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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Mar 03. 2021

출근길의 커피 한 잔

즐기면서 일하는 법


매일 아침 일하러 가기 싫었다. 출근해서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부팅할 때면 오늘도 긴장되는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싶었다.


내 직업은 '전공 두 번 바꾸고 행복합니다'에서 쓴 것처럼, 나에게는 힘들여 얻은 완벽한 연인이었다. 그런데도 일하는 것은 즐겁지 않았다. 과중한 업무량, 정신없이 돌아가는 스케줄에 '잘해야 돼. 실수하면 안 돼.'라는 중압감이 주는 무게가 더해졌기 때문이었다.


출근길을 좀 더 즐겁게 만들어보고자 매일 커피를 사 가기 시작했다. 스타벅스 카운터에서 생크림이 잔뜩 올려진 토피넛 라떼나 달달한 캐러멜 마끼아또를 받아 들고 한 모금 들이키면, 그 쌉싸름하면서 달콤한 기운에 잠시 기분이 좋아졌다.


생크림이 꺼질세라 사무실까지 조심조심, 그러면서도 재빠르게 들고 가서 컴퓨터가 부팅되는 동안 조금씩 마시면서 기운을 내보려고 애썼다. 마끼아또가 카페 라떼로 바뀌고, 그게 또 더치커피로 바뀌었어도, 카페인은 여전히 아침 시간의 동반자였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일에 쫓겨서 살고 싶진 않은데...'라고 생각할 무렵, '이너 게임'이라는 책을 읽다가 아래와 같은 문장을 만났다.


'일하는 것이 더 이상 즐겁지 않다'는 기분이 드는 것도 휴식 STOP의 신호다.
다음 프로젝트가 좋은 기회로 생각되기보다 짐으로 느껴질 때,
'꼭 해야 한다'가 '하고 싶다'보다 강할 때도 마찬가지다.
즐기는 것은 인간의 권리며 기회다.
목적을 의식하며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상태에서 일을 하는 것이다.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여태 일이란, 하기 싫어도 꾹 참고 꾸역꾸역 해내야 하는 것, 최대한 몸을 굴려서 최대한 많은 성과를 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즐기는 것은 인간의 권리며 기회라니. 즐겁지 않으면 휴식해야 한다니. 


한 번 실험해 보기로 했다. 마침 단축근무 중이었다. 혹여나 일이 밀리게 되면, 잠시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온 근무처럼 시간을 내어 보충할 수 있었다. 일단은 매일 아침 나를 괴롭히던 '오늘까지 이거 이거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내려놓았다. 일하다가 즐겁지 않으면 멈췄다. 멈춰서 왜 즐겁지 않은지 생각해보았다.


놀랍게도 '빨리 해야 해. 많이 해야 해.'라는 압박에 시달리면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 결과에 지장 없는 부분은 대충 처리했고, 그것이 은연중에 마음속에 불편한 느낌으로 쌓여갔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기껏 열심히 달렸지만, 일을 '성취'하는 게 아니라 그저 '처리'하고 있으니 재미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내 마음에 들 만큼 충실히' 일하는 연습을 해보았다. 일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매사 죽어라 덤빌 수는 없으니, 그 기준을 객관적인 성취도, 그리고 내 양심으로 잡았다. 내가 만족할 만큼 일하고 나면 결과가 어떻든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일이 재미있어졌다. 재미있으니 집중도가 올라가고, 그러다 보니 업무도 빨리 끝났다. 모니터 한 번 보고, 스마트폰 한 번 보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을 책상에 쳐박아두고 일에만 집중한 다음 빨리 퇴근하는 삶.


그러면서 언젠가부터 출근길의 카페인이 필요 없게 되었다. 애초에 나는 카페인이 잘 받지 않는 체질이었다. 남들이 잠 깨려고, 정신 차리려고 먹는다는 커피를 내가 마시면 오히려 머리가 아프고 둔탁해졌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직장인이라면 모닝커피 한 잔 빨아줘야 되는 거 아니겠어?' 하면서 조금이라도 일에서 도피하고자, 그것을 '커피 한 잔의 여유'로 포장하고자 마셔댔던 것이다.  


일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꼭 해내야 해'라는 마음으로 일할 때와 '즐겁지 않으면 멈춘다'는 마음으로 일할 때, 결과적으로 업무량의 차이는 별로 없었다. 나의 삶의 질은 확연히 달라졌는데 말이다. 예전 같으면 브런치에서 한가하게 글 쓸 여유 따위 누릴 수도 없었겠지. 아침부터 밤까지 일만 생각하느라. 그게 생산성을 올려주지도 않을뿐더러 나를 번 아웃시키고, 가족들과도 멀어지게 하는데도.


아직까지 단축근무 중이라, 이 실험은 끝나지 않았다. 온근무로 복귀해서 두 배로 정신없어진 일상에서도 잘 유지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과로 보면 가능할 것이라는 자신이 생긴다. 내년 이맘때 보고 드리겠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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