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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May 26. 2022

잘하지는 못해도 좋아하니까

갑자기 요가 강사?

아, 요가를 원래 잘했었어??

내가 발리에 요가 자격증을 위해 간다고 하면 다들 이 질문을 한다. 내가 요가 선생님이 되고 싶을 정도로 요가를 좋아하는지 몰랐다는 말과 함께. 물론 나도 내가 이 정도로 요가에 진심인지는 몰랐다. 어렸을 때부터 요가가 흥미롭긴 했었고, 힘들 때마다 나를 붙잡아 준 게 요가이긴 했지만 그래도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엔 용기가 필요했다.

선생님, 무게감이 느껴지는 말이다. 매우 '잘'해야 할 것 같고, 전문적이어야 할 것 같고, 뚜렷한 철학도 있어야 할 것 같고, 무엇보다도 이뻐야 할 것 같다. 아직까지도 발리를 다녀온다고 해서 '이제부터 평생 요가를 가르칠 거야!'라는 마음이 생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요가를 좋아한다.


21살, 나는 만성 근육통을 달고 살았다.

조금만 무거운 가방을 들어도 어깨가 바로 뭉쳤다. 아무리 쇼퍼백이 유행하더라도, 체인 크로스백이 귀여워도 나는 언제나 백팩이었다. 단화나 구두도 못 신었다. 종아리도 종아리지만 발목이 욱신거렸다. 발바닥은 언제나 쑤셨다. 그 시절 내 가방 속 머스트 해브 아이템은 유칼립투스 향이 나는 마사지 롤온과 괄사였다.


학교 스포츠 센터에서 요가를 처음 시작했다.

그만 아프고 싶었다. 피곤한 날은 늘어갔고, 체력은 떨어지고 정말 운동을 안 하면 몸이 썩을 것 같아서 뭐라도 시작해야 했다. 헬스로 시작해 봤지만 역시나 재미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약속을 지켜야 하는 '수업'이 좋았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운동을 꾸준히 하기가 쉽지가 않으니까! 수영은 춥고, 줌바는 부담스럽게 역동적이니까 요가를 선택했다.


요가 배운 적 있어?  

요가를 다닌 지 일주일 됐을 때 선생님께 들은 말이다. 처음 하는데 자세를 잘 잡는다고 말씀해주셨다. 그 후로도 선생님은 나를 주의 깊게 봐주셨고, 특정 자세를 보여줘야 할 때마다 나를 모델로 쓰셨다. 그게 힘이 되었던 것 같다. 그 인정이 좋았다. 그렇게 1년 반 동안 나는 아침 6시 30분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갔다. 오전 일찍 요가를 하고 학교 수업을 듣는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완전한 휴식'을 경험했다.

나는 언제나 긴장을 하며 온 몸에 힘을 주고 살았다. '힘을 빼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으니 쉬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 바닥에 누워 내 몸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디가 어떻게 비뚤어졌는지, 다리 길이는 또 얼마나 다른지 다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내 몸의 근육을 쓸 수 있게 되었고 점점 만성 근육통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지금, 그리고 여기'에 존재할 수 있었다.

그때의 나는 참 정신이 없었다. 수업도 많았고, 아르바이트도 많았고, 미래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의욕은 넘치고 욕심만큼 해내고 싶지만 능력은 모자라니 잠은 늘 부족했다. 요가를 하는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너무 좋았다. 머리가 드디어 텅 비는 느낌.


"고통을 피하지 말고 마주하세요. 그 자리에 계속 머무세요.
호흡을 하며 가만히 지켜보면 고통이 사그라들어요.

힘들다고 빨리 올라오고 싶다면 그게 내 태도입니다.
내 삶에서도 고통을 마주했을 때, 피하고 싶어 하는 내 마음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멋들어지게 요가 용어를 말할 줄 아는 것도 아니고 오랫동안 수련을 한 것도 아니지만 나는 요가를 통해 내 몸을 이해하고, 지금을 살며, 내 삶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웠다. 그렇게 힘들 때마다 나는 언제나 요가를 찾았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경험을 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좋아한다, 요가를.
그거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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