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는 남의 눈이 신경 쓰였다. 살이 찌고 빠짐에 따라 외모 자존감이 오락가락했다. 사람들의 대접도 은근히 달랐다. 날씬할 때에는 연애도 쉬웠다. 마치 남자들에게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일 수 있는 기회는, 외모라는 1차 관문을 통과한 여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것 같았다.
자기 관리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기도 했다. 곧고 늘씬한 다리를, 명품일 게 분명한 펜슬 스커트로 감싸고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성공한 커리어우먼. 드라마에 숱하게 나오는 그녀들을 보면서 어느새 나는 미디어가 주는 '바디이미지'에 현혹되어 있었다. 우리 모두 그러하듯이.
브레네 브라운의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라는 책에서는, 사람들이 가지는 가장 보편적인 수치심이 대중매체를 통해 주입된 '바디이미지'라고 말한다. 몸을 가꾸는 것을 업으로 하는 몇 프로의 사람들이 공들여야만 가질 수 있는, 그마저도 포토샵으로 이리저리 깎아내고 보정한 몸매와 자신의 몸을 비교하면서 부끄러워한다는 것이다.
40대에 들어선 지금 새삼스레 남들 눈에 예쁘게 보이고 싶지도 않고, 유부녀에게 연애의 기회가 주어져서도 곤란하다. 딱히 '용모단정'이 요구되는 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왜 나는 여전히 날씬해지고 싶은가?
그냥, 군살 없고 탄탄한 내 몸이 예뻐 보여서. 그런 몸으로 있고 싶어서. 꼭 올여름에는 비키니를 입겠다거나 더 늙기 전에 바디 프로필 한 번 찍어보겠다는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나에게 좋은 것들을 해줌으로써 잘 가꾸어진 나의 몸선이 그저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덧붙이면, 취업이나 연애, 기타의 목적들도 그 자체로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뒤에서 보는 것처럼 진짜로 원하는 것이기만 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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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다음 질문은 이것이었다.
너는 그것을 얼마나 원하는데? 시간이 얼마가 걸려도, 어떤 장애물이 나타나도 이루고 싶어?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 없어도?
이 질문이 왜 필요할까? 그냥 막연히 '살이 빠졌으면 좋겠네' 정도의 마음이면 안되나? 매사 죽자고 달려들 필요가 있어?
왜냐하면 다이어트는, 요요를 극복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통계에 따르면 다이어트에 성공해도 5년 안에 요요로 원상회복될 가능성이 83%라고 한다.
일생의 한 기간만 희생해서 애쓰면 불변의 결과를 손에 쥘 수 있는 시험 합격, 취직 등과는 다르게 다이어트는 내 몸, 내 생활, 나 자신을 철저히 바꾸지 않으면 결국 언젠가는 원래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원상회복만 되면 다행이게. 상당수는 원래 체중보다 더 증가하고, 몸도 망가진다. '난 역시 안돼.' 하는 자존감 하락은 덤으로 따라온다.
우리 인생은, 진짜 원하는 것에만 집중하기에도 짧다. 그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막연히 남들이 다 하니까, 좋아 보이니까 그저 따라가다가는 시간도 에너지도 버리고 목표를 이루지도 못한다. 내가 간절하지 않아서 얻지 못한 것을, 사람들은 막연히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열심히 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하며 자책한다.
일전에 '글내림이 오지 않아도'에서 쓴 것처럼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피아노를 시작했다가 4학년 즈음 이사를 핑계로 그만두었다. 그 뒤 막연히 '아..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다시 하고 싶은데...'라는 생각을 늘상 짐처럼 마음 한 구석에 지고 다녔다.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내 말 한마디에 남편이 전자피아노를 선물하자 마음의 짐은 더 무거워졌다. 도중에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가 한 달만에 그만두고 나서는 '지금은 바빠서 그래. 나중에 시간 나면 하자.'라고 스스로를 속였으나 진짜 속마음은 꾸준히 하지 못한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작년에 온라인 코칭 모임에서 '내가 원하는 미래의 장면 10개'를 뽑아 묘사하는 과제가 있었다. 그 10개 중 어디에도 피아노를 치는 내 모습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소망에 악기 연주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피아노가 하찮아서 뒤로 밀린 것도 아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피아노를 진심으로 원하지 않는구나. 물론 잘 치면 좋겠지. 사람이 키도 크고, 몸매도 늘씬하고, 집도 잘 살고, 직업도 탄탄하면 좋은 것처럼. 하지만 악기 연습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참아낼 만큼 원하는 건 아니다. 그 시간과 노력을 다른 데 쓸 수 있잖아.
그래서 홀가분하게 피아노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군살 없는 탄탄한 몸, 그 몸을 사용해 나를 표현하는 일은, 10대 장면을 묘사하면 할수록 더욱 분명히 다가왔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는 그것을 원하고 있었다. 아마 이번에 다시 요요를 겪더라도, 나는 또 다이어트를 하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