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음식을 잘 버리지 못했다. 어릴 적에 가난을 경험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냥 타고나기를 뭐든지 낭비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돈이든, 시간이든, 자원이든.
게다가 이십 대에 환경운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전공도 그와 관련된 것을 선택할 정도로 문제의식이 있던 터였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수없이 많은 아이들이 굶어 죽고 있는데 농업 강대국에서는 식량 가격 조정을 위해 멀쩡한 쌀과 밀을 불태우는 부조리한 현실에 늘 화가 났다.
그러니 다 먹지도 못할 만큼 많은 양의 음식을 눈 앞에 쌓아두었다가 '적당히 배가 찼으니 나머지는 남길까?' 하면서 맘 편히 버리는 일은 하지 못했다.
게다가 종교를 가지고 나서는 음식물 쓰레기에서 나는 지독한 냄새를 맡을 때마다 '광야를 떠돌던 이스라엘 민족'이 생각났다.
하나님께서 그날그날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시면서 먹을 만큼만 거두라고, 다음 날에도 줄 거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불순종한 사람들이 그 말을 듣지 않고 음식을 욕심껏 쟁여두면 그 다음날 그것들은 모두 어김없이 악취를 풍기며 썩어 있었다지. 그렇게 탐욕스럽고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고로 아이가 태어나고부터 나는 저절로 집안의 '잔반처리기'가 되어 버렸다. 아이가 고작 190ml에 1,500원이나 하는 유기농 상하 우유나 투뿔 한우 안심구이 조각 같은 걸 남길 때면 그럴듯한 신념 때문이 아니더라도 저절로 내 입에 쏙 넣게 되기 마련이었다. 안 그래도 출산하고 다 빼지 못한 몸은 점점 불어갔다.
아이가 꽤 자란 후에도 잔반 처리는 여전히 숙제였다. 어찌나 입이 짧은지, 급식시간에 나온 돼지갈비찜이 맛있었다길래 얼른 갈비 1.5kg 한 팩을 사 와서 갖은양념에 쪄내면 아이는 한 입 먹더니 "이 맛이 아니야." 하고 더 이상 먹기를 거부했다. 남편도 입이 짧기는 마찬가지여서, 그런 식으로 만든 수많은 음식들은 전부 내 입으로 들어갔다.
식단일기를 쓰면서 약간의 감상평을 남기는데 보니까 '아까워서 먹었다. 잔반 처리할 겸 먹었다.' 이런 말이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오더라.
매번 음식을 남기는 아이와 남편에게도, 그걸 버리지 못하고 죄다 먹어치우는 나에게도 짜증이 났다. 먹고 운동하고, 먹고 운동하고,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야! 너 다람쥐냐! 그렇게 쳇바퀴를 돌게?
그러던 어느 주말, 남편과 아이와 함께 이케아로 나들이를 갔다. 저렴하고 다양한 DIY 제품들보다도 더 유명한 것이 이케아의 레스토랑. 엄청나게 많은 양의 음식을,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었다.
남편에게 주문을 맡기고 아이와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남편이 저 멀리서 거대한 카트를 끌고 오는 것을 보고 아뿔싸! 무릎을 쳤다. 내가 주문을 하러 갔어야 하는데. 음식을 남기는 데 죄책감이 1도 없는 남편이 이것도 싸네, 저것도 싸네 하면서 신이 나서 잔뜩 담아온 것이었다.
식탁 위에 늘어놓고 보니 장관이었다. 우리는 세 명인데, 그마저도 아이는 거의 안 먹고 나도 양이 적어서 두 명이나 마찬가지인데 사인분을 담아왔네. 그 엄청난 양을 눈으로 확인하니 안 먹어도 이미 배부른 것이 도리어 식욕이 감소되었다.
그래도 고스란히 버릴 순 없잖아. 살짝 한숨을 내쉬며 하나씩 공략하기 시작했다. 한참 먹으니 이미 배는 불렀는데 음식은 잔뜩 남아 있었다.
파스타의 크림소스가 이미 식어서 기름층이 뜨고 있는 것을 포크로 휘적이다가 입에 넣으려는 순간 갑자기 화가 났다. 내가 왜 먹고 싶지도 않은 고칼로리 정크 푸드를 아깝다는 이유만으로 먹어치워야 되는 거지? 나는 음식물 쓰레기통이 아니야!!!
그 순간 깨달았다. 아이가 남기는 음식을 아깝다고 내가 먹어치우기 전에, 아이에게 음식을 남기지 않도록 교육시켜야 하는 거구나. 스스로 얼마나 먹을지 가늠해서 자기 접시에 덜고, 덜어놓은 것은 끝까지 책임지도록 해야 하는 거구나. 내가 계속 먹어치워 주면 아이는 계속 남기겠구나.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다 쳐도 많은 양의 음식을 남겨 버리는 것이 유쾌한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남편은 음식이 아무리 많아도 결국 아내가 그것을 다 먹어줄 거라고 믿고 편안한 마음으로 주문하는지도 몰랐다. 어쩌면 속으로 '싫다, 싫다 하면서 결국 다 먹는다니까. 사실은 먹고 싶었나 봐.'라고 생각할지도.
그리고 아이가 어떤 맘이든, 남편이 어떤 맘이든, 자기가 행한 일의 대가는 자기가 책임지는 것이 옳았다.
그때부터 해결방안을 강구했다.
제일 먼저는 음식을 잘 버리지 못하는 나 자신을 칭찬해주었다.
밍이야, 욕심부리고 싶지 않구나. 자원을 낭비하고 싶지 않구나. 굶어 죽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죄책감이 들어서 음식을 잘 버리지 못하겠구나. 그래서 최선을 다해 왔구나. 그 마음은 참 선한 것이지. 훌륭해. 대단하다 정말.
그리고 나 자신과 타협을 해서 원칙을 정했다.
1. 나는 내가 먹을 수 있는 만큼만 주문한다.
2. 아이는 스스로 먹을 수 있는 만큼만 주문하도록 교육시킨다. 남편은 이미 성인이라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으니, 남편의 선택은 남편이 책임지도록 한다(대신 먹어주지 않는다).
3. 그래도 음식이 남는 상황이 되면 누구 탓인지에 관계없이 내가 불편해지니, 남은 음식이 정크푸드이면 버린다. 아니면 (외식할 경우) 포장해 와서 냉장고에 넣는다.
그러고 나서 셋이 식사할 때마다 저 원칙을 머릿속에 되뇌었다. 아이가 뭘 먹고 싶다고 할 때마다 "다 먹을 수 있어?"라고 물어보거나, 남편이 잔뜩 주문하려고 하면 "나는 그거 못 먹어."라고 말한다.
결국 아까워서 내가 먹거나, 정크푸드지만 버리지 못하는 경우(일전에 간 한강 야경이 보이는 레스토랑의 감자튀김은 한 접시에 무려 이만 원짜리라 버리지 못하고 소중히 포장해왔네그려 ㅎㅎ)도 있지만 원칙을 세우고 나니 나름대로 전보다 잘 지켜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