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가적 식단일기를 통해 나타난 나의 식습관 중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쉬고 싶을 때 먹는다'는 것이었다.
이 패턴의 뿌리는 매우 깊었다. '나의 폭식 연대기'에서 쓴 것과 같이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학업 스트레스가 매우 심했다. '공부해야 돼! 쉬면 안 돼!'라는 압박감이 언제나 나를 짓눌렀고, 죄책감 없이 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간식을 먹을 때'였다. 먹느라 쉬는 건 괜찮아, 다른 건 안 돼.
그래서 나는 그냥 쉬고 싶었을 뿐인 순간마다 무언가를 먹었다. 나중에는 '쉬는 것 = 먹는 것'의 공식이 머릿속에 단단히 뿌리내리게 되었다. 그냥 쉬면 쉰 것 같지 않았다. 먹는 것의 종류는 다양하게 바뀌었다가 성인이 되어 '커피 & 디저트'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오전에 미친듯이 보고서를 쓰거나 몇 시간에 걸친 회의를 마치고 나면, 오후에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사무실 인근에 미리 물색해 둔 카페를 찾았다.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통유리창 앞 테이블에 일단 자리를 잡은 다음 카운터로 가서 쇼케이스에 가득 진열된 각종 케이크와 타르트, 쿠키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하나를 선택하고, 카페 라떼와 함께 받아 들고 자리로 온다.
테이블 위에 예쁘게 차려 두고 사진도 한 장 찍어 인스타에 올리고, 한참 바라본 다음에 한 입씩 맛을 음미하며 먹는다. 나의 '카페 투어' 취미는 이런 이유로 형성된 것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카페 투어가 어려워지고 나서는 디저트를 사들고 집으로 와서 홈카페를 개장했다. 거실 테이블 위를 꽃으로 장식하고, 아끼는 찻잔과 접시들을 꺼내어 늘어놓은 다음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리고 디저트를 차려두었다. 그리고 한참 감상한 다음 역시 조금씩 맛을 음미하며 먹었다.
오후의 커피 한 잔과 디저트 한 조각이 인생에 크게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지만 내가 원하는, 군살 없는 허벅지 라인은 아무리 삼시세끼 식단관리를 잘해도 매일같이 디저트를 먹어대는 한 가지기 어려웠다.
그리고 나는 머릿속에서 '쉬는 것 = 먹는 것'으로 자리 잡은 공식을 깨고 싶었다. 쉬고 싶을 때는 쉬고, 먹고 싶을 때는 먹는 삶, 그 순간 내가 원하는 것에 정직하게 대면하고, 자비롭게 허락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습관에 관한 책 중의 바이블인 찰스 두히그의 '습관의 힘'을 비롯해서 각종 습관책들은 나쁜 습관을 교정하기 위해서 '이면의 진짜 욕망이 뭔지 파악하고, 그것을 만족시킬 수 있는 대체활동을 설계하라'고 한다.
나에게 '커피 & 디저트 타임'의 진짜 욕망은 '쉬고 싶다'는 것이지만, 이것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세분화해보았다. 내가 어느 순간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
오전 타임 일을 끝내고 카페로 갈 때 : 이제 쉴 수 있다는 안도감. 내 맘에 드는 인테리어를 갖춘 공간으로 간다는 기대감
카페에서 쇼케이스를 바라볼 때 : 예쁜 디저트들이 주는 아름다움
카페나 집에서 커피와 디저트를 차려두고 바라볼 때 : 예쁜 디저트와 그릇이 주는 아름다움
놀랍게도 먹는 것 자체는 내게 큰 기쁨을 주지 않았다. 나의 즐거움은 카페를 향해 발걸음을 옮길 때부터 시작되어 테이블 위에 디저트를 차려두고 바라볼 때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오히려 한 입 먹으면서부터 급격히 감소했다.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내게 한두 시간의 쉼을 허락하는 것, 그 시간 동안 긴장을 풀 수 있는 편안한 공간에 있는 것, 예쁜 인테리어와 디저트, 그릇을 실컷 바라보면서 미감을 충족시키는 것이었다.
그럼 이다음에는 대체활동을 생각할 차례였다. '휴식시간 + 긴장의 이완 + 아름다움'을 만족시킬 수 있는 활동이 뭐가 있을까?
처음에는 아예 다른 활동으로 대체할 생각을 했다. 반신욕이나 음악 듣기, 가벼운 산책 등등...
하지만 반신욕은 하루 중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고(사무실에 있는 도중이라면 곤란하다), 음악은 평소에도 그닥 즐기지 않는 편인 데다가, 산책을 하려면 적어도 두 발을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 정도는 필요한데 그런 힘이 남아있지 않을 때도 많았다. 게다가 셋 다 예쁜 디저트만큼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주지는 못했다.
그래서 먹긴 먹되, 먹는 것의 종류를 바꾸어보기로 했다. 카페 라떼를 차로 바꾸고, 디저트를 과일, 그중에서도 체리로 바꾸었다. 여러 가지 과일로 테스트했지만 체리가 제일 효과 있었다.
일단 그릇에 담아놓으면 너무나 예쁜 것이 케이크나 타르트 못지 않다. 그리고 씻기만 하면 되니 과일 깎는 것도 귀찮은 날에도 쉽게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씹는 맛도 좋았다. (뒤에서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나는 '스트레스 받을 때 무언가를 씹는다'는 패턴도 있었는데, 체리 과육을 어금니로 씹어서 톡 터트릴 때면 저작 활동에 대한 욕구도 만족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체리가 나름 고급 과일에 속하는 것도 한몫했다. 내 몸을 아끼고 돌보는 느낌을 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잘 되어가는 듯했다. 홈카페를 하는 날이면 일단 눈에 보이는 곳을 깔끔하게 치우고, 마음에 드는 찻잔에 차를 우린 다음에 아끼는 접시 위에 체리를 씻어서 차려놓고 바라봄으로써 '휴식시간 + 긴장의 이완 + 아름다움'의 욕구를 채웠다. 역시 습관책 저자들이 말한 대로 대체활동으로 진짜 욕구를 만족시키면 되는구만.
그런데 점점 갈수록 어려워졌다. 마치 내 머릿속에서 흑염룡이 날뛰면서 '이건 커피가 아니잖아! 체리 말고 체리 타르트를 가져오란 말이야!'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이상하다. 왜지? 진짜 욕구는 만족되었을 텐데?
계속 고민하다 그 이유를 알았다. 나는 은연중에 '대체활동을 설계했어. 그걸로 충분해. 그러니까 커피와 디저트는 먹으면 안 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먹으면 안 돼'라는 말이 지니는 강력한 힘을 아는가? 별 생각이 없다가도 그 말을 들으면 그때부터 은연중에 계속 먹고 싶어진다. 이것은 마치 코끼리 실험과 같다. '이제부터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갑자기 계속 코끼리가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제한은 대부분 요요가 올 때 미친듯이 폭식을 부르고, 그 결과 원래 체중보다 더 찌는 결과를 만든다.
나는 습관책에서 본 것을 내 나름대로 변형해서 다시 작전을 짰다. 안 먹는 건 어렵지만, 더 먹는 건 할 수 있잖아? 휴식하고 싶을 때 커피와 디저트로 바로 가기 전에, 일단 먼저 차를 마시고 체리를 먹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나 자신에게 말하는 것. 안 먹는 게 아니야. 더 먹는 거야. 이거 먹고 커피랑 디저트를 먹을 거야.
차를 마시고 체리를 먹은 다음 나 자신에게 물었다. 기분이 어때? 커피랑 디저트 땡겨? 더 먹을래? 어떤 날은 아예 체리와 디저트를 한 접시에 담아서 내기도 했다. 둘 중에 골라먹어도 돼. 놀랍게도 커피와 디저트에 손을 대는 횟수가 점차 줄기 시작했다.
나쁜 습관을 교정하기 위해 대체활동을 설계하는 것은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대체활동으로 완전히 전환하기 전에 이전 습관과 대체활동 사이의 과도기를 주는 것, 그럼으로써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대체활동으로 넘어가는 것은 인내의 고통을 줄이고, 효율을 더욱 극대화한다.
이것은 내가 읽은 어떤 습관책에서도 나오지 않은 내용이다. 정말이지 특허라도 내고 싶구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