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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Apr 25. 2021

어느 멋진 일요일

큰 유리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이 눈부셔서 잠에서 깼다. 이렇게 자연광을 맞으며 눈을 뜨는 것이 좋아서 암막커튼을 달지 않았지.


누운 채로 창밖을 바라보니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윤기가 흐르는 자잘한 나뭇잎들이 수없이 많이 나뭇가지들에 붙어 있었는데 저마다 햇빛을 반사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마치 눈부신 날 한강 표면 위에 떠도는 윤슬 같았다.


순백의 구스 이불이 기분 좋은 무게감으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손에 잡히는 80수 면사 이불 커버는 건조기에서 꺼내자마자 탈탈 털었더니 따로 다림질을 하지 않았는데도 적당히 사각거렸다.


이렇게 화이트 침구 안에 폭 파묻혀서 창밖 풍경을 바라볼 때마다 꼭 호텔이나 리조트에 온 기분이다. 이것을 위해 나름대로 거금을 들여 일명 '호텔 침구'라고 불리는 구스 이불세트를 산 것이지.


진짜 호텔이라면 룸서비스도 부를 텐데 아쉽네. 쭈욱 기지개를 켠 다음 으랏차!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왔다. 거실의 통유리창으로도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보니 오늘은 맑은 날이 될 것 같았다.


부엌으로 가서 커피 도구 일습을 꺼내어 식탁 위에 늘어놓았다. 보통은 로스팅된 원두를 사서 직접 그라인딩을 하지만 최근에 지인으로부터 원두가루를 선물 받아서 오늘 아침에는 그걸 사용하기로 했다.


와일드 커피 컴퍼니의 에티오피아산 원두가루가 든 봉투를 열고 적당량을 종이필터에 덜어낸 다음 드립포트의 가느다란 주둥이로 뜨거운 물을 조금 흘려보냈다.


들떠 있던 커피가루가 촉촉이 물에 젖어 어두운 색으로 변하면서 차분히 가라앉았다. 물을 조금씩 더 붓자 조금 있다가 얇은 유리로 된 서버 안에 똑, 똑, 똑, 한 방울씩 커피액이 떨어지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리퍼로 물을 계속 흘려보내면서 마치 밀물처럼 차올랐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난 뒤에 모습을 드러내는 백사장 같은 커피가루들, 그 위에 맺히는 거품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순간에는 내 머릿속도 같이 깨끗이 씻겨나가는 느낌, 무아의 느낌이 들어서 좋다.


다 내려진 커피를 두툼한 머그컵에 담고, 따뜻한 물을 조금 더 부어 농도를 맞춘 다음 거실로 가지고 나갔다. 창문을 열어 살랑이는 봄바람을 맞으면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코 끝에 느껴지는 바람 내음과 커피 향이 조화롭게 섞여 들었다. 오늘도 기분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아.


어느 멋진 일요일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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