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실패자가 아니야

굿바이, 요요

by 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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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실패했어도, 계속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번번이 다이어트를 시도했고, 내 인내력이 감당하는 한도 내에서 원하는 몸무게를 유지하다가 결국 다시 요요로 돌아오곤 했다(지인들은 언제 나를 처음 만났느냐에 따라 내 외모를 달리 기억하고 있다).


언젠가는 꽤 오래, 몇 년 동안을 유지해서 이제는 이것이 나의 몸이 되었구나 싶었던 때도 있었지만, 결국 체중은 야속하게도 야금야금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실패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나마 내 한 몸만 신경 쓰면 되는 솔로 시절에는 (비록 실패를 거듭할지라도) 다이어트에 도전하는 것이 쉬웠다. 결혼하고 나니 웬걸, 라이프스타일을 타인과 맞추어야 하는 삶에서는 나의 하루를 오롯이 내가 원하는 모양대로 구성할 수 없었다. 예전에는 다이어트를 하면 집 안에 먹을 것부터 싹 치우고 봤지만, 간식과 야식을 즐기고, 심지어 그것을 아내와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남편과 같이 살면서부터는 도전하려는 마음 자체가 사그라들었다.


게다가 출산 후에는 더더욱. 몸 자체가 바뀐 느낌인 데다, 낮에 일하고 밤에 애 보는 삶에서 다이어트는 사치였다. 식단관리는커녕 심지어 못 마시던 술까지 시작했다. 애 재우고 한 잔 하는 맛이 일품이라며, 육아 동지들은 나를 술의 세계로 이끌었고, 아이 유치원 친구 엄마들과 '애 재우고 10시에 집 앞 포차 콜?'이라는 문자를 서로 나누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대학교 졸업 이후 아주 오랜만에 또 안주발을 세웠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내면서 나는 점점 시들시들해졌다. 내가 원하는 삶이 있었는데. 이렇게 자기 관리 못하고 축 늘어져 살고 싶지는 않았는데. 내 몸부터 만들어야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 자리를 찾지 못한 듯 덜렁거리는 살과 그 속에 숨어있는 셀룰라이트와도 작별하고, 한 때 맵시를 뽐냈지만 이제는 몸에 들어가지도 않는, 그러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이사 때마다 싸들고 다니는 청바지들도 다시 입고 싶었다.


내 인생의 마지막 다이어트. 이번에 도전하고 안 되면 깔끔하게 미련 버리자. 그렇게 결심하고, 그 날부터 온갖 인터넷 사이트를 섭렵하면서 실패하지 않을 노하우를 찾았다.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잘 유지하고 있는 사람과 이야기도 나눠보고, 내 체질도 진단해 보고, 쇠약해진 의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트레이너의 도움도 받아가며 결국 한 달만에 감량 성공!


성공의 기쁨과 함께 또다시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번에도 요요가 오면 어쩌지. 이 놈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걸려도, 끈질기게 나를 붙들고 끌어내릴 것 같았다. 매일 아침에 본 체중계 숫자가 하루의 기분을 좌우하는 나날, 약속이라도 생길라치면 '식당 가서 뭘 주문해야 되지?'라고 고민하는 나날을 이제 그만 끝내고 싶었다. 그런데 어떻게?


louis-hansel-shotsoflouis-MlPD-AzZYMg-unsplash.jpg photo by louis-hansel@shotsoflouis on unsplash


해답은 의외의 곳에서 왔다.


코로나로 아이와 집 안에 갇히다시피 하고 백일 남짓 지날 무렵,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매일 한 번은(사실은 그보다 더) 아이에게 짜증을 냈고, 사이는 점점 나빠져갔다.


때마침 엄마의 화를 다스려준다는 인터넷 코칭 모임을 알게 되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신청을 했고, 매일 일지를 쓰며 나를 돌아보다가 결국 내 화의 원인이 '아이를 존재 자체로 인정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것은 역시 나 자신조차도 존재 자체로 인정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날씬한 나는 자랑스러웠지만, 뚱뚱한 나는 부끄러웠다.

다이어트에 성공한 나는 성취자로 인정했지만, 요요로 다시 찐 나는 실패자로 낙인찍었다.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크나큰 착각을 했다. 내가 원하는 나,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나를 감시하고, 비난하고, 다그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머릿속에 스스로 만든 감독관을 두고 '지금 이렇게 처먹을 때야! 얼른 숟가락을 내려놓고 밖에 나가서 뛰기라도 해! 지금 니 몸을 봐. 한심하군. 아직 멀었어!'라고 소리치게 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게 되면, 거기서 안주할 것만 같았다.


아이를 존재 자체로 사랑하려고 노력하면서, 나는 나 역시 존재 자체로 사랑하게 되었다. 출발점은 그곳이어야 했다. 싸늘한 말투의 감독관 대신, 나를 인정하고 격려하는 코치를 두어야 했다.


49kg를 달성한 뒤 스키니진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던, 후배들한테 완벽한 몸매라고 칭찬받던 내가 아름다웠듯, 부은 얼굴로 멍하니 투게더 한 통을 퍼먹던 16세의 나도, 빈 반찬통을 끌어안고 망연자실하던 20세의 나도 그 자체로 모두 아름다웠고, 존귀했다. 누가 나를 헌팅하든, '네 등판에서 고스톱을 쳐도 되겠다'라고 농담을 하든 관계없이.


계속되는 다이어트 실패로 낙심한 당신도, 요요의 두려움에 휩싸여 이 글을 클릭했을지도 모를, 어쩌면 식이장애를 앓고 있을 수도 있는 당신도 지금 그 모습 자체로 아름답다. 나는, 당신은 다른 누군가가 될 필요가 없다.


그 사실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요요 없는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싶은가?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에 관계없이?


정답은, YES. 그래서 나는 연구하기 시작했다. 요요와 자연스럽게 작별할 수 있는 방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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