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때

굿바이, 요요

by 밍이


나는 지금 동네 카페 카운터 앞에 서 있다. 방금 카페 라떼와 피칸파이를 테이크 아웃으로 주문한 참이다. 코 끝에 느껴지는 원두 향, 커피를 내리고 우유를 스팀기에 데우는 사장님의 뒷모습에서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


이상한 일이었다. 쉬고 싶을 때에는 '커피와 디저트' 대신 '차와 체리'를 선택하게 된 지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거나 디저트를 먹는 날은 그것을 꼭 원하는 날로 한정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예전으로 되돌아갔다. 낮에 아이를 학원 셔틀에 태워 보내고 나면 한 숨 돌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고, 그럴 때마다 곧장 동네 카페로 향했다.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아니면서, 매일같이 쿠폰 도장을 찍어가며 카페 라떼를 마시고, 쇼케이스에 있는 온갖 디저트들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마치 실컷 게임 캐릭터를 키워놓고 저장버튼을 누르지 않은 것처럼, 나는 나쁜 습관으로 원상 복귀했다.


허무했다. 왜 이렇게 된 거지. 변하고 싶어서 그렇게 많은 방법들을 연구하고, 실천하고, 노력했는데. 역시 나쁜 습관은 끊을 수 없는 건가. 브런치에 '요요를 극복하는 법'이라는 주제로 연재를 하고 있던 중이었지만 그것도 중단했다. 내가 지키지도 못하는 것을 남에게 설파할 수는 없잖아.


매일같이 마음속에 작은 갈등을 가지고 카페에 드나들던 중이었다. 여느 때처럼 나를 위해 커피를 내리는 사장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불현듯 깨달았다. 지금 내 욕구는 쉬고 싶은 게 아니구나. 돌봄 받고 싶은 거였어.


아이의 방학을 맞이하여 가능한 재택근무와 연가를 끌어모아 최대한 집에 있는 중이었다. 아이의 삼시세끼를 차리고, 학원 스케줄을 챙기고, 그 사이에 직장일과 집안일을 하느라 녹초가 되어 있었다.


특히 입이 짧은 아이는 애써 음식을 만들어주어도 잘 먹지 않았고, 코로나 때문에 외식도 어려웠다. 배달음식을 시켜도 뒤처리는 내 몫이었다. 직장, 가사, 육아를 혼자 전담하느라 고군분투하던 나는 저도 모르게 '누가 나 좀 돌봐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나 보다.


나도 차려진 밥상 받고 싶어. 나도 남이 만들어 준 음식 먹고 싶어. 그 욕구를, 나를 위해 커피를 내리는 사장님의 뒷모습을 보는 것으로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편안해졌다. 그래, 살 좀 찌면 어때. 받아들이자. 바지가 끼면 한 사이즈 크게 사면 되고, 군살 좀 있어도 수영복은 입을 수 있잖아. 이렇게 애쓰며 살고 있는데, 살찐다고 나를 나무라지 말자.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photo by nathan-dumlao on unsplash


불현듯 '습관의 힘(찰스 두히그)'에서 본 구절이 생각났다. 나쁜 습관은 끊었다고 생각해도 언젠가 다시 찾아오는 때가 있다지. 그때 나의 힘이 아니라, '나를 뛰어넘는 절대자'를 의지하는 사람은 다시 극복할 수 있다고 했어.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제 힘으로는 안 되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으시겠지요. 그냥 맡기렵니다. 저는 저를 받아들이며 편안하게 살게요.


그러고 나니 예전에 본'이제 몸을 챙깁니다(문요한)'라는 책이 생각났다.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하셨지. 그때부터 인위적인 노력은 중단하고, 그저 편안하게 몸을 느껴보기로 했다. 먹고 싶으면 먹고, 안 먹고 싶으면 안 먹었다. 이때 내가 세운 좋은 습관 원칙들을 다시 기억했다. 그 원칙들은 내가 진짜 먹고 싶은 건 허용하고, 안 먹고 싶은데 자꾸 먹게 되는 것을 교정하는 것이었기에 내 몸의 욕구와 맞아떨어졌다.


나는 가급적 습관 원칙들을 지키려고 애쓰되 너무 강박적으로 신경 쓰지는 않았다. 몸의 소리를 듣는 것도 생각나면 하고, 안 나면 안 했다. 다이어트를 성공한 이후 아침 체중 재는 것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는데, 체중계가 고장 났다는 핑계로 그것도 그만두었다. 운동도 하고 싶은 날은 하고, 안 하고 싶은 날은 안 했다. 그저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흘러가게 두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그 상태로 몇 달 동안 온갖 연휴와 여름휴가, 추석을 보낸 뒤 얼마 전에 새로 체중계를 구입해서 체중을 쟀다. 놀랍게도 예전과 별 차이 없었다. 다이어트 성공하고 기쁘게 입었던 옷들도 여전히 잘 맞는다. 다이어트에 성공한지 4년, 체중을 신경쓰지 않게 된지 6개월만의 일이다. 이제 이만하면 요요와 굿바이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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