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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디 Aug 12. 2021

다시...집.

어쨌든 영주권을 땄다. 그 지루하고 쪼그라들던 순간을 다시 구구절절 '합격 수기'처럼 쓰고 싶진 않다. 다만 다행히도 호주 영주권이 인생의 목표로 전락해버리기 전에 녀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난 '을'이었지만 바닥까지 구차하진 않았다고 확신한다. 이제 멜버른도 감히 날 짝사랑이라며 퉁 튕겨내진 못할 테지.


그 사이 대학원을 졸업했고,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똑똑한데 철이 없어서 좋았다. 말이 통했고, 별것도 아닌데 웃을 일이 많았다. 곧 길지 않은 연애의 종식을 선언하고, 시누이 집 뒷마당에서 조금은 장난 같은 결혼식까지 올려버렸다.


운칠복삼(運七三)이라고 했던가?

영주권을 서류로 받은 바로 다음 주부터 좋은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취직 이주만에 사장님의 경영방침대로 10km 마라톤과 퍼스널 트레이닝, 요가를 차례차례 시작했다. 그 회사에서 3개월 만에 기대보다 훨씬 좋은 오퍼를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평범한 호주 가정처럼 부지런히 강아지도 가족으로 들였다. 그리고 강아지가 우리 집에 막 적응을 마칠 무렵, 남편 역시 커리어를 바꿔 취직하는 데 성공했다. 


이 모든 일들이 호주에 도착한 지, 2년 만에 일어났다.


맨 처음 멜버른에 도착했을 때, 커피 향을 품은 도시는 여유로웠다. 사람들은 한낮에도 부유먼지처럼 떠돌았고, 무엇을 하든 재촉하는 이가 드물었다. 한량들처럼 잔디밭에 맨살로 누워 햇볕을 즐겼고, 공원에 놓인 바비큐 기계 주변으로는 늘 사람들이 북적였다. 

하지만 멜버른에서의 나의 삶은 그렇지 못했다. 잠잠한 표면만 보고 뛰어들었더니, 급류를 만난 것 같았다. 제대로 사방으로 휩쓸리며 수도 없이 생각했던 것 같다. '속았네. 속았어.' 영어시험, 대학원 에세이 그리고 시험, 이력서 수정과 끝도 없는 잡 서칭, 인터뷰 준비, 영주권 서류 정리. 당장 눈앞에 것들을 닥치는 대로 쳐내기 바빴다.


기억 속 시간의 속도는 언제나 제멋대로 편집된다. 호주에 오기 전, 회사를 다니던 일상은 늘어날 데로 늘어난 비디오테이프처럼 지지직거렸다. 그러다 멜버른에 살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빨리 감기' 버튼이라도 누른 듯 휘감겼다. 휘몰아치는 물살의 한 복판 같은 속도감이 잔류하는 기억 속에서도 느껴졌다. 


그러다 일 순간, 큰 물살이 휩쓸고 지나간 아침처럼 고요해졌다. 급류가 멈췄다. 영주권도, 대학원 졸업도, 결혼도, 취직까지 큰 고비들을 모두 넘겼다. 드디어 묵묵하게 지워나가던 '해야만 하는 일' 목록을 모두 비워낸 것이다.


주말 아침, 동네 브런치 카페 야외 테이블에 카푸치노 한잔을 시켜놓고 앉았다. 드디어 바쁜 일이 없는 주말 아침이었다.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남편과 신호등이 켜져 사람들이 쏟아지는 광경을 다시 가만 지켜보고 있었다. 

주문해 놓은 에그 베네딕트가 완성돼 주방에선 땡 하는 종소리가 났다. 새소리가 조금 들렸고, 바닥에 메인 강아지는 낑낑거리다 이내 체념한 듯 내 발을 베고 돌아 앉았다. 간지럽히듯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고, 헐렁하게 닫힌 브런치 가게 문 틈으로는 직접 첼로를 들고 와 연주하는 재즈 음악이 잔잔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부유먼지 같은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우리 이제 집 사야겠다."


정적을 깨며, 남편이 말을 꺼냈다.

고요한 물 표면 위로 돌을 던지듯 새로운 화두가 다시 던져졌다. 그것도 어린 시절 내내 엄마 아빠가 쥐어짜고 다시 볕에 말리고, 빨아서 쥐어짰다가 다시 볕에 말려 너덜너덜해진 낡은  티셔츠 같은 그 키워드였다. 내 집 마련.


사실 당장 눈앞에 닥쳐온 급한 일들을 쳐내느라, 애써 외면하고 있었지만 진작부터 그 필요성을 실감하고 있었다. 호주의 비싼 월세가 우릴 등 떠밀고 있었고, 설령 돈이 여유가 있더라도 마음에 드는 집에 마음대로 살 수 없는 이곳의 부동산 시스템이 확실히 그 뒤를 받치고 있었다. 공실률이 1% 내외인 이곳은 말 그대로 집주인이 확고한 '갑'의 위치에 있다. 비자 상태, 통장 잔고, 예상되는 수입, 그리고 최소 두 명의 추천까지 받아  두둑하게 서류를 지원해도 집주인의 맘에 들지 않으면 그냥 탈락이었다. 세 들어 사는 일조차 만만치 않았다. 내 집 없는 설움을 그제야 어렴풋하게 느꼈다. 


고작 6인용 식탁 하나를 놓자고, 소파를 포기해야 하는 좁다란 거실에 방한칸 딸린 그때의 아파트 월세는 1,600불(대략 백오십만 원 정도)이었다. 거기다 그 집을 구하기 위해 족히 두 달은 주말 내내 집만 보고 다녔던 터였다. 


"집을.... 사야겠지? 아무래도?

근데 우리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냐?"


주문한 에그 베네딕트의 소스가 어지럽게 빈 그릇에 묻혀있었다. 바닥에 조금 남아있던 카푸치노가 차게 식어 뻑뻑한 가루가 좀 씹히는 느낌이었다. 또 다른 레이스가 지금 막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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