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프로젝트 50 #23
‘불편하다'라는 말을 보면 예전 어느 티비 프로그램에서 패널들이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우리말에서 불편하다는 말은 편리하지 않은 것과 편안하지 않은 것 모두를 지칭할 수 있다. 하지만 편리한 것과 편안한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해외에서 생활하다 한국에 들어가면 한국만큼 시설이나 시스템이 편리하게 만들어진 곳이 없다는 걸 느낀다. 줄을 서서 직원과 직접 대면해 일을 처리하지 않더라도, 많은 곳에서 키오스크 등을 통해 편리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거나, 동네 편의점에 들어가서 도시락이나 음료수 같은 음식부터 축의금 봉투나 스타킹 같은 것까지 모두 살 수 있다. 이렇게 편리함을 대변하는 것들이 꼭 편안함을 준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기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키오스크를 이용하는데 편안하지 않을 것이다.
<불편한 편의점>에서는 편리하지 않은 편의점 이야기를 들려준다. 편리함의 대명사인 편의점이 편리하지 않다니 이 무슨 말장난인가. 이 편의점에서는 편리함 대신 편안함을 준다.
소설은 이 편의점의 사장인 염영숙씨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역사 교사로 오랜 시간 교단에 서다 정년퇴임을 한 염 사장은 편의점을 차렸다. 사촌 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KTX를 타고 부산으로 가던 길, 지갑과 다른 중요한 물건들이 들어있는 파우치를 잃어버린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누군가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서울역에서 본인의 파우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람이었다. 그는 ‘독고'라는 노숙자였고, 파우치를 다른 노숙자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려 지키다 다치기까지 하지만 염 사장에게 돌려준다. 염 사장은 독고에게 자신의 편의점에 언제든지 와서 도시락을 챙겨 먹으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한동안 폐기 도시락을 먹으며 편의점 주변 청소를 하던 독고에게 공석이 된 야간 아르바이트 자리를 맡긴다.
그렇게 알바를 시작한 독고, 취준생 알바 시현, 염 사장의 교회 동생이자 생계형 알바를 하는 오 여사, 그리고 편의점을 찾는 손님들의 이야기기 이어진다. 물건도 별로 없고 가끔 전자레인지도 고장이 나 있는 불편한 편의점에서 편안함을 찾아가는 알바들과 손님들의 이야기가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준다. 특별한 것들은 아니다. 작은 친절,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리고 배려 같은 것들이다.
“진심 같은 거 없이 그냥 친절한 척만 해도 친절해지는 것 같아요.”
p.174
편의점이란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고 손님이나 점원이나 예외 없이 머물다 가는 공간이란 걸, 물건이든 돈이든 충전을 하고 떠나는 인간들의 주유소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p.271
따지고 보면 가족도 인생이란 여정에서 만난 서로의 손님 아닌가? 귀빈이건 불청객이건 손님으로만 대해도 서로 상처 주는 일은 없을 터였다.
p281
등장인물 중 누군가가 이야기했듯 마치 <심야식당>을 보는 것 같은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펼쳐진다. 우리 주변에 늘 있을 것 같은 사람들과 이야기들, 그리고 우리에게 가깝고 익숙한 편의점 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가볍고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다. 책을 덮고 나면 아마도 참참참(참깨라면, 참치 삼각김밥, 그리고 참이슬)에 옥수수 수염차를 먹고 싶어질 것이다.
삶이란 어떻게든 의미를 지니고 계속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겨우 살아가야겠다.
p.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