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불안감이 바로 전염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난 AI로 인해 직업이 없어지는 과정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호주로 이민을 준비하면서부터 내내 해오던 부업, 번역 일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그 변화는 마치 산을 엉금엉금 기어오르다가 갑자기 절벽으로 뚝 떨어지는 것 마냥 찾아왔다.
내가 하던 일은 보통 기술 시방서 같은 것들을 영어로 옮겨내는 일이었다. 적합한 어휘를 찾는데 경험과 검수가 많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언어적인 감각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가장 의미를 잘 전달하는 표현들을 포털을 뒤져 찾았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기계적으로 한글로 씐 문장을 영어로 토해냈다.
쏠쏠한 부업이었다. 출퇴근이 어려웠던 임신 후기, 그리고 복직 전, 아이를 재우고 짬짬이 번역을 했다. 호주에 살았지만, 우리나라 돈을 동시에 벌 수 있어서 좋았다. 아주 든든한 뒷배 같은 느낌이었다.
프리랜서가 처음이라 업무량을 조절해 내는 게 가장 어려웠다. 회사의 여러 담당자들이 각자 수주해 온 파일을 보낸다. "삼십만 원짜리 일인데, 5일 뒤까지 가능하세요?" 하는 질문과 함께.
정해진 월급을 받는 게 아니라, 한 장 당 단가가 정해져 있었다.
회사에서 월급을 받을 때는 일을 더 맡아서 한다고 돈을 더 주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번역은 내가 옮겨낸 한글 문서 장수만큼 돈을 벌었다. 매번 의뢰가 들어오면 돈 욕심에 눈이 먼 심장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그리고 이내 내가 가용한 시간을 계산하는 머리로 생각이 옮겨갈수록 차게 식었다.
그럼에도 욕심이 끝끝내 이겨내던 날들이 더러 있었다. 크리스마스에도, 캠핑장을 빌려 놀러 간 와중에도 난 번역을 하고 있기 일쑤였고, 퇴근하고 온 남편을 동원해 새벽까지 마감을 맞춘 날도 있었다.
'어떻게 해야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번역하려나?' 그 당시 내 주된 고민이었다.
그래서 툴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구글 번역기와 사전은 물론이고 메모큐, 트라도스 등 툴들을 많이 시험해 봤다. 물론 쉽지 않았다. 구글 번역기는 내 단어를 전혀 다른 뜻으로 이해하기 일쑤였고, 메모큐와 트라도스는 내 어휘가 프로그램에 쌓일 때까지 시간이 걸렸다. 거기다 이 툴들은 비슷한 표현을 사용할 때 효과적이다. 내용이 전혀 새로운 번역에는 대체로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 늘 고민은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았다.
그때 챗GPT가 나왔다. 사용을 시작하고 두 번째 번역쯤, 이게 얼마나 혁신적인 툴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우선 트라도스처럼 내가 툴을 익힐 필요가 없었다. 그저 내가 묻고 싶은데로 주절거리며 번역을 부탁했다. 그렇게 개떡같이 던져놨는데도, 찰떡같이 번역해 왔다. 단어를 오역하는 일도 드물었다. 문맥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원문에 오타가 나도 알아 들었다. 가끔 내가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어수선한 한글을 챗GPT는 이해했고 정리해서 영어와 한글로 알려줬다. 번역이 거짓말처럼 쉬워졌다.
효율이 올랐다. 단가는 고정되었지만, 일을 더 받을 수 있었다. 내용도 좋아졌다. 앞에 썼던 표현을 기억도 잘해서 번역 전체가 일관성 있어졌다. 목차를 Contents로 썼다가 뒤에는 table of contents로 쓰는 것처럼 표현 자체는 맞지만 일관성이 없는 문제가 싹 사라졌다. 안정감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챗GPT에 유료 버전이 등장했다. 몇 백 페이지에 달하는 논문을 몇 분 안에 번역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기사로 먼저 들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번역일이 뚝 끊겼다. 문의조차 잘 오지 않았다. 문의마다 서둘러 수락 메일을 보내도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단 한건도.
당연한 일이었다. 번역가를 통해서 단 두세장 번역할 돈이면 챗GPT 한 달 치 유료구매가 가능해졌다. 대충 상상해 봐도 이미지로 작성된 복사도 안 되는 파일을 엉망으로 던져줘도, 유료버전 챗 GPT는 칼같이 정리된 워드 파일로 돌려줬을 것이다.
그렇게 '기술 초벌 번역'이라는 직업 자체가 사라졌다.
돌이켜 보면, 기술이 발전하면서 일이 차근차근 쉬워졌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사전도 찾고, 구글도 찾고 마치 비포장 산길을 오르는 느낌이었다가, 포장 길이 생겼다. 이내 구글 번역기나, 트라도스 같은 계단이 놓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날 챗 GPT라는 엘리베이터가 놓여 탑승했다.
하지만 문이 열려 내려봤더니 아무것도 없는 낭떠러지였다.
그냥 뚝. 떨어졌다.
남편의 경고는 IT 업계에서부터 이미 이 '직업의 죽음'이 시작되었다는 것이었다.
좀 유치한 비유지만, 갑자기 회사 업무가 드라마 같아졌다. 1화에서 결국엔 주인공이 죽는다는 걸 미리 알려주고 회상을 시작하는 드라마. 그런 류의 드라마는 내내 내용 전체가 좀 슬프게 비친다. 주인공이 극 내내 아무리 성공하고, 웃고, 사랑받고, 절절해도 결국에 그(그녀)는 죽을 것이다.
내 직업도 곧 낭떠러지처럼 뚝 사라져 버릴 테지. 세상에. 매일 아침 그렇게나 은퇴하고 싶었는데.
막상 끝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니 산소 호흡기라도 좀 덧대 살려놓고 싶어졌다.
그러자, 질문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AI가 대체 뭐지?'
'지금은 어디쯤 와있는 거지?'
'내 삶을 어떻게 뒤흔들 거라는 거지?'같은 원론적인 질문도 삐져나왔다.
하지만 그보다는
'그래서 난 지금 뭘 해야 하지?' 하는 실질적인 질문이 더욱 강렬했다.
이 질문에 정답은 없었다. 하지만, 어두운 하늘에 처음 떠오른 북극성처럼 내게 분명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