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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Apr 17. 2021

일상이라는 예술

사방이 온통 환했다. 정오의 태양이 온 세상 구석구석에 따스한 햇살을 아낌없이 퍼부어주고 있었다. 노오란 빛의 파도가 마치 손을 뻗으면 잡힐 것처럼 공기 중에서 넘실거리면서 평온하게 그녀를 감쌌다.


동공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에 압도되어 그녀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떴다. 신기한 일이네. 햇살은 어제도, 그제도 동일하게 존재했을 텐데 꼭 오늘 처음 발견한 기분이야. 장기간의 감옥 생활을 마치고 석방된 모범수의 눈에도 세상이 이렇게 보이려나.


매일 낮 시간 동안 건물 안에 갇혀서 LED 형광등 불빛만 쪼이며 살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아쉬워졌다. 이토록 풍성하고 따사로우며, 게다가 공짜인 햇빛을 그동안 누리지 못했다니.


그다음에 눈에 들어온 것은 초록빛이었다. 나무가, 풀이 초록색이라는 사실은 아마도 갓난아이일 때부터 알았을 테지만, '초록'이라는 단어가 그토록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것이었다니. 바늘처럼 뾰족한 침엽수의 잎은 깊고 짙은 청록, 동글 넓적하게 새로 돋아나는 작은 잎들은 물로 한 번 씻어낸 듯 여리한 연두, 어느덧 쑥쑥 자라 있는 활엽수의 잎은 시원한 초록. 어느 것 하나 같은 색이 없었다.


가만히 멈추어 서서 귀를 열어보았다.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 뒤로 멀리서 지저귀는 새소리, 졸졸졸 나직이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배경음처럼 섞여 들렸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부드럽게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코 끝을 간질였다. 3월의 바람에는 약간의 먼지 냄새가 섞여 있었지만 그것조차 반가웠다. 조만간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써야겠지만 오늘은 그냥 이대로 있으면서 평일 한낮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고 싶었다.


육아휴직 첫날이었다.

 

photo by dmytro-tolokonov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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