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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AI 밥그릇 04화

AI는 칼이 아닌, 소파로 다가온다

by 맨디

아이가 잠이든 9시부터 매일밤, 남편과의 100분 토론이 시작됐다. 대화가 통하는 친구가 남편이라는 건 정말 운 좋은 일이다.

우리는 출퇴근 길 핸드폰에서, 새로 산 책에서, 저명한 강의에서 각자 주워온 AI에 대해 정보의 조각들을 모조리 쏟아냈다. 그리고 서로의 생각에 맞는 조각을 골라 조금씩 쌓아 올렸다. 이 조각들은 가끔 우리 둘 사이의 진리가 되기도 했고, 며칠 만에 뒤집히기도 했다. 처음 해보는 '불확실성'에 대한 공부였기 때문에 매일 생각들이 갈팡질팡했다. 지금도 그렇다.


1.

우리가 가장 먼저 쉽게 동의한 것은 그와 나의 직업이 곧 사라질 것이라는 점이었다.

나는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를 위해 엑셀과 파워비아이(Power BI)를 주로 다룬다. 매일 쏟아지는 숫자와 자료를 의미 있는 정보로 바꾸는 일을 한다.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릴 위치는 아니지만, 결정을 위해 필요한 소스들을 준비한다. - Project Control Engineer

남편의 많은 일 중에 하나는 사업주가 요구하는 알맞은 인재를 찾아내는 것이다. 꼭 필요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새 직장에 대해 매력을 느끼는 후보자를 매칭해 낸다. - Recruitment Consultant


둘 다 아마 쉽게 교체될 것이다. 이미 큰 준비 없이 AI에게 부탁해 봐도, 몇 가지 보안점을 제외하면 꽤 괜찮은 결론에 이르곤 한다. 이미 죽어가는 직업이다.


그럼 뭘 해야 할까?

다시 확실히 말해두지만, 정답은 없다. 이건 누구도 확답을 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몇 달 동안 남편과 나의 의견이 갈리기도 했었다.

고작 정답도 아닌 '우리만의 공통된 가설'에 이르기까지도 아주 많은 대화를 필요로 했다. (다음 글에서 천천히 다뤄보기로 한다.)


2.

"AI가 대체하지 못하는 직업이 있긴 할까?"

"아마 없지 않을까? 가장 대체 불가능할 거라고 이야기하던 창작의 영역조차 이미 경계가 모호하잖아. 이 그림 알지? 이게 벌써 3년 전이다."

Théâtre D'opéra Spatial, Jason M. Allen 2022

"아, 알지. 이때 엄청났잖아. 미술대회에서 AI가 1등을 해버려서. AI의 작품을 창작으로 봐야 하느냐 마느냐. 윤리적으로 맞냐 아니냐. 난 그런 거 다 떠나서 이 그림 처음 봤을 때, 우와 멋지다. 했던 기억이 나. 나야 예술 뭐 아무것도 모르지만, 보자마자 첫인상이 그랬어."


우리는 '아마 AI가 대체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은 직업들을 하나씩 꼽아보고, 하나씩 반박해 봤다.


사회복지사, 심리 상담가, 댄서, 간호사, 미용사...

섬세한 기술이 필요하다던가,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던가.


한 명이 한 직업을 말하면, 다른 한 명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가능성과 가용한 최신 기술로 반박하기를 반복했다.


"직업마다 느리고 빠르고의 차이는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끝에 끝까지 가면, 결국 대체 불가능한 건 아마 없지 않을까?"

우리의 소단원에 대한 결론이었다. 비교적 쉽게 결론에 이르렀다.


3.

"그럼 어떤 세상이 올까? 모든 일이 없어지면 뭐 하게 될까?"

"일을 안 하고 사는 세상이 올 거라고들 이야기하더라"

"일을 안 하는 세상? 그럼 뭐 먹고살아?"

"일 할 필요가 없어지는 세상이 오는 거지. 그럼 국가가 될지, 기업이 될지 모르겠지만 먹고사는데 필요한 최소한을 공평하게 제공해 줄 거라는 거야."

"아... 직업이 없어지는 세상이라. 어떤 모습일까?"


'끝의 끝'에 대해 끝도 없이 상상해 봤다.

누군가는 역사 속에서 힌트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면, 로마시대. 노예가 너무 많아져서 일할 필요가 없었던 로마제국 사람들은 심심함을 못 이겨 콜로세움으로 몰려들었다. 결국 그들은 자극적인 오락에만 치중하며, 정치, 자유, 권리 같은 것들에는 관심이 없었다. '빵과 서커스만 있으면 된다'라고 말하는 조롱의 대상이 될 정도로. 로마를 여행하며 봤던, 골목마다 넘치던 조각상과 도시 가득 채워진 예술품들이 떠올랐다. 그 현실감 없던 지나친 풍요가 다시 찾아오려나?


상상력이 부족한 우리는 영화나 책의 모습을 통해 미루어 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미디어 속 AI 결말은 대체로 디스토피아였다. 아마도 자극적인 주제가 극적인 스토리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 아닐까. 디스토피아 속 세계관에서 AI는 인간을 환경에 대한 바이러스, 혹은 암 덩어리로 결론 내리기도 했다. 그래서 탄압해 버린다. 매트릭스처럼 인간의 몸에 빨대를 꽂아 원료로 쓰기도 하고, 이따금 전쟁도 한다.

"AI가 인간에게 그렇게 적대적 이어지려나? 인간이란 존재 자체를 그렇게 유해하게 느낄까?"

딱히 그럴 이유가 없지 않나, 싶다가도 한 번쯤 충돌이 생길 것 같기도 하다. 괜히 AI와의 채팅 끝에 '알려줘서 고맙다'는 말을 붙여보게 된다.


최근 팟캐스트들을 통해 들은 디스토피아는 이런 영화 속 적대적인 AI와는 좀 다른 모습이었다. 저명한 AI 전문가들이 묘사하는 디스토피아는 오히려 '혼란' 그 자체에 가까웠다. AI를 통해 상식이 뒤바뀌면서 오는 혼란, 그로 인해 모두가 불안해하는 시대가 코앞이라고 말한다. 이 디스토피아는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지만,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무서운 장담을 내놓기도 했다.


남편과 내가 상상한 가장 현실성 있는 미래는 월-E(2008년 작, 픽사)에 나오는 우주선 속 인간들이었다.

영화의 설정을 살펴보자면, 지구는 이미 멸망했고 인간들은 우주를 떠돌고 있다. 월-E는 지구를 청소하기 위해 남겨진 로봇으로 가장 마지막까지 지구에서 생존했다. 바퀴벌레 한 마리와 함께.

지구를 탐사하기 위한 로봇 이브와 친해지지만, 지구에서 '생명'을 찾아내자 그는 곧바로 우주선으로 돌아가 버린다. 이브를 찾아, 월-E가 처음 우주선에 올라타면서 이야기는 급물살을 탄다.

그가 우주선에서 만난 사람들은 통통한 외모로 움직이는 의자에 앉아서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다들 의자 앞에 달린 화면을 주시하느라, 침입자 월-E가 있다는 사실조차 잘 인지하지 못한다. 우연히 발견해도 '어머?' 하고 말지, 별다른 반응이 없다.


큰 악의도 없고, 엄청난 목표도, 할 일도 없어 보인다.


이 모습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간단하다. 이렇게 AI와 기술들이 하나씩 하나씩 우리 삶을 편하게 해주다 보면, 조금씩 그 혜택들을 누릴 것이다. 이게 AI인지, 아닌지 그 경계조차 모호하게 받아들이게 되겠지. 그러다 보면, 결국 그런 모습이 되어 있지 않을까?


"AI는 칼이 아닌, 소파로 다가온다."


결국 우리를 무너뜨리는 건 두려움이 아니라, 편안함일지도 모른다.



AI의 정의는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처음 인공지능이라는 용어가 등장할 당시, AI는 '컴퓨터로 못하는 신기한 것'들을 해내는 것들이었다. 생각해 보면, 컴퓨터가 고작 똑똑한 계산기였던 시절이었다. 당시 사람들의 상상력이 미치는 모든 요소가 아마 "인공지능"이지 않았을까?

그러다 점점 컴퓨터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인간의 문제를 대신 해결하는 쪽'으로 정의가 발전해 왔다. 사람처럼 추론하고, 판단하는 인간의 영역을 해내는 부분을 AI라고 불러왔다.

하지만 최근 이런 정의들은 모두 너무나 쉽게 반박당하고 있다.

1950년대의 정의야 말할 것도 없고, 오늘 AI의 기능만 해도 사람을 흉내 내는 쪽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내가 유튜브에서 찾아본 영상을 기반으로 다른 영상을 추천해 주는 알고리즘만 해도 사람을 흉내 내서 만들어낸 기능은 아니다. 그럼 오늘의 AI에 대한 정의는 무엇일까?

사실 지금 글에서 이야기하는 AI는 Artifitial Intelligent를 넘어서 Artifitial General Intelligent (AGI)의 정의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스스로 진단하고, 진화하며 발전시키는 기술이 아마도 AI의 오늘날 정의가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AI는 단순히 인간을 흉내 내는 기계가 아님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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