 매일 한다면 어떤 변화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점도 있다. 규칙이 너무 빡빡하다. 그게 사실 나랑 안맞다. 답답하고 불편함이 올라온다. 중간에 화장실을 가면 안되거나, 모든 동작에 작은 부분까지도 따라야 하는 방식이 정해져있다. 물론 이유가 다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화장실을 감으로써 그 시간까지 쌓었던 에너지가 흘러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고, 다른 신체를 지닌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유익함을 얻으려면 정해진 방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방법과 전통에 나를 계속 맞춰야 하는 느낌이 갑갑하게 한다. 핸드아웃을 미리 주지 않는 것, 필기를 하지 못하는 것. 아주 사소하지만 나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곳의 공간 또한 isha 하타를 정식적으로 수료한 선생님만 이용 및 대여가 가능하다고 한다.
아마 내 안에 가지고 있는 '전통'에 대한 거부감이 때문이다. 학교를 떠올리게 하고, 회사를 떠올리게 한다. '왜 이건 이렇게 해야 하고, 왜 저건 저렇게 하면 안되는 것인가?' 이해할 순 없지만, 왜인지도 모르지만 그냥 하라고 하니까 따라하는 그 분위기가 싫다.
'나를 이해시켜라, 설득시키면 할게'라는 태도가 아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듯, 나는 이해하고 싶다. 그게 내가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게 선생 일을 하고, 코칭으로 이어지게 했겠지만. 여하튼 우리가 무언가를 '왜'하는지 알면, 그게 좋다는 것을 이해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고 싶어지지 않는가?
순간 글을 쓰면서 드는 생각은 이 또한 '무위의 요가'를 하지 못하는 내 모습의 단면인가 싶기도 하다. 몸이 아니라 머리로 다 이해하고 싶은 욕망.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싶어하는 욕망. 느끼지 못하는 몸과 내가 기대한 대로 수업이 풀리길 바라는 마음.
이건 과연 '전통'이라 불편한 것일까? '내 방식'에서 벗어난 것이라 불편한 것일까? '나'를 고집하는 것 또한 또 다른 나만의 전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