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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디 Aug 08. 2021

나는 한 마리의 개구리였다.

"저는 개구리입니다. 개구리는 물에서도 뭍에서도 잘 살아요"

내 인생 가장 날것의 인터뷰였다.


저마다 날카로운 처음의 기억이 있겠지만, 대학도 면접 없이 입학했던 나는 인터뷰란 걸 봐 본 일이 없었다. 그리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본 첫 영어 모의 인터뷰가 아마도 내가 가장 처음 경험한 면접이었다.


그즈음 대기업들이 토익 점수로 대체하던 영어 평가를 현장 인터뷰로 바꾸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함께 취업을 준비하던 모든 이들은 초조한 마음에 토익학원과 회화 학원을 동시에 등록했다. 그 큰 기류를 따라 나 역시 토익학원 바로 옆에 있는 회화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두어 달 때쯤 되었을 때였다. 문득 학교 게시판에 다니던 회화학원에서 준비한 설명회의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당장 펜을 꺼내 시간과 장소를 노트했다.


설명회는 한 시간 내외로 영어 인터뷰 팁들을 공유하고, 지원자들과 모의 영어 인터뷰를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학원에서 주체한 행사였다. '우리 학원'이라는 그 살가움에 난 행사가 진행되는 내내 제일 앞줄에서 두세 번 강사의 질문에 답했다.

덕분에 난 모두가 꺼려하는 모의 면접의 첫 타자로, 보기 좋게 등 떠밀렸다.


그리고 인생 첫 인터뷰 질문을 받았다.


"너를 동물로 묘사한다면 뭘까?"


당황했다.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면접관은 동물(Animal)이라고 분명 질문했지만, 떠오른 녀석은 파충류인 개구리뿐이었다. 아마 볼 살이 통통하다고 어린 시절부터 내내 '개구리'라고 놀려댄 삼촌 덕이 컸으리라.


일단 "저는 개구리입니다"라고 답하자, 기다렸다는 듯 당연한 수순으로 "Why?"라는 질문이 돌아왔고,

"개구리는 물에서도 뭍에서도 잘 살아요. 뛰어난 적응력이 제 강점입니다."

....라고 답하고 싶었다.


물론 그렇게 근사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을 리 없었기에 아마도 대답은 "Frog can live on the ground and water" 정도였겠지?


오목 렌즈로 세상을 보는 것처럼 꿀렁꿀렁 떨렸다. 그래도 학원에서 배운 데로 'I think' 없이 한 문장이나 구사했다. 그런 내가 기특했던지, 원어민 선생님은 칭찬 일색으로 훈훈하게 인터뷰를 마무리해주었다. 대충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도 개떡같이 말했으나, 찰떡같이 알아들은 분위기였다. 준비 없이 맞이한 내 인생 첫 인터뷰 답변이었다.


그리고 저 답변이 내 인생 내내 가장 솔직하게 말한 인터뷰가 아니었나 싶다. 준비 없이 튀어나온 무의식이야말로 각자 가지고 있는 밑바닥의 가치관을 잘 들어낸다.

그즈음 난 저 뛰어난 적응력과 엄마에게 귀에 박히게 들어온 '둥글게 사는 것'에 꽤 큰 가치를 두고 있었다. 그때 난 '사막에 묻어놔도 행복하게 잘 지낼 것 같다'는 이야기를 칭찬으로 새겨 들었었는데, 거짓말처럼 난 몇 년 후 사막에 묻혔버렸다.

돌이켜 보면 내내 새 환경에 적응하는 삶이었다.

전라도 출신 아빠와 충청도 출신 엄마가 서울에서 만나, 내가 다섯 살쯤 경상도로 이사를 왔다. 엄마 아빠에겐 이민에 가까운 모험이었다.


그 후로 난 내내 대구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어릴 땐, 집안에서와 집 밖에서의 정치, 말투, 음식까지 그 온도차가 너무 커서 혼란스러웠다. 물론 어렸기에 적응도 빨랐다. 언니와 둘이 앉아 '우리 이제 대구 사투리 쓸까?' 하면 사투리가 툭 스위치를 켜고 끄듯 튀어나와 '언니야!'하고 억양을 바꿨다고 한다.

하지만 학교에선 부모님의 정치성향이 지역에 1% 안에 드는 '반대쪽'임을 들킬까 봐 말을 아꼈다. 아직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부모님의 정치성향은 무서운 편가름의 기준이었다. 유난히 목소리가 컸던 한 친구가 '어제 아빠가 누구한테 투표를 했는지 다 확인하겠다!'며 엄포를 놓고 1 분단부터 한 명씩 물어올 때, 어찌나 떨렸던지. 내 차례가 왔을 때 우리 부모님이 바로 (그때 초등학생들의 시각에서) 그 역적, 나쁜 놈, 반대편임을 공공연히 밝혀야 할지, 자연스럽게 거짓말로 넘어가야 할지 머리가 아프게 고민했었다. 다행히 채 몇 명을 묻기 전에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서울로 '유학'을 갔을 때부터는 혼란스럽기보다는 외로웠다. 나도 분명 조금 전까지 엄마가 해준 뜨신 밥을 먹고 등교하는 생활을 했는데, 부모님의 공백으로는 금세 매섭게 찬바람이 들었다. 물론 처음 맛보는 자유는 달콤했지만, 저녁 시간 집으로 돌아가며 엄마와 동생 준다고 빵을 사가는 친구들이 난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건설사에 입사한 뒤로는 역마살 말고는 달리 부를 이름이 없을 만큼 떠돌았다. 짧게는 3박 4일부터 길게는 1년 반, 2년까지 멕시코, UAE(아부다비나 두바이가 아닌 정말 사막 한복판이었다.), Trinidad & Tobago,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이 나라 저 나라를 끊임없이 돌아다녔다. 기름이나 가스가 나고 사람 많이 안 사는 곳이 바로 내 삶의 터전이었다.


정말 한 마리의 개구리 같은 삶이었다.


그래서 내가 호주에 뿌리를 내려버릴 줄은 정말 몰랐다. 그저 수많은 여정 중 한 단계일 줄만 알았지,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정하게 될 줄은 몰랐다. 오게 된 계기도 허술했다.


계획 없는 퇴사였다. 7년간 다녔던 회사를 일단 퇴사하고, 세 달을 계획으로 청춘의 상징이었던 배낭여행을 떠났다. 퇴사의 홀가분함과 이어지는 여행까지는 좋았다. 역시 놀면서 벌어놓은 돈 까먹는 일을 즐거웠다. 언니와 둘이 지지고 볶고 떠돌면서 여행했는데, 지금도 그 장면 장면을 곱씹게 된다. 그저 좋았다.


그런데 막상 돌아와 보니 현실은 너무나 막막했다. 논의되는 재취업 기회는 성에 안찼다. 연락이 온 리크루터들은 내 연봉을 파격적으로 할인해 버렸다. 공부를 더 해보자고 생각했으나 대부분의 해외 대학원들은 준비 기간이 턱없이 길었다. 영어에 GMAT에 수험생처럼 공부해도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두 달쯤 방황한 끝에 호주의 한 대학원에서 오퍼를 받았다.

그제야 작은 쪽문이 열린 셈이었다.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떠돌이가 본질인 나는 일단 또 가보자 싶었다.


정말 그 시작이 떠돌기 위해 떠난 것임에 분명한 게 오퍼를 받은 학교가 있는 캔버라가 아닌 멜버른으로 가는 티켓을 끊었다. 대외적인 명분처럼 '학교를 다니게 될 곳에 더 잘 적응하고자' 했다면, 누구도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테다.

일단 두세 달 가서 놀아보면서 호주가 어떤 곳인지 겪어보자고 생각했다. 또다시 놀면서 벌어놓은 돈 까먹을 생각을 하자 신이 나서 준비를 했다. 대학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해보겠다고 바텐딩 클래스도 등록했다. 학원이라고는 영어 학원만 주야장천 7년 동안 다닌 내게 짜릿한 일탈들이었다.


평생을 이리 뛰고 저리 뛴 개구리의 삶이었는데, 이번 뜀박질은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건 떠나는 날 밤이었다.


엄마 덕분이었다.

엄마는 내게 서러운 걱정을 앞세웠다.


의아했다. 회사에 입사한 이후로, 한 달에도 서너 번씩 해외로 출장, 파견, 여행을 다니던 터라 엄마의 그런 걱정이 낯설었다. 난 태생이 떠돌이인데.

"대체 뭘 걱정하냐?"는 퉁명 어린 질문에 엄마는,

"그때는 회사가 네 울타리가 되어 줬잖아. 회사에서 잘 곳, 먹을 곳 다 해결해 줬는데, 이젠 너 혼자 다 해야 하잖아." 했다.

아. 그럴 수도 있구나.

그렇게 많이도 해외를 쏘다녔고, 새로운 곳에 적응하며 사는 게 일상이라고 생각해왔었는데.


엄마의 말 한마디에 좀 쓸쓸한 바람이 들었다.


대구에서 인천으로 가는 공항버스에 앉아, 온 가족이 배웅하는 모습 위로 빠르게 손을 저었다. 들어가라고 손짓도 하고 뽀뽀도 날리면서 요란을 떨었다. 무심한 척했지만, 고개를 돌리자 쓱 생소한 눈물이 흘렀다.


이번 여행에 낯선 곳으로 '혼자 살기 위해 떠난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었다.


그리고 엄마의 걱정이 예언이라도 되는 양, 이곳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이전 01화 내 집 따윈 필요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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